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패거리 버스 돌진 사건 (김대령 박사 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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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thfinder12 작성일25-08-04 21:53 조회2,7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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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패거리 버스 돌진 사건 (2020년 김대령 박사의 글 요약)
아래는 LA 시니어타임즈US 신문에 실린 글(2020/10/12) 을 요약함.(현재는 접속되지 않음)
최규하 중동 순방 틈에 김대중 세력이 시위
1980년 5월 당시 한국을 강타한 석유 위기 해결을 위해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하고 있는 틈을 노려 윤상원을 위시한 김대중 세력과 이태복의 전민노련은 5월 15일에 청와대와 중앙청과 서울 시내 각 방송국들을 점거할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다(김대령 2015, 217-228).
그 목표를 위해 김대중의 사조직 민청협이 조직하고, 서울대 심재철 총학생회장을 얼굴마담으로 세운 시위가 바로 5월 15일의 대규모 시위이다. 당시 중앙대 총학생회 부회장이었던 백남기도 4,000명을 동원하였고, 경희대 복학생 문재인도 한 떼거리를 인솔하고 있었다. [❈ 주: 이 백남기는 경찰 물대포 사건으로 사망한 백남기와 동일 인물이다. 농민이 아니었던 것]
문재인 패거리의 버스 돌진으로 경찰관 중상 및 사망
15일 오후 6시 8분 남대문 시위대열 속의 청년 한 명이 시내버스를 탈취, 저지선을 펴고 있는 기동경찰 뒤로 돌진해 한병일 이경(21) 등 전경대원 6명이 중상을 입고 경찰병원에 옮겨졌으나 이성재 일경(23)이 16일 새벽 0시 반 숨졌다(조선일보 1980년 5월 16일자).
동 기사에 따르면, 이 청년은 남대문과 서울역 시위행렬 사이에 끼여 있던 48번 상진운수 시내버스를 탈취, 학생들의 함성을 받으며 남대문 우측에서 저지 중인 경찰을 뚫고 남대문을 한 바퀴 돌아 남대문시장 입구에서 남산 쪽을 바라보며 대치중인 경찰을 뒤쪽에서 덮쳐 미처 피하지 못한 전경대원 5 명을 치어 쓰러뜨리고 남산 쪽으로 올라갔다. 버스에 치여 쓰러진 전경대원들은 동료들에게 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차를 뺏긴 상진운수 시내버스 운전사 박용화 씨(42)는 “20대 청년 3명이 올라와 승객들을 내리게 한 뒤 멱살을 잡아 끌어내리고 차를 몰고 갔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980년 5월 16일자).
당시 서울대 복학생으로서 심재철과 유시민을 배후조종하던 이해찬은 문재인의 경희대 시위대가 시민버스 탈취하여 경찰을 대상으로 차량 테러를 한 사건의 현장 목격자였고, 심재철 또한 그 버스가 경찰을 죽인 뒤 곡예에 가까운 급커브를 하며 경찰차 추적을 따돌리고 남산 쪽으로 사라진 사실의 현장 목격자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운전사 박용화 씨의 증언에 따르면 대한민국 운전기사들 중에는 그렇게 능란하게 급커브를 하면서 경찰차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운전실력을 가진 기사가 없었다.
❈ 문재인 등이 경찰들에게 일부러 손짓을 해 쳐다보고 있는 틈을 타서 버스가 뒤에서 돌진하였다고 한다.
문재인 학생 연행
경희대 복학생이었던 문재인 씨는 이날 청량리 경찰서로 연행된다.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 돌진한 버스에 치어 전투경찰 한 명이 숨졌고, 버스를 몰았던 사람을 놓친 경찰은 현장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文씨를 연행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만에 文씨는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2차 합격소식을 들었다. 경찰서장은 소주 파티를 열어줬고 경희대 재단이사장의 신원보증으로 文씨는 석방됐다 (중앙일보 2003년 2월 14일자).
문재인 불법 석방
(...) 그래서 문재인이 그 날 5월 15일 사건 현장에서 바로 청량리 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전혀 수사를 받지도 않았고, 구치소에 수감되거나 교도소로 이감된 적도 없다. 문재인이 유치장으로 연행된 지 며칠 만에 6월 5일 사법고시 2차 합격소식을 들었고, 경찰서장은 축하 소주 파티를 열어준 뒤 바로 석방하였다. 이것이 문재인이 그의 5·18 기념식 연설에서 그가 광주사태 당시 겪었다는 고통의 전부였다.
최규하의 지나친 너그러움과 경희대의 편법 행정
문재인이 1980년 3월 2일 경희대학교 법대 4학년에 복학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해 2월 29일 최규하 대통령이 정치인 22명 등 687명을 사면복권 시킨 덕분이다. 최 대통령의 사면 복권 대상자들 중 학생도 373명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문재인의 이름은 복학이 허용된 373명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복학이 된 경희대 학사행정에 의구의 여지가 있다. 이 경우 그런 학사비리는 정유라가 2015년에 국제 승마대회 금메달 보유자로서 정당하게 이화여대 체육대 특기생으로 입학한 것과 비교된다.
문재인 불법 석방만 없었더라면!
만약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되고, 문재인이 구치소에 수감되었더라면 문재인이 사법고시 2차에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경희대 재단 관계자들이 편지를 가지고 청량리 경찰서장을 찾아오고, 수사의 시작이 마냥 지연되더니 6월 3일 사법고시 2차 합격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서장이 축하파티 열어주고 즉시 석방하였다.
문재인 일당은 계엄 전에 이미 사람을 치여 죽여
문재인은 여태까지 마치 자기가 1980년 5월 18일의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계엄사에 체포되었던 것처럼 거짓말을 해왔으나 진실은 정반대이다. 사건 전개 순서상 경희대 시위대의 차량 테러에 의한 경찰 살인 사건이 사흘 먼저이다. 김 내무장관의 건의는 신 총리를 통해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그 결과로 5·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실시되고, 계엄사 포고령이 선포되었던 것이다.
문재인이 버스돌진 공범인 이유
(버스는) 경찰저지선 뒤쪽에서 돌진하여 경찰관들을 들이받았다. 한 줄 횡렬로 늘어선 경찰관들과 대치하고 있던 경희대 시위대가 자기네를 보라고 손짓하며 경찰관들의 시선을 유도하는 바로 그 순간 반대쪽에서 버스가 달려와경찰관들의 등을 덮쳤기 때문에 아무도 피하지 못했다. 경찰관 살인범들은 범행 후 그 버스를 몰고 도주하였으므로 범인을 놓친 경찰은 사건 현장 주동자만 연행하였는데, 그가 바로 경희대 복학생 문재인이었다.
경희대가 신원보증할 자격도 없어...
이 사건은 살인 사건인데 단지 경희대에서 문재인 신원보증을 해준다고 경찰서장이 풀어줄 수 있는 성격의 사건이 아니었다. 문재인의 행위에 대해 경희대가 책임을 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아무도 책임지거나 징벌을 받지도 않았다.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만 불쌍할 뿐이다.
❈ 참고자료
김대령 박사의 글 (LA시니어 타임스: 5.18 역사전쟁에서 → 2020년 10월 기고 : 39-문재인-쇼가-벗긴-총기난사범의-가면-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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