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 편에 서는 게 죄 아닌가
“그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 편에 서는 게 죄 아닌가.”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며 남긴 한마디는 대한민국 현주소를 단번에 꿰뚫었다.
“대통령 편이 아니면 죄인이 되는 세상이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이다. 지금의 권력 구조와, 국민이 느끼는 공포를 정확히 묘사했다. 진실을 말하면 죄인이 되고, 침묵하면 살아남는 사회. 이것은 자유민주국가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충성 경쟁만 남은 정치 봉건국가의 징후다.
권력이 국민을 죄인으로 만드는 나라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의 주인을 ‘국민’이라 명시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권력이 국민을 심문하고, 국민은 권력을 두려워한다.
이진숙 전 위원장의 수사는 그 상징이다.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다. 단지 권력에 불편한 진실을 말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녀를 세 차례 불러냈고, 일부 언론은 ‘정권의 대변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녀는 “나는 죄가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편이 아니면 죄인이 되는 세상.”
이 한마디가 정치 보복의 본질을 드러낸다. 국민의 양심과 생각을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 언어 통제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양심 있는 공직자들의 각성
이진숙의 말은 외로운 외침이 아니다. 이윤성 헌법재판소 사무관은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범죄자를 대통령이라 부를 수 없다.”
공직자로서, 법률가로서, 양심을 걸고 한 발언이다. 권력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을 선택한 용기의 상징이다.
법원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장동 핵심 인물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사건은 단순한 형사 판결이 아니다. ‘정의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신호다.
이재명 체제는 법적으로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다. 정치적으로만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김태규 변호사의 말처럼, “국민의 명령만으로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정권”이다.
침묵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중립은 사실상 묵인(黙認)이다. 부정과 위선을 보고도 침묵하면, 그 침묵은 결국 죄 없는 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공모가 된다.
이재명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직함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과 정의의 문제다.
거짓을 진실로 부르고, 범죄를 정치로 포장하는 순간, 국민의 정의감은 마비되고, 법의 이름은 조롱거리가 된다.
이진숙의 용기, 국민의 각성으로 이어져야
이진숙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국민에게 “이제 눈을 뜨라”고 외친 사람이다.
“경찰이 권력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느꼈다”는 그녀의 고백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외면해온 현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
그녀의 싸움은 개인 방어가 아니라, 국민 자유를 위한 저항이다.
역사는 늘 양심의 편에 선다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역사는 결국 양심 있는 소수의 편에 선다. 조선의 사육신이 그랬고, 일제하의 독립지사들이 그랬다.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편이 아니면 죄인이 된다”고 외친 이진숙, “범죄자를 대통령이라 부를 수 없다”고 선언한 이윤성, 진실을 글로 외치는 국민. 그들이 바로 오늘의 ‘의병(義兵)’이다. 자유대한민국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자유는 권력의 선물로 주어지지 않는다.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말하는 소수가 지킨다.
이진숙의 한마디는 권력의 언어를 깨뜨린 시대의 진술서다.
“대통령 편이 아니면 죄인이 되는 나라.”
그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 편에만 서는 것이 죄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