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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가 다닌 길을 왜 일본인들이 걷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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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작성일11-04-22 22:20 조회1,8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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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20일) "제3회 21C 朝鮮通信使  서울-東京 韓.日 友情 걷기 " 마지막 코스인 부산지역 행사에 참석했다. 회동 저수지 선동상현마을 은행나무집 앞에서 지난 4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옛 조선통신사가 다닌 길을 따라 내려 온 한.일 양국의 일행과 합류했다. 행사 깃발과 태극기를 들고 세찬 바람과 먼지, 봄볕의 강한 했살에도 19일간 지치지 않고 걸어 온 체력에 감탄을 느꼈다. 다양한 연령 층 특히 50~60.70대의 일본인이 많아 보였다.

조선통신사의 파견은 일본에서 새로운 幕府將軍의 承襲(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를 조선에 파견하여 조선조정에서는 중앙관사 3인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여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까지는 육로,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하여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를 통과하여 일본 각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의 요도우라에 상륙 후 육로로 교토 도쿄의 목적지까지 갔다.

조선왕국의 국서를 전달한 통신사는 교통의 불편으로 6개월~1년이 소유되며 두 나라간의 외교적인 역할 및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 뜻 깊은 일을 위해 한국에서는 사)한국체육진흥회, 일본에서는 사)일본 walking협회가 주관하고 있다. 한국체육진흥회(한국걷기연맹)의 조선통신사 파견 현황에는 제1차가 선조 40년(1607년) 부터 시작하여 순조 11년(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였다고 했으며, 일본 언론도 한•일 양국의 평화와 대등한 외교관계를 구축으로 그들은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류를 거듭하는 외에 문화 면에서도 현지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내 식견으로는 통신사의 제1차년이 1607이 아닌듯 싶다. 그 이유는 선조 때인 1590년 황윤길, 김성일,허성 등을 통신사로 파견하여 일본의 동태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일본의 국정이158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히데요시(秀吉)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1585년 일왕으로부터 도요토미(豊臣)이라는 성을 하사받은 히데요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으로 당대 권력을 이어받고 조선을 침략하려는 야심에 차 있었을 때이다.

야마모토 겐이치 장편소설 "리큐에게 물어라"의 소설을 보면
"이듬해 일찍 히데요시의 반서(返書)를 들고 한양으로 돌아간 일행은 바로 왜국의 정세를 복명했으나, 국왕(주, 필자 생각. 국왕은 선조 23년 1591년)이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을 불렀을 때 두 사람은 정반대의 의견을 보고했다.

"병화(兵禍)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황윤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징후는 없었습니다." 김성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아가 "황윤길은 쓸데없이 민심을 동요시키는 몹쓸 일"이라는 말까지 했다.

조선 국왕이 정사 황윤길의 보고를 받아들여 연안방위를 공고히 했더라면 히데요시는 쉽사리 반도에 쳐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제목과 뜻이 다른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통신사의 역할과 성과, 협회서 주장한 통신사 파견 년도의 차이점을 조명해 본 것이다. 제목에서 "조선통신사의 길을 왜 일본인이 격년을 두고 3회 째 걷기 대회를 하는가? 이다. 나는 부산 금정구 선동마을 출발점에서 일본 walking 협회 간부에게 물었다. 최근 한,일간 문제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고개를 숙이고 못듣은 척 하며 발걸음만 재촉한다. 산길을 넘어 동래로 들어서고 동래문화원 앞에는 서울 여의도 공원 내 50m 높이의 태극기 깃대에 깃발이 날리듯 문화원 앞에도 50m 정도의 깃대에 태극기가 펄펄 날리고 있었다.

이 때를 이용해 출발지에서 물었던 독도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으나 처음과 같이 걷기만 한다. 나는 그의 곁 가까이 가서 두 귀로 똑똑히 들으라고 큰 소리로 왜 일본은 남의 영토를 강탈하려 하느냐?. 일제 침략 36년이 부족하냐?. 안용복은 1969년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각서를 받은바 있다 역사의 기록이 있는 수영사적공원을 다녀가라고 했다. 

