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포수(砲手)의 사냥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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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1-02-26 21:36 조회1,97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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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포수(砲手)의 사냥개 이야기
-할머님과 부모님이 들려 준 동화 같은 이야기-
전 포수는 1935년경에 함경북도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사냥꾼이었다고 한다. 전포수가 살던 마을이 함경북도(咸鏡北道) 종성군(鍾城郡) 행영면(行營面) 영리(營里)인데, 그 마을의 53 번지가 내가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조 세종 때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 장군(일명 호랑 대신)이 6진을 개척 할 때 진영(오늘로 말하면 사령부)을 친 자리가 있었던 동네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나는 그곳에서 출생하였다는 자긍심이 지금 까지도 대단한 편이다.
1941년에 그곳에서 나서 5살 될 때 까지 거기서 살았으니 꽤 오래 산 곳 이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희미한 기억이 간혹 있을 정도이지 많은 기억이 뚜렷하게 있을리 만무하다. 그 때의 일 들은 대개 할머니와 부모님이 들려주신 옛날이야기 일 뿐이다. 단지 네 살 때서부터 서너 가지의 어렴 풋 한 기억이 나는 정도 인데 그것도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다. 다만 전 포수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말 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나이 40 이 다 될 때 까지 할머니에게서 수도 없이 많이도 들은 이야기이고,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끔 들려 주셨고, 지금 생존해 계시는 기억력 좋기로 소문난 어머니의 경험 담 이야기 이니 이 일화는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간직 될 수 밖 에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 이다.
전 포수의 집은 영리(營里)의 우리 집으로 부터 바로 한집 건너에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 당시 전 포수는 30세가 갓 넘었고 미모가 뛰어난 부인과, 8살, 6살 난 두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특이한 것은 만주 벌판에서 구해 왔다는 호개(胡犬)라는 새까만 색의 사냥견이 전 포수 가족과 한 방에서 침식을 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 호개의 크기를 말만 하다고 했지만 아버지께서 말씀하기를 커다란 망아지 정도는 실히 된다고 했으니까 대략 짐작 할 수 가 있고 그 집 아들 들이나 어린 나를 등에 태울 정도였다고 하니 꽤나 큰 사냥견이라고 짐작 된다.
내가 태어나기 전, 전 포수 댁을 처음 알았을 당시 어머니는 갓 스물도 안 된 새 색시 였었는데 전 포수가 부인과 두 아들 앞에서 자기가 기르는 사냥개를 가리키면서 "이 개를 누가 달라고 하면, 내 아들 애들을 주면 주었지 개는 절대로 줄 수 없다"라고 말 하는 바람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고, 한 편으로는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또 섬뜩한 느낌마저 가졌었다고 하였다.
당시에 어떻게나 그 개가 유명한지 함경북도 일판엔 전 포수만큼 이나 호개 이야기가 널리 퍼져 소문난 이야기 거리였다고 한다. 표범, 곰, 멧돼지 류의 맹수만 눈에 띄면 사생결단을 하고 용맹스럽게 대들어 해 치우고, 노루나 토끼 같이 약한 짐승이나 동네 개들을 보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순 하디 순한 양과 같았다 하니 그 용맹성과 호개의 기질을 알만 하다.
이웃의 어린 내가 겁도 없이 호개를 붙잡고 털가죽을 잡아 당기고 귀 통을 때려 주어도 그저 눈만 꿈 벅 거리며 양쪽 귀를 뒤로 제치고 얻어맞기나 하고 순하게 있었다고 한다.
전 포수는 마음이 아주 순하고 붙임성이 있고 또 사냥을 할 때면 비호 같이 이산 저산을 치닫는데 보통 사람들은 따를 수 없는 지혜와 용력의 소유자라고 했다. 이름난 전포수가 유명한 호개를 데리고 함경북도 북방 백두산 두만강 유역을 누비며 골자기 골짜기 마다 휘파람 소리로 엄동설한의 쨍하는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는 모습은 지난 날 우리의 옛 역사 속에서 이 지역에서 맹활약 하던 선조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상상해 보게도 한다.
전 포수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산 짐승과 날 짐승의 이동 경로와 그 짐승들의 특징 들을 너무나 잘 알아 포수로서의 전문성이 남 달랐다고 한다. 한번 사냥을 나가면 사격술이 너무 정확해 빈손으로 오는 일이 없고, 사냥 해온 꿩이나 짐승 들은 반드시 먼 지역일 때는 그 지역 사람들과 산짐승 고기를 같이 나누는 기쁨의 시간을 가졌고 우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하여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웃 뿐 만 아니라 멀리 백두산 근처 주민들 까지 전포수 덕에 일 년 사이에 몇 차례씩이나 호강을 하였다고 한다.
