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5.18과 조갑제 씨의 시튜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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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막사리 작성일11-01-22 16:18 조회1,849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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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붙이는 글은 제가 지난해 9월 9일 (서울은 9월 10일자), "趙甲濟 기자가 5.18에 대해서 왜 緘口하는지, 도대체 그理由를 알 수가 없다"는 네티즌의 질문 겸 댓글이 있어서 감히도 '솔로몬이 보는 5.18과 조갑제 씨의 시튜에이션' 이라는 제목으로 이곳에 올렸던 것입니다. 다시 붙여 함께 읽고 싶습니다;
다 음
조갑제씨는 반지르한 언어 플래이로 줄 타기를 잘하는 분 같습니다.
예컨데,
그는 이명박 후보 만이 대안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선 판에 일조하며 이 후보의 앞잡이가 되었었고, 대선에 그 분이 당선되자 두 사람의 갑 (two gaps 조갑제, 서정갑) 들이 king making 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고 좋아들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저들에게 인사도, 초청하여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차 한잔도 없어서 서운하다 하니 (김동길 님 말), 실로 짝사랑하다가 팽 당했던 꼴이었습니다. 그후, 그래서 그런지... , 그는 적극적으로 ‘안티 이명박’으로 돌아서서, 이제는, 대통령의 인간성에서 부터 실정 일거수 일투족에 객칠을 다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을 좋게 여기지 않아 많은 글에 박 대통령을 깠(stricken) 습니다. 그러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라는 책을 써서 시세 이용의 천재수완으로, 일약 안티 감정을 반전시키고, 그 책은 히트를 쳐 반사 이익을 많이 챙긴 줄 압니다. 붙기도 잘하고 뒤집기도 잘하고, 아는것도 많고, 글도 잘쓰고, 하여간 - 그래서 반지르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 뚝심, 지 박사는 ‘이명박을 절대 검증하여야’ 한다는 일관일변 (consistency), 한 목소리로 강공을 폈으며...., 그 길로 이제는 내리 5.18의 실체까지를 벗겨 진실을 밝히고 또 알리는 일에 성공하였습니다. 진정 애국일선에서 가장 힘을 많이 주어야 하는 사관학교 동문 회원들까지 지 박사님의 글을 게시하기가 껄끄러워할 만큼 시대는 좌익편향으로 기운 이 때에 이러한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는데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18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고 할 수 없다"며 김대중 정부 중심으로 뒤집은 역사 편에 우익인사라하는 조갑제씨가 있어, 기실, 지 박사님 중심으로 애쓴 5.18 연구에 거듭 대못을 박아 거절하였다는 사실에 그의 함구는 세월 속에서 "찜찜한 내연의 의문"을 남기며 해를 거듭하여오고 있습니다.
'5.18은 김대중을 중심으로 일으킨 북한이 광주에 특수부대를 보내, 그것을 진행하고, 결국은 나라를 전복하려하였던 민족반역 사건' 임이 지 박사님 중심의 연구와 사료 검증을 통하여 잘 들어났습니다. 5.18의 역사는, 이제, 국민의 인식에서, 김대중 시대를 통하여 반역질이 민주화 애국 운동으로 뒤집어진 역적 역사을 심판하게 되었습니다. 빨갱이 세작들이 그 수령인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와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력들로 인하여 대한민국 최첨단과 최고위의 사법부 판결을 그렇게 만들어 충신이 역적으로, 역적들이 민주화 화신 애국자로 둔갑을 한 인류 역사중의 최고한 코미디를 산출하였습니다. 이 불충한 그릇된 판결을 이제 다시 원점으로 뒤집어 원리대로 바로 잡아가고 있는 역사적인 미명을 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사이에, 우익행전 주자중의 유력한 분이라는 인식으로 그 이름과 글과 얼굴이 뜬 분이 조갑제 씨 입니다. 이러한 조갑제씨에게 지 박사님이 요청 하였습니다. '5.18에 북한군이 왔다고 볼 수 없다'에 대하여 대질 공개 토론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조갑제씨는 이에 함구무언하였습니다.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사용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는, 이처럼도 빨리, 스스로 '부끄러운 함구'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확실하고도 엄중한 자료와 정황증거를 중심한 "솔로몬"의 지혜로 닥아 왔기 때문입니다.
