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사랑' 교훈, '북한 관계'에도 해당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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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1-02-07 23:38 조회1,8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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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사랑’은 북한 관계에서도 적용이 되는것인가?
김 피터 박사(미주 감대 초빙교수)
최근, ‘친북 인사’로 알려져 있고, 북한을 몇번 다녀 온 한 목사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그의 글에서, “예수의 말씀 중 가장 위대한 교훈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인데, 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북한을 미워하며, 예수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가? 자기는 친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투의 말을 하며 우파적인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전직 국정원장 한 사람도 ‘이웃 사랑’ 운운 하며,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4)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과연, 많은 기독교인들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등을 자행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원수’인 김정일이나 북한을’사랑’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는 ‘죄인’들일까요? 반면, 그런 악한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을 감싸며 그들편에 서서 여러가지로 북한을 돕고 있는 목사나 교인들은 정말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훈륭한 크리스쳔들입니까?
먼저,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원수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원수’는 ‘개인, 사람 (individual, person)을 말하는 것이지, 어떤 집단이나 ‘국가’ 체제까지 지칭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집단이나 국가는 ‘원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도 주고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까지도 가주어라’라는 말씀에도 나타나 있듯이 ‘개인 관계’의 윤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 사랑’ 실천의 윤리는 어디까지나 ‘개인’관계에서 유효한 것이지, 집단이나 국가 간 관계에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집단 및 국가 간의 관계는 ‘집단의 이익’ ‘국가의 ‘국익’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 대한민국 측이 북한에 아무리 많은 돈과 쌀, 비료 등을 ‘퍼주기’ 해 주어도 북한은 개인 관계처럼 감동받지 않고, 몇 번의 서해, 연평해전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더 무자비한 악한 도발을 자행하기도 한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북한’이나 ‘북한의 수괴인 김정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원수 사랑’ 교훈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또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윤리학에 입각한 ‘상황 윤리’적 어프러치를 하지 않더라도 상식 선에서 판단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의 상황을 가정해서 생각해 봅시다. 밤에 당신의 집에 잔인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살인 강도가 권총을 들고 들어 왔습니다. 그 강도는 어느 집이나 침입해 들어가면 무조건 먼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성폭행, 살상을 하며, 강도 짓을 하는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 집에는 지금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잠자고 있다. 그리고 당신 집에는 총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당신 가족을 죽이려고 하는 그 원수, 살인 강도를 향하여 총을 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 살인 강도를 환영하며 그에게 자기의 모든 귀중품과 돈을 갖다 바칠 것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당신이 ‘원수 사랑’을 실천한다고 그 강도를 환영해도 그는 무자비하게 당신의 아내와 두 딸을 성폭행하고 가족 전부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총을 들어 그 강도를 죽이는 선택을 하면, 당신은 사랑하는 아내, 두 딸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입니까?
이런 경우에서는 ‘선’은 없고, ‘악’ 한 상황만 주어저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해도 그것은 다 ‘나쁜’ 결과를 가저 옵니다. 총을 들어 쏘면 당신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고, 그 강도를 환영하면 당신과 가족 전부가 다 죽게 되는 결과가 옵니다.
이런 상황 즉 ‘선 (good)’은 없고, ‘나쁜(bad)’ 상황만 닥쳐 올 때, 우리는 ‘어느 것이 ‘덜 악한 상황’인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현대인의 삶은 기원 1세기와 같이 단순한 ‘관계, 상황’이 아닙니다. 현대인에게는 때로 ‘악한’ 상황만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최악’(worst) 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차 악(次 惡, worse 혹은 bad)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 관계’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입니다. 6, 25 때와 같이 북한이 처 들어 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고 해서 두손들고 북한군을 환영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요? 크리스쳔인 당신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들, 지식인들, 기업인들, 국가 지도자들 다 숙청 당하게 되고, 국민은 지금의 북한처럼, 1인 독재치하에서 굶어 죽고 기아선상에 해메게 되는 결과가 올 것입니다. 이런 ‘최악(worst)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총을 들고 침략자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차악’(次 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북한에 쌀, 비료, ‘달라’를 무조건 퍼주어 보세요. 그것은 ‘핵무기’, 미사일, 잠수함, 특수부대, 해안포 등으로 돌아오게 될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원수사랑’ 실천이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로버트 박’이란 순진한 1,5세 젊은이가 ‘북한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위해, 북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가 생겼습니까?
결론적으로, ‘집단’, ‘국가’ 체제인 ‘조선 인민 공화국’ 은 ‘원수 사랑’의 대상이 될수없습니다. 3대 세습을 하며, 최악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민’을 재판 없이 죽이고, 강제 수용소에 보내 짐승 이하의 삶으로 만들고, 수백만 명을 굶어 죽게 만들면서 자기는 호의 호식하는 등, 가장 악한, 가장 잔학한, 가장 부패한, 저 “최악 (worst)”의 ‘조선 인민 공화국’ 권력 체제를 사라지게 하고, 정말 불쌍한 북의 국민을 구할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최선’best)이 나 ‘차선’(better) 같은 상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어떤 ‘차 악’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되는 상황이 ‘북한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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