어느 해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다. 호개가 (개의 이름을 잊어 버렸음) 마당으로 뛰어 나가려 해서 전 포수는 개가 오줌을 누려 하는 줄 알고 문을 열어 주었다. 한참 있어도 나갔던 개가 문 밖에서 기척을 내지 않아 이제나 들어오나 저제나 들어오나 하고 기다리다 선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에 잠을 깨어 보니 그때까지 호개가 옆에 없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소스라쳐 일어나 부리 낳게 사냥 차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두만강 중류 쪽으로 가는 상삼봉이라는 산 을 향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치달아 뛰어 가면서 손가락을 입술에다 대고 휘파람 소리를 연달아 길게 내며 호개를 불렀다. 산과 들 온 천지는 고요하고 호개가 뛰어가며 남긴 발자국마저도 새로 내린 눈으로 덮여 희미해지다가 없어지고 호개가 짖어대는 기척은 사방 어디에서나 전혀 들을 수도 없어 초조 마음으로 세 시간 가까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헤맸다고 한다. 웬만하면 멀리서도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컹컹대고 짖어 대는데 그날은 도통 반응이 없었 다고 한다.
먼동이 터 올 무렵 드디어 저 멀리서 어렴풋이 호개 짖어 대는 소리가 컹 컹 하고 났다. 전 포수는 소리 나는 그쪽 방향으로 산 중턱까지 정신없이 치달려 올라가 보니까 호개가 더 기세 등등하게 큰 소리로 연신 사납게 짖어 대면서 아람드리 소나무 주변을 뱅뱅 돌며 주인이 갔는데도 주인에게로 껑충 뛰어 오르면서 반기지도 않고 앞발로 땅을 긁으면서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며 경계하는 목소리로 짖어 대다가는 또 주인 보고 낑낑거리고 나무 꼭대기 쳐다보고 번갈아 가며 짖어 댔다. 전 포수가 그때 호개를 보니 개 얼굴은 온통 퉁퉁 부어 눈이 가려 안보일 정도로 말이 아니었고 어깨며 옆구리 할 것 없이 흘린 피가 대단 하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나무 밑 둥 주변을 양 앞발로 팠는지 실히 한자 정도는 삥 둘러 파져 있을 정도 였고 자세히 살펴 고목나무 꼭대기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나무 저 높은 끝 쪽 큰 가지에 눈빛이 새파랗게 된 표범 한마리가 웅크리고 숨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더란 것이다. 전 포수는 신속하게 표범을 겨냥 하였고 한방에 표범은 아래로 떨어져 내려 털 석 하고 떨어지는 순간 호개는 사정없이 달려가 떨어진 표범의 목 줄기를 물고 한참 흔들어 대니 드디어 표범은 숨이 끊어 졌다고 한다.
상황 추리는 이러 했다. 산속에 먹을 것을 찾지 못한 표범이 야밤에 동네로 내려와 집짐승을 잡아먹으려 했다. 마침 전포수의 집 앞에서 방안에 있는 호개의 감각에 들켜 도망을 치게 되었다. 끈질기게 쫓아간 호개가 표범에게 덤벼 몇차례 싸움이 붙었는데 오히려 표범이 호개에게 당하지 못하고 기진해서 더는 견디지 못하고 쫓기고 쫓기다가 산중턱 나무 꼭대기 높은 곳에 도망쳐 올라가니 기세등등한 전포수의 사냥 견 호개는 나무를 눕히고 표범을 떨어트리려고 마구 밑둥이를 돌아가며 파가며 새벽이 되도록 밑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키면서 망을 보는 중에 전포수가 다다른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개들이 주인이 있을 때만 더욱 사납고 주인의 위세를 의지하여 용맹을 떨치는데 이 호개는 예외였다고 한다.
그 때 잡은 표범을 마을까지 옮겨 왔는데 그 포범의 등 위에 태어 난지 백일 된 나의 형을 앉히고 어머니가 양손으로 붙들고 찍은 사진이 아직 남아 있다.