[울릉도는 독도와 함께 지증왕 때 신라의 조공국이 됐고, 고려 현종 때 고려 영토에 포함됐다. 그러다 조선 태종 때 이곳 주민을 육지로 옮긴 공도(空島)정책이 시행되면서 빈 섬이 되었다. 일본이 지금도 주장하는 '무주지(주인 없는 땅) 선점'의 근거다.

안용복은 일본의 이런 주장을 역사 기록 등을 내세워 반박해 일본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각서(서계)를 받아낸 영웅이다. 그의 업적을 기려 울릉도 도동에 '안용복 장군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서 전복을 따다가 일본에 잡혀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상으로 한국과 일본이 울릉도.독도를 놓고 대립한 첫 사건이다. 안용복은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각서를 받아내지만 귀국길에 대마도주에게 이 문서를 강탈당한다. 3년 뒤 안용복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번에는 울릉도.독도 감세장(監稅將.조세담당 관리로 실제로는 없는 관명)으로 행세하며 막부의 서한을 재차 받아낸다.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일본 최초의 공문서다. 그러나 안용복은 귀국 후 관리를 사칭한 죄로 처벌받았다.

일본 시마네대의 나이토 세이추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과거 두 차례 공식적으로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중 하나가 안용복 사건과 관련된 1695년의 문서다. 그런데도 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엊그제 주한 일본대사는 "독도는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명백히 일본 영토"라는 망언을 했다.]

양국의 우정과 친선도모의 함양에 일조 하려는 행사의 성격은 좋으나 참석한 그들의 마음에는 저들의 선조가 조선을 지배했던 조선의 국토를 탐익하는 늑대같은 심보가 아닌가 싶었다. 청진기로 속내의와 브라자 끈을 헤치고 가슴팍에 꽂아 음흉한 속내의 심정을 끄집어 내보고 싶은 마음이 울꺽울꺽 솟아 오른다.

걷기 종점인 동래부 동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45분, 충신당 앞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은 일행은 충신당 내부의 당시 사진과 축소 모형 건축물을 보기위해 우루룩 모여 안으로 들어갔다. 525km의 조선땅을 밟고 온 먼지 쌓인 등산화로 마루 바닦을 서슴없이 밟고 다닌다. 신발을 벋고 들어가야 할 자리에 일인들의 행태는 추악스럽고 무래하기 짝이 없다. 저의 나라에서 이렇게 무리한 짓을 할까? 하는 생각속에 일부에서 부당한 행위라고 소리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늘(4월 21일) 아침 8시 40분 경 그들(일본인)의 숙소로 전화를 하여 섭외담당 가와타 시게루(川田茂)에게 오늘 일정에 수영구에 있는 사적공원을 돌아보고 가면 역사에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한국 수행 담당자를 바꿔준다.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고 사적공원을 다녀가도록 했다. 그 직원 말하기를 동래구청이 정해 준 일정을 따라야 하고 민감한 사항을 넣을 수 없단다.

부산까지 오면서 내 의견 같은 질문도 들었고 길에서 상스러운 말까지 들었단다. 많은 예산과 협찬 등을 받으면서 한국의 역사조차 바로 말 못하는 주최측이나 행정관청의 안이한 역사관을 갖고는 10번 아니라 100번의 행사를 해도 상호 우정이나 돈독한 관계는 계선되지 않는다. 이러한 협회의 임.직원과 공무원이 있는 한 독도는 일본 놈(者:놈자)들의 영유권 주장을 막을 수 없다.

협회나 공무원이 새롭게 변하고 걷기대회의 진정한 목적을 살려야 한다. 관광성 행사에  더 이상 끌려가는 추태를 탈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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