조갑제씨의 이러한 함구는 이적질의 달인들인 위장 우익들 내지 해 먹고 잡힐만하면 침묵을 일관하는 "모르쇠" 일당들, 아니면 5.18 반역을 가지고 울궈먹는 빨갱이들이 곤란하다 싶으면 입다물고, 빨아먹을 것있으면 협박으로 떠드는 그러한 비류들의, 자기보호막으로 쓰는, 그러한 적색분자들의 '대표성 (representative)' 함구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앞에선 5.18"은 이처럼 쓰잘데 없는 인기발언으로 지 박사님의 외로운 사투에 재를 끼얹던 비류들의 입을 잠그고야 만 신통한 '능력 충만'으로 탄생된 것이어서, 그에 반대하는 어떤 사안과 말들이 모두 역사 속에서 거부거절 (denying and rejecting)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reds"와 그들로 인하여 미혹, 오도된 선량한 백성들을 바로 잡아 주는 '지만원 지렛대 - 5.18 지렛대 - 대한민국 지렛대'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승인입니다 (Silence is consent).
조갑제씨는 그의 침묵으로 "5.18에는 북한군대가 왔었다"를 선포하는 승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곧, 만일, 조갑제씨가 그의 "침묵으로 승인"한 것이 유효하다면, "솔로몬 앞에 선 5.18"에 대한 긍정적인 서평을 그의 대문에 걸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화평한 삶을 통하여, 이웃 - 그것도, 동지 우익이라면, 자기처럼 사랑하라신 분부대로 - 자신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자증(self-evidence)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솔로몬 앞에 선 5.18"은 지금 날개를 달고 국민들의 관심 가운데 열기와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이때에, 조갑제씨는 자기의 얼굴, 자존심이 크게 상처를 받았다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아는척하고 인기발언의 말이나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단하게도 지 박사님과 좋은 평안의 길을 도모할 수 있는 쉬운 길을 두고 어렵게 가는 것은 대한민국이 북한과 남한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토록 합치지 못하는 그 운명과도 같은 어떤 정서와 감정의 대립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니 -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기만' 합니다.
이 기회에 이기기를 다투지 말고, 한번 저 보시기를 바랍니다. 교만대신 겸손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리한 연후의 일은 조갑제 씨가 믿는, 그의 주님, 그리스도께 맡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즉, '인간 지각에 뛰어난 그리스도의 평강' 으로 채워질 것 입니다.
조갑제씨의 글이나 강연 내용 등 - 여러 면에서 참으로 그분은, 우등에 속하는 좋은 말들을 많이 보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자신을 사선 넘는 심정으로, 배수의 진 까지를 준비하면서도, “옳다 아니라 (Yes, No)”를 바로 할 수 있는 비장한 남아의 심장이 결여된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교회 같은 성격의 어떤 모임을 만들어 연설 내지 설교 비슷한 것을 정규적으로 하는 크리스천으로 등장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 조갑제 씨가 애국 대한민국 남아로서 "5.18에 북한군이 왔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한 자기의 말에 이제는 대답을 하여야 할 때, 반드시, 바로 그 때라고 봅니다. 울음도 그칠때 그쳐야 개운하고, 말도 할 때 해야 시원한 법입니다. 일을 마감할때는 그 주어진 "때 (the hour, chairos, 하나님의 때, 천시)"에 마감하여야 합니다.