또 한 번은 어느 늦 가을철 호개를 데리고 사냥하는 도중 커다란 곰을 만났다. 전 포수의 사냥 순서는 호개가 먼저 곰이나 멧돼지와 싸우다 휘파람을 길게 불면 싸우던 호개가 옆으로 비켜서서 도망치 듯 거리를 띄워 놓을 때 전 포수는 전광석화 같이 총으로 맹수를 사격하고 쓸어 지는 맹수를 확인 하는 즉시 뒤 따라 다시 호개가 달려들어 맹수의 목줄을 물고 한참 흔들어 대면 사냥은 끝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날은 호개가 전 포수 사격과 거의 동시에 곰에게 달려 들다 총알이 곰의 가슴께를 스치고 잇달아 그 너머의 호개의 앞 다리 위 어께를 거의 동시에 맞히는 일이 벌어 졌다.
호개를 아무리 뒤적거려 보아도 숨만 조금씩 내 쉴 뿐이지 죽은 것이나 마찬 가지 이었다고 했다. 당황한 전 포수는 아무 정신이 없어 직감적으로 호개가 죽어 간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호개는 점점 늘어져 눈까지 감았고 전 포수는 너무 슬프고 절망하여 반 미친 사람이 되어 총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내려 왔는데 어떻게 내려 왔는지도 몰랐었다고 하였다. 집에 내려와 대성통곡을 하니 온 가족이 사연을 알고 같이 울고 하여 영리 사람들이 사람 세상 떠났을 때처럼 술렁댔다고 한다.
밤 새 도록 통곡한 다음 날 아침 전 포수는 쟁기를 가지고 이웃들과 함께 호개를 세상 떠난 사람 염 하듯이 삼베 필 까지 준비 하고 장례를 치르러 산으로 올라가는데 일행이 보니 저 멀리서 팔을 내 저으며 손을 흔들며 급하게 걸어오는 한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전포수가 사냥을 오갈 때 마다 들렀다 쉬어 가는 주막집 주인 이었다.
노인은 화급하게 전 포수를 향해 "아! 이 사람아! 자네가 정신이 있는가! 그래 그렇게 아픈 호개를 놔두고 어딜 갔다 오는가?" 하고 책망 하면서 말을 잇는데, 노인이 한 밤중에 주막 밖에 이상한 소리의 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평소 잘 알고 있는 호개가 거의 쓰러지듯이 낑낑대면서 주막으로 기어들어 오더라는 것이다.
주막 주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호개를 따뜻한 물로 씻기고 고약을 발라 주고 물도 먹여 주며 밤새도록 간호 하다 날이 밝아 지금 전 포수 집으로 급히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기운이 난 전 포수가 쏜살 같이 앞서 달려가 보니 호개는 주막집 안방 아랫목에 이불에 덮인 채로 누워 있었다. 전 포수는 주인이 온 것을 보고 다 지친 모습으로 반갑다고 겨우 꼬리만 흔드는 호개를 보고 너무 감격하여 와락 달려들어 호개를 안고 어린 아이 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 대니 호개도 고통중 이면서 낑낑 대며 주인 얼굴을 겨우 핥으면서 반가워서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이다.
뒷날 전포수가 이때의 상황을 말할 때는 얘기 할 때 마다 흥분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는 감회를 말하면서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기쁘기는 처음 이라 하였다. 그 뒤 호개는 다 나았지만 앞 다리를 조금씩 절둑 거렸다고 하였다. 전 포수는 호개가 다시 다칠 가 보아 안쓰러워서 사냥개 조수격인 작은 호개만 데리고 사냥을 나갔었는데 그럴 때 마다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고 울어 대는 바람에 얼마 뒤엔 그 호개도 예전처럼 데리고 다녔고 호개는 예전 보다 더 용감하게 앞장서서 사냥을 한다고 자랑을 하였다고 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본이 패망하여 해방이 되었고 우리 집 온 가족이 살던 객지 함경도를 떠나 고향인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복골로 내려 온 뒤부터는 전포수와 호개에 얽힌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는 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 까지도 가끔 사람과 동물에 얽힌 아름다운 일화를 들을 때 마다 나는 할머님과 부모님이 들려 주셨던 전포수와 호개의 아름답고도 역동적인 일화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곤 한다.(화곡 김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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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문님의 댓글
환선문 작성일
우리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반려동물인 犬公입니다 古來로 전해 오는 수많은 忠犬,義犬이야기는
못된 인간들과 비교를 할수 없습니다 요즘은 愛玩犬이라는 말을 伴侶犬이라고 합니다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는 ANIMAL COMMUNICATER가 있어서 고통을 치료 해 주기도 합니다 아주 貴한 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