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폭도 노란 장미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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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공청년투사 작성일11-02-15 19:14 조회1,978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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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samuelsangwon@gmail.com
출생.입학.졸업학교 및 명예동문-------------------------
1961.6.11(음) 서울 종로구 계동 13번지 (본적) 출생
1968 – 1974 : 46회졸 부천북초등학교 (소사북국민학교) http://www.bucheonbuk.es.kr
1974 – 1975 : 부천중 입학 http://www.puchon.ms.kr
1975 – 1977 : 서울선린중 졸 http://www.seollin.ms.kr/doum/index.jsp
1977 – 1978 : 서울장훈고 입학 http://www.janghoon.hs.kr
1978 – 1980 : 서울영동고 졸 http://www.yd.hs.kr
1980 – 1984 : 전북대학교 농공 졸
1988 – 1991 : 버지니아 공대 대학원 농공
1992 – 1995 : 노스이스턴 공대 대학원 토목환경 석사졸
1995 – 1996 : 브라운대 대학원 지질 지구물리
1996 – 1999 : 로드아일랜드 주립 공대 대학원 박사졸
2009 국군간호사관학교 명예동문 위촉 (학교살리기에 기여한 공노로 http://blog.daum.net/enature/2472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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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란 자의 발언 입니다
5.18은 민중항쟁이다.
민주라는 위대한 이념을 위한 민중 항쟁이 아니라
살육, 학살, 잔혹, 야만에 대항하여
내 형제와 부모, 이웃과 친구, 시민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아니 삶을 포기하고 이판사판으로 한판 붙은 그런 전쟁이고 사태였다.
도덕과 가치, 민주화는 먼 훗날의 일이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학살 상황을 목격하고
모든 판단 능력을 상실하였고
남은 것은 두려움, 공포, 공황, 살떨림, 치떨림, 분노 원망 등이었다.
그들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의 시민들처럼 살아서 행복하기를 원했다.
민주가 필요한 줄은 알았지만 시급하거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민주 이전에 생존은 중요했었다.
그들은 살아 남고 싶었었다.
죽어야할 이유가 없었다.
광주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할 이유는 없었다.
살고 싶었다.
계엄군은 광주에 진입한 순간부터 그들이 지나는 곳에
존재하는 인간들, 특히 젊은 것들을 짓뭉개버렸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개인의 안녕을 위해 도피를 꿈꾸던 시민들이
모든 생존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의 기록으로 5.18은 자리 잡았다.
댓글목록
하족도님의 댓글
하족도 작성일
미치다가 빵구난 새끼가 노란장미네요.
중학교도 2군데, 고등학교도 2군데
대학교는 전라도..
가지고 있는 생각은 미치다가 방꾸나 난 놈의 사고방식.
5.18당시 길거리 돌아다니지 않고 집구석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북한 특수부대원이 쏜 총에 맞아 죽지도 않았다.
공연히 길거리 쳐 돌아다니며 지랄 염병 떨다가 뒈진거다.
가만히 움크리고 있는데 왜 죽냐? 생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미치다까 빵꾸나 터뜨리는 개소리한 자가 노란장미인가합니다.
반공청년투사님의 댓글
반공청년투사 작성일
노란장미 이자를 입국금지 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못들어 오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