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미국 가려면 미대사관의 담장 곁에서 영사와 상담을 위해 새벽에서 부터 줄을 섰고 빨리 VISA 를 발급 받기 위해 뒷돈을 쓰는 병폐가 계속되었든 시절이 있었다. 유독 한국에서
VISA 부조리가 심해서 사업, 또는 교육 등 정작 필요해서 미국에 가려해도 순서에 밀려 맘 고생하는 사람들이무척 많았다.
이 문제를 단숨에 시정한 쾌거는 체육과 출신의 우직한 기자가 돈키호테처럼 정의의 필봉을 휘둘러 특종으로 사건화 시키자 미국 자체의 대사관에 대한 감찰과 검열로 그 부조리는 완전 종식되었다. 정부도 외교관도 몸사리고 꺼려서 도전하지 못했든 부조리를 기자 1명이 한미관계의 영사업무를 정상화시켰든 것이다.
1990년 까지 문공부 조사과가 있었든 때는 조사과에서 전적으로 언론인 비행만 조사하고 있어 비행이 포착되면 보도증을 빼앗아 기자라도 취재할수가 없었다. 언론통제 방법이었지만 지속되었드라면 지금처럼 언론의 선비정신이 녹쓸고 그 병폐가 이렇게 무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이 망하면서 친일파로 변절한 상위층과 일제로 부터 성씨를 부여 받아 신분이 상승한 천민들이 식민지의 상류층이 되면서 선비정신이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일제하 언론에서는 뜻있는 지사형 논객이 없지는 않았으나 식민지 백성을 깨우칠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망국 후
반도의 피난민들에게 선비정신을 기대하기가 무리였을 수도 있다.
독일, 터키, 일본은 영토가 줄어 든 패전국가이지만 우리는 제국주의의에 의해 패망국가로 공중분해되었다가 해방후 축소 조립된 신생국이었기 때문이다. 생존에 급급한 피난민들에게 고도의 정직성을 요구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2천년이 넘게 국가없이 살아 와도 민족혼을 잊지 않았다. 우린 겨우 100 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기성 세대의 언론인들은 국가 선도와 민족 계몽에 선구자가 되어야 하는 데 민주화에 편승하면서 민중화, 우민화의 앞잡이가 되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으랴 !
세계에서 독일 언론이 제일 정확하다. 반드시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거짓말하지 않겠다 선서한뒤 기자증을 받는다. 1.2차 대전에서 국가가 초토화되는 걸 보고 언론이 정치, 이권에 휩쌓이고 국민을 오도 했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속 깊히 체험하였다. 독일에서는 무임승차 세번 걸리면 박사학위가 취소되고 유학생은 좇겨 난다. 광주 사태에 대해서도 독일 언론이 어떻게 표현했나 알아보면 객관적 답이 보일 것이다.
프랑스도 2차대전 직후 나찌스 협조 정치인들 보다 언론인을 훨씬 더 많이 더욱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그 영향력이 정치인들보다 더 컷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아직 체벌이 가해지는 대규모 정화, 숙청 과정이 있었다고 할수 없다. 파주 통일공원에 가면 한국전쟁에 취재하다 전사한 16명의 종군기자의 탑이 있는 데 모두 외신 기자들이고 한국 기자는 서울신문 기자 1명의 이름이 있다. 그도 취재위해 군용 짚을 탓다가 전선에는 못가고 중간에 교통사고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월남전에는 한국기자는 희생된 바 없다.
우리나라 여의도 정치인의 약 40%가 언론계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시기 일제하의 저항정신이나 80년대 조폭들의 칼 앞에도 맞서 싸우든 한 때 한국일보 기자들의 그러한 선비 정신은 이제 어디서 찾을 건가?
우리는 독일처럼 박사 학위는 요구하지 않아도 언론 고시를 통과해 기자가 된다면 반드시 태권도, 합기도, 검도 등 무술을 익혀 남아로서 기개를 닦고 정의를 위해 투신할수 있도록 검은 띠 2단 이상 따야 취재를 하게 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 여경도 2단이상 되어야 수사관이 된다는 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