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워야 할 인사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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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달 작성일11-01-12 10:54 조회1,7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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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 고려 , 조선 오백년은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왔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표이다. 고구려 700여년 존속 기간에도 오,촉, 위, 등 서화족 국가는 32개국이 일어나고 사라졌다. 이는 그만큼 나라를 유지하는 데 있어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인사 제도가 명쾌하였기 때문이다.
제일 약한 신라가 왜 통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3한을 통합할수 있었을 까? 그것은 신라만이 왕족, 귀족이 솔선수범을 보여 희생을 무릎쓰고 앞장을 섯고 상류층의 식기가 평민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의식주에 큰 차별이 없었어며 금석문에 신라만이 평민의 이름이 새겨 남아있는 만큼 인격적으로 평민들을 대우하였다고 볼수 있다.
또 신라는 항복한 백제, 고구려 사람들을 희망따라 신라의 관직으로 평행이동시켜 보임하여 당나라와의 최후 결전에는 신라군의 7할이 고구려, 백제 출신이었다. 또 신라는 관리시험에 철학과와 명산과(明算科)를 두어 이공계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신라의 활- 천보궁 (千步弓)이 그저 태어난 거라 볼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고위직일 수록 솔선수범하는 책임의식이 조선에도 잘 내려갔다. 조선에서는 판서가 되면 세사람의 고급관리(과거 합격 상당급)를 발탁, 천거할 권리가 있었다. 선택을 받아 관운이 트인 그들이 나중에 평가에서 하위 점을 받거나 부정에 관련되면 당자는 물론 추천 고위직을 가차없이 자르는 명백한 연좌제를 적용했다.
조선이 말기에 접어 들어 매관(賣官)으로 직위를 팔아 재정에 보태다가 이어 매직(賣職)으로 직책을 팔면서 나라가 완전히 기울어 졌다. 그만큼이나 자리가 중요한데 탈세에다 재정이 거들난 조정에서는 사직이 연명할 정도가 된것이다.
신생 대한민국은 김영삼때 부터 선거운동했다고 직책을 주었다. 그전에는 권력자가 고생했다고 이권을 주었지만 중요 보직을 주지 않았다. 민주화가 아니라 때묻은 우민화로 10여년을 내려 오는 사이 참으로 걱정스런 인사문제가 많이도 발생했다. 배가 삼각파도, 거친 풍랑에 휩싸이는 데도 제 맘에 들고 아는 사람들만 선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일까?
MB의 대실책은 김영삼 이후의 인사 방식을 그 전으로 돌리지 않고 또 선조들의 인사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역사의 거울을 보지 않은 데 있다..
제일 약한 신라가 왜 통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3한을 통합할수 있었을 까? 그것은 신라만이 왕족, 귀족이 솔선수범을 보여 희생을 무릎쓰고 앞장을 섯고 상류층의 식기가 평민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의식주에 큰 차별이 없었어며 금석문에 신라만이 평민의 이름이 새겨 남아있는 만큼 인격적으로 평민들을 대우하였다고 볼수 있다.
또 신라는 항복한 백제, 고구려 사람들을 희망따라 신라의 관직으로 평행이동시켜 보임하여 당나라와의 최후 결전에는 신라군의 7할이 고구려, 백제 출신이었다. 또 신라는 관리시험에 철학과와 명산과(明算科)를 두어 이공계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신라의 활- 천보궁 (千步弓)이 그저 태어난 거라 볼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고위직일 수록 솔선수범하는 책임의식이 조선에도 잘 내려갔다. 조선에서는 판서가 되면 세사람의 고급관리(과거 합격 상당급)를 발탁, 천거할 권리가 있었다. 선택을 받아 관운이 트인 그들이 나중에 평가에서 하위 점을 받거나 부정에 관련되면 당자는 물론 추천 고위직을 가차없이 자르는 명백한 연좌제를 적용했다.
조선이 말기에 접어 들어 매관(賣官)으로 직위를 팔아 재정에 보태다가 이어 매직(賣職)으로 직책을 팔면서 나라가 완전히 기울어 졌다. 그만큼이나 자리가 중요한데 탈세에다 재정이 거들난 조정에서는 사직이 연명할 정도가 된것이다.
신생 대한민국은 김영삼때 부터 선거운동했다고 직책을 주었다. 그전에는 권력자가 고생했다고 이권을 주었지만 중요 보직을 주지 않았다. 민주화가 아니라 때묻은 우민화로 10여년을 내려 오는 사이 참으로 걱정스런 인사문제가 많이도 발생했다. 배가 삼각파도, 거친 풍랑에 휩싸이는 데도 제 맘에 들고 아는 사람들만 선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일까?
MB의 대실책은 김영삼 이후의 인사 방식을 그 전으로 돌리지 않고 또 선조들의 인사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역사의 거울을 보지 않은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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