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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일본이 쓴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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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9-30 22:22 조회2,9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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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일본이 쓴 전사

 

나는 한국인듫이 쓴 전사보다 일본이 쓴 6.25 전사를 더 믿는다.

 

일본이 본 "한국전쟁"이 전집 10권으로 구성돼 있다. "日本陸戰史硏究普及會" 발행. 그 중의 일부를 발췌한다.

 

* 19503월초, 1주일간 29회의 공비 습격이 있었고 38선 부근에서 18회의 분쟁이 있었다(p.37)

 

* 3월 위기설이 있었다. 북괴가 곧 남침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북괴군이 38선에 집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정보가 입수됐다(p.38).

 

* 5.11, 이승만 대통령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괴군의 남침이 임박해 있다. 미국의 원조가 부족하다. 그래서 5.6월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발표했다(p.38).

 

* 북괴군은 184천 명, 야포 609, 전차 272, 전투기 168대였고, 한국군은 병력 98, 야포 91, 훈련기 10대였다(p 38-39).

 

* 6.9,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연대장과 사단장에 대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이는 5.17일 국방차관으로 취임한 장경근(: 골수 좌익)의 입김이라는 설이 있다. 전방 사단장으로 임명된 장군들은 부대를 장악하고 지형을 익숙 시킬 여유 없이 전쟁을 맞았다(p.40).

 

* 6.24(토요일), 육군장교 클럽(구락부) 개관 축하연회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서울번화가에서는 1사단(백선엽 대령, 개성포진) 7사단(유재흥 준장, 의정부 포진) 장병들을 위시해 연회에 참석했던 장병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각 사단에는 "내일은 좋은 날이니까 규정 외의 외출 외박을 허가해도 좋다"는 전문이 있었기 때문에 춘천에 포진한 6사단(김종오 대령, 춘천 포진)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장병들을 내보냈다(p.44). (: 김종오는 훗날 합참의장).

 

* 육본은 6.25 0시를 기해 비상경계령을 갑자기 해제하고 전 장병의 2분의1에게 휴가를 주었다.

 

* 6.25 남침 사실을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채병덕에게 보고하자 전속부관은 주무시는 총장님을 깨울 수 없다며 끝내 알리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런 부관을 군법회의에 회부하지 않은 채병덕 장군도 수상했다. 수많은 예비역 장군들이 채병덕 장군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참전 장군들 증언).

 

* 6.28015분에 의혹의 미스터리 한강철교가 폭파됐다. 폭파 경위는 다음과 같다. 한강교는 한강의 유일한 교량이었다. 미 군사고문단과 채병덕 참모총장 사이에는 "적의 전차가 한강교 근처에 접근한 것을 채병덕 장군이 확인했을 때 폭파한다"는 약속이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이 약속이 갑자기 깨졌다. 주 병력이 아직 강북에 있고, 모든 무기가 강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 고문단 부참모장인 그린윗드 중령에게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 한국군이 한강교를 폭파한다는 것이다. 그린윗드 중령이 육본으로 달려갔다. 김백일 참모 부장의 말이 "국방차관 장경근 장군이 0130분에 폭파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지금 곧 폭파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제2사단장 이형근 장군이 와서 제2사단의 병력과 장비가 아직 시내에 있으니 폭파를 연기해달라고 건의했다. 김백일 장군이 이를 받아들여 작전국장 장창국 대령에게 폭파 중지를 명했다. 장창국 대령이 지프차로 달려갔지만 도로가 피난민으로 채워져 있어 시간이 지연됐다. 280215, 드디어 한강교 위에 3열로 뻗은 인파와 차량이 2회의 섬광이 번쩍 하는 사이에 희생됐다. 주력부대인 2,3,5,7 및 수도 사단이 서울 외곽에 있었다(p.87-89).

 

* 6.281130, 서울이 함락됐다. 한국군은 퇴로가 차단된 사실도 모르고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목숨을 건 채 싸우고 있었다(p.89).

 

* 한강교 폭파 명령을 누가 내렸는가에 대한 군법회의가 열렸다. 채병덕 장군은 "군사 지식이 있는 자가 그런 명령을 내릴 리 없다"고 증언했고, 국방차관 장경근은 "나는 명령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결국 공병감인 최창식 대령이 스위치를 누른 책임을 지게 되었다. 결국 육군 공병감 최창식이 19509.21일 부산교외에서 총살 집행되었다(p.91). (: 증거를 인멸하려고 장경근 일당이 주도했다는 설이 파다함).

