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의 공과
페이지 정보
작성자 epitaph 작성일11-03-15 13:59 조회1,72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조용기 목사의 일본 대참사 관련 발언은 조 목사 본인은 물론 기독교에 대한 거대한 쓰나미를 불러 일으켰다. 조 목사는 거의 짐승 취급을 당하는 욕을 먹고 있고 기독교는 거의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 목사의 행위는 기독교의 대표 행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조목사의 교회는 전에는 기독교내에서 이단으로 취급을 받은 교회였다. 조목사는 기독교의 이단이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단시한 조목사의 언행으로 기독교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기독교도 사랑과 애국이 충만한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다는 점도 감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조목사의 발언이 이토록 심대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기독교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에서 야기되는 것은 아닌지 기독교는 그 이유를 면밀히 분석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정신에 위배되는 언행을 일삼는 목사들의 행각에 제동을 거는 자정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독 기독교에만 국한되는 문제인 것은 아니나 기독교가 먼저 그 책무를 감당함으로써 불교 천주교의 정화도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는 기독교가 몇몇의 정치 도구화된 명성 높은 목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종교가 아니라 신실한 종교인들에 의한 구도의 종교로 되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한국의 종교가 정치의 도구가 되고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고 정치의 앞잡이로 전락한 것은 김대중의 때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것이다. 한국의 교계 지도자들이 한묶음으로 죄다 남북 평화의 공동 전령사로 전락하여 한쪽에서는 수백억의 현금 지원을 하고 한쪽에서는 학술지원 명목의 거대 규모의 건축물을 지어주고 운영비를 부담하고 한쪽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북괴 교회와 상호 교류를 한다느니 하면서 북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체제인양 호도하는 선동의 도구로 활동하게 된 이 모든 것들이 김대중의 때에, 김대중이 교계를 이끌고 김정일을 알현한 이후부터 빚어진 일들이다. 그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 전에 하지 않던 일을 갑작스레 김대중의 때에 시작하게 된 것은 김대중의 때에 기독교내에 갑자기 자발적인 의사가 분출되었기 때문인가.
김대중은 정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김정일의 휘하에 들어가도록 모든 책략을 다 동원했다. 그 중에 종교도 물론 포함되고 특히 종교는 지도부가 결정하면 전체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이므로 아주 손쉽게 종교를 끌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도부를 교체하고 지도부에 압력을 넣고 협박을 하면 그 일은 순풍에 돛 단 듯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기독교는 김대중의 때로부터 완전히 정권에 귀속되었다. 대형 교회는 속속 6.15에 따라 춤을 추었고 대형 교회의 목회자도 김대중의 구미에 맞는 출신 성분의 인사들로 채워졌다. 기독교 언론 방송도 속속 좌빨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좌빨 공익 단체로 전락해 갔다. 기독교 방송은 기독교 방송이 아니라 혁명 찬양 방송이 되어 갔다. 좌빨 전위 부대화된 종교는 이 땅의 순수 종교를 휩쓸어버리고 순수 종교인의 목소리는 개밥의 도토리쯤 여기는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여하튼 한국의 종교, 기독교는 김대중의 때로부터 좌빨의 주구로 내몰렸다. 조용기 목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끄는 세계적인 인물인 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는 평양에 원자력 병원을 지어 북에 헌납했고 명색 뿐인 남북 기독교 교류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는 반공을 역설하기도 했다. 특히 노무현 말기 대선 때는 반공산주의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그런 발언을 할 때마다 박수를 쳤다. 그러면서 그가 더 강도 높게 더 끈기있게 그런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씩의 공산 비판 발언을 내놓기는 했지만 더 많은 시간은 침묵을 지켰다. 그는 그가 좌빨의 주구로 활동했던 죄를 상쇄시킬만한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의 반공 발언도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라 판단을 했다. 조목사나 기독교 전체나 좌빨 주구화된 기독교의 현실에 대한 비판 자성은 없이 과거의 흔적은 게 눈 감추듯 감추어 버렸다.
이런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겠는가. 이 땅을 빨갱이들의 입안에 틀어 넣으려 획책한 마수들의 앞잡이가 되었던 교회를 누가 고귀한 정신의 권화로 여겨주겠는가. 예수의 이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사랑의 이름이면 모든 죄과가 다 사라지는 것인가. 저들이 하는 짓은 모두 다 정당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교회가, 이런 목사가 하나님을 거론하는 것은 내 눈에도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욕을 보이는 짓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불러 모아 힘을 키우고 그 힘으로 언론사를 차리고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 세속의 번영을 위해 정치의 앞잡이 노릇하기를 국가를 위태롭게까지 하는 이 자들의 하는 소리에 누가 귀 기울겠는가. 누가 그런 자들이 대표 노릇을 하는 기독교에 신뢰의 눈빛을 보내겠는가. 누가 따끔하게 기독교를 질책하려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작은 시골 마을에는 이름 없는 순수 종교가 있다. 나는 그런 교회까지 욕을 먹는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은 시골 마을 교회의 옛날 종소리가 그리울 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