남자의 모습, 배운 사람의 모습, 현자의 모습, 애국자의 모습, 아니, "성도"라 이름하는 형제로서의 조갑제씨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바라기는 이 기회에 역사를 능멸한 발언에 대하여 철저하게 회개하고, 지 박사님과 우익의 길을 함께 동행하는 벗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인도하는 사람들은 해와같이 빛나게"하여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 기회를 바로 쓰기를 바랍니다. 한사람 보다는 두사람이 합작할 때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동서고금 지혜자들로 깨달은 방법이요,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하신 우리 부모님들의 교훈이요, 시장(market) 씨스템 효과를 산출하는 법들 (방법들, means, vehicles, ways) 이기도 합니다. 좀 더 쉽게 애국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려가, 일별하기에, 깊어 보이고, 조용하며, 독서를 많이 하는 실력자이긴 한 것 같지만, 충성과 진실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헌신할 그 "때"에 나서기 위한 내공은 턱 없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이니, 이 기회에 좋은 깨달음과 어금니를 굳게 물을 수 있는 확신이 있기를 기대하며 또한 이를 촉구하는 바 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지 박사님과 어떤 부분에서 서로 견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려하는 것은 좋은 우국 인사가, 뱃장 없는 말 장이로 남는 것일까 봐 마음이 조여 옵니다. 흑백을 가리지 않는 두루뭉수리, 그렇게 해야 (포도청, 의금부 감옥으로) 끌려가지 않고 먹고 살수 있는 세상이 오늘날의 조국의 모습인가하고 생각하니, 가을이 오는 이 날에 내 마음 한 자락에 서글픈 수심이 한 조각 구름되어 일어납니다.
그것도... "우익을 옷 입은 중도 실용"이라는 신종 비류를 형성하는 괴이한 어떤 변태는 아닐는지... 이 날을 머리 긁적거리게 하고 있습니다.
오막사리
2010-09-09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수백 명의 기자중 그런 의심을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가 없었다.
趙甲濟
4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광주사태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수백 명의 직업적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취재했다. 외국 기자들도 많았다. 공개리에 일어나고 공개적으로 취재된 사건이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나를 포함한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3. 광주사태 사망자는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193명이다. 이들중 군인은 23명이고 경찰관이 4명이다. 군인 사망자 23명 중 13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 교도대의 오인 사격 등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죽었다. 5월27일 광주수복을 위해 계엄군이 진입할 때 국군 3명이 죽었다. 나머지 7명의 군인들이 무장시민들에 의해 죽은 셈이다.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4.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병력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5. 全斗煥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6. 탈북자의 증언은 傳言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7. 광주사태는 1980년 5월1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후 광주 일원은 봉쇄되었다. 5월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市外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이 5월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6. 광주發 과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망자가 2000명이나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수 차례의 정부 조사로 부정되었다. 또 하나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학살장면이다. 5월21일 정오 무렵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원들이 명령 일하에 일제 사격을 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장면은 악랄한 空想이고 조작이다. 그런 학살도, 그런 사격명령도 없었다. 시민들이 차량을 탈취하여 공수부대원들을 덮쳤고, 현장에서 군인 한 명이 깔려 숨지자 군인들이 버스를 향하여 발포한 것이 본격적인 총격전의 시작이었다. 이런 미신에 북한군 개입이란 또 다른 미신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正義는 진실에 기초해야 한다.
7.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적 기대를 갖고 근거가 약한 의혹 수준의 첩보에 근거해서 행동하면 逆攻을 당할 것이다.
2010년 5월 13일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
- 조갑제 -
조금 반공하는 척하다가
갑론을박해야할 5C8 북한군 침투 공작에 대해선 함구무언할 뿐이네.
제대로 반공하지 않으며 적당히 반공을 외면하는 노인은 나잇값도 못하는 늙은이일 뿐이네.
피안님의 댓글
피안 작성일
조갑제씨는 자기의 아킬레스인 5.18에 대해 아직까지 함구하고 있는것은
자기의 우월감 (Superiority Complex) 이 강한 성격 때문이 아닐가.
아니면 좌익편에 서서 힘을 실어 주고 있는 것일가.
현우님의 댓글
현우 작성일
제가 볼땐 속된말로 쪽팔리기도 하고
알량한 그 자존심때문에 절대 자기가 한말에 번복하는일은 없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지켜봐온 결과 내린 저의 개인적 판단입니다..
산들님의 댓글
산들 작성일
조갑제 기자의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저 글에 대하여 반공운동하는 우익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전원님의 댓글
비전원 작성일조갑제씨가 5.18관련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 는 글을 두번씩이나 의도적으로 쓴 점을 봐서는, 십중팔구 조갑제는 빨갱이 세력으로부터 '쥐약'을 먹었거나, 그들로부터의 치명적인 '위협'에 굴복하였거나, 아니면 그 또한 위장우익 빨갱이일 가능성이 가장 큰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