 

* 인민군이 입성하자 서울시에는 적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인파가 의외로 많았다(p.91). (. 보도연맹이 주도. 이 사건은 역사조명의 포커스로 취급해야)

 

* 6.290600, 맥아더 원수가 그의 전용기 바탄호(C-54)가 하네다 공항을 이륙했다. 한남 남쪽 제방에 직접 나타난 맥아더는, 정상 조직을 갖춘 한국군이 불과 22천 명이고 이마저 피난민과 섞여 뿔뿔이 철수해오는 것을 보고 한국군에 전투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관찰한 후 주일미군을 파병하기로 결심했다(p.115).

 

* 6.3004:57, 트루먼 대통령이 맥가더의 건의를 받아들여 2개 사단과 1개 전투연대 파견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p.117)

 

* 미군 충원병의 70%19-20세였다(p.118)

 

* 6.30, 맥아더 원수는 주일 8군사령관 워커 중장에게 제24, 25시단의 출동을 전화로 명했다(p.128).

 

* 6.30일 밤,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이 24사단에게 전화로 한국 출동명령을 내렸다(p.130)

 

* 7.103, 비가 쏟아지는 구마모도를 출발, 08:05분에 이다쓰게에 도착했다(p.131)

 

* 7.108:45,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4대의 C-54기에 탑승하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안개가 짙어 내릴 수 없었다. 10회나 회항하다가 15:00시에 겨우 착륙했다. 이들은 열차에 탑승하여 한국 국민의 환호를 받으면서 출발, 7.208:00시에 대전에 도착했다(스미스 중령 지휘)(p.132).

 

* 7.8-15간 제 25사단이 부산에 속속 들어왔다(p.193)

 

* 7.14,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 지휘를 UN군 사령관에게 위임했다(p.195)

 

* 24 사단은 15,965명 중 1주일 동안, 적을 지연시키는 작전을 하다가 4,525명을 잃었다. 이어서 오산-옥천 전투를 치르기까지 17일간의 전투에서 7,305명의 병력과 장비의 60%를 잃었다(P.237).

 

* 24사단장 딘 소장은 부상병이 애원하는 물을 뜨러 물소리 나는 곳을 향해 칠흑 밤에 기어가다가 벼랑에 떨어져 어깨, 늑골, 머리에 부상을 입고 금산 지역을 헤매다가 자신을 도와주던 한국청년의 밀고로 36일째가 되던 8.25. 북괴에 포로가 됐다. 평소 체중은 86kg이었으나 수용소 나왔을 때의 체중은 58kg이었다. 그는 3년간의 포로생활을 하다가 195394, 해골상태로 판문점으로 돌아왔다(p.239)

 

(: 딘 소장을 북한군에게 밀고한 사람은 농부 한두규, 5달러를 받고 밀고했다. 한두규는 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딘 소장이 무지한 농민의 행동이라며 감형을 호소해 5년형 복역 후 석방되었음).

 

* 당시 많은 피난민이 영동으로 몰려들었다가 다시 황간- 대구로 남하하고 있었는데, 북괴군과 게릴라들이 그 속에 끼어서 사단 진내(陣內)로 들어왔다. 한 임산부의 모양이 수상하여 조사해 보니, 소형 무전기를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미군의 포병 위치와 북괴군의 사탄(射彈, 떨어지는 포탄)을 조종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짐 속에는 경화기가 숨겨져 있었고, 쌀을 운반하는 바구니 속에는 박격포 탄약이 들어 있었다. 또한 미군 보초가 갑자기 피난민으로부터 사격을 받기도 했고, 지뢰탐지기에 의해 총기를 발각당한 무리들로부터 습격을 받는 등 그야말로 마음을 놓을 겨를이 없었다. 보급차량도 종종 습격을 당했고, 도로에는 지뢰가 매설돼 있었으며, 불시에 미군 포병이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p.252).

 

* 영동의 7.26일 날이 밝아올 무렵, 먼저 수백 명에 달하는 피난민이 횡대로 늘어서서 전진해 왔다. 그 후방에는 전채 4대와 약간의 보병이 뒤따르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진지로 접근해 왔을 때, 지뢰가 폭발하자 주위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차와 보병이 용서 없이 피난민을 사살했다. 피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대오를 정리하고 전진을 다시 계속했는데 지뢰는 또다시 폭발했다. 실은 북괴군이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피난민들을 앞세워 희생시키는 만행을 자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기병사단은 피난민을 사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뢰지대를 통과시킬 수도 없는 그야말로 난처한 입장이었다(p.254-255).

 

(: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노근리 현상을 부각시켜 미군을 증오케 한 모략작전이 김대중 시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근리 학살사건이었다)

 

2025.9.3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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