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업 참가 정세진, 김윤지 아나운서 등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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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강절 작성일11-01-01 22:32 조회2,442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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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7일 노컷 뉴스. 김 재 윤 기자
KBS가 정세진 김윤지 아나운서를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이하 KBS 새 노조) 조합원 60명을 징계에 회부해 내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 징계는 지난 7월 KBS 새 노조 총파업에 가담한 조합원들 위주로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는 정세진, 김윤지, 박노원, 이재후, 이광용, 아나운서 등 15명의 아나운서와 20여명의 PD 기자 직군 조합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새 노조측은 “사측이 새 노조에 대해 무려 60명을 징계하겠다며 그 명단을 통보해왔다. 집행부는 물론 평조합원까지 포함되어 있다”며 “징계회부 사유로 불법파업, 이사회 방해, 노보에 의한 공사명예훼손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새 노조는 “사측이 징계회부의 사유로 든 지난 7월의 파업은 불법파업이 아닌 임단협 결렬에 따라 진행된 정당한 단체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새 노조는 또 “사측은 새 노조가 ‘추적 60분’ 4대강 편 결방 외압 정황 문건을 공개한 다음날 곧바로 징계의 칼날을 빼들었다. 이번 징계는 ‘추적 60분’ 불방사태로 궁지에 몰린 사측이 새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치졸한 보복 행위”라며 “하지만 조합원들은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끝까지 맞서 징계를 무효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징계가 ‘추적 60분’ 4대강 편 결방과 그에 따른 반발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KBS측은 이번 징계안은 ‘추적 60분’ 결방 사태와 상관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KBS는 징계통보자에 대해 소명을 받은 뒤 다음 주 특별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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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희안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서 그들의 말소리를 들으면 귀와 머리가 힘들고, TV를 통해 그들을 보면 눈과 심장이 불편하던 그 입에 거품문 듯한 제정신 없게 하는 그 가식의 억양들!
저는 자주 이런 방송사 작자들의 방송을 대하노라면, 저들이 나를 죽여버리고 싶어 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금돼지 놈년한테 아무것도 모르고 빠져 있을 때도 그런 느낌에 버틸 방법을 몰라 심리적으로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피인지
타고난 본질인지
추구하는 가치의 세계가 그런 탓인지
짧은 삶이었지만 제대로 작용하는 사고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다운 이였던 탓인지
아닌것은 아니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는 신념이 앙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의와 양심과 도덕을 깨닳아가며 생각하는 저에게 위험의 아우라를 느꼈던 걸까요?
저들은 범죄자들이였습니다. 양장과 양복을 입고, 화장을 하고, 신변의 변동으로 화제에 올라 사람들이 그들이 한마디씩 할 때도, 저는 외톨이 독선자처럼 되었습니다.
적의를 품은 욕설도 많이 했습니다.
치욕, 모욕의 스트레스를 참지 못해 혼자 거칠게 반응할 때도 부지기 수였습니다.
정신이 스프링같은 때문인지 노이로제 같은 질환은 없었습니다.
대중매체라는 그들의 세계가 내가 함께 할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하나님 없는 나 혼자구나 절망했지만, 애국이라는 기초 진실을 더듬거려 알고, 지만원 박사님의 면면에 공감하고,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다행히 그들의 세계가 공감하고 함께 웃으며 울고 해서는 안되는 언론이라는 특이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 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지 않았던 때에도 제 눈과 귀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방송인들과 함께 하는 것은 애먼 고문이였습니다. 도살창이였습니다. 이따금씩 그들을 해석하는 멀쩡한 저를 보고 어머니는 "너, 참 이상하다..." 하셨습니다.
애국을 부여잡고 근거를 대지 못하는 탓에 말이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
문학적으로도 표현해 봤지만 허공에 손놀리기 밖에는 안되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신이 아닌 이상은 아우성처럼으로라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근심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홀로이신 어머니도 생각에 잠기시면서 비웃거나 무시하시지 않는
저의 청산유수 표현이 있습니다. 그 표현은 아시는 바와 같이
"저것들은 김정일 뺠갱이고, 반역의 무리들이고, 빨치산이고, 불순분자들이고, 위선자들이고, 쭉정이들이고, 어린 이승복을 죽인 공산당의 유전자와 뇌를 가진 좀비들이니 그 만큼 이 세상의 나와 맞지 않는 제거되어야 할 존재들이며,엄연한 지옥을 잊은 자들이다."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저주하던 세계의 사람들은 이 귀여운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아니였습니다.
말소리, 억양, 눈짓, 몸짓, 웃음, 눈물 모든 표현 방식이 기계를 사이에 두고 저와 멀어져 있지만, 그 발신지가 특파원 보도이고, 서울 드라마 촬영장이고, 제주도 라디오 녹화 세트일지라도 저는 대부분의 청취, 시청시간에 저는 그들과 언쟁, 시비를 가리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애먼 정신은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힘들게 인내하다가 정확한 진실의 힘을 다행히도 찾게 된 것입니다.
그 옛날 7~80년대 국민학교 저학년적, 당시 전라도 정권이 아니라서 세상이 무서웠던지 작자들, 함부로 행세하지 않는 선생들은 몸조심 말조심으로 일관하며 애국이라는 단어를 교실 벽면에 붙이고 보라고 했고 아이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바로 그 시절의 한가함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귀엽고 예쁘고 반듯한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워 했어야 할 "애국"이였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제 알게 된 그들의 정체와 실체 속에서 한 두살 조무래기 멍청한 조무래기들로부터 그런 대담하고 험악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에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갑니다.
아무것도 신앙하는 것도 없었던 시절, 여동생과는 앙숙처럼 지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속도 모르고 안타까워만 하시니 거리가 멀었으니 저는 정말 위험했고 혼자였습니다만, 이제는
죽어도 좋겠고, 그러면 영광이겠고, 사람이 멋있어 지고, 지혜로워지는 진실의 애국,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희열에 찬 시간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 눈과 귀에 대고 저들이 왼갖 모독을 하고 표현공격을 하고 비꼬는 쇼를 해도 이제는 대한민국의 뒤에 계시면서 의심하시고, 불의를 비난하시고 조롱하시는 빛나는 애국 여러분이 계시기에 이제는 너무나 가슴이 후련합니다.
여러분이, 5000만 대한민국에 저나 저와 같은 번뇌 속에 투쟁을 하던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는 분들임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려 봤습니다.
KBS라는 곳뿐만이 아니고, MBC, YTN, SBS를 비롯한 모든 언론들은 김정일이 멋있어 보여서, 김정일의 말이라면 하나님도 죽여버릴 존재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애국을 잊고 살아온 짧지 않은 시간, 그 빈 시간들을 채우고 그 시간의 영을 몇 곱절 기쁘게 만족시켜주기 대한민국을 걱정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살리라고 오늘 2011년 1월 1일 다짐해 보는 바입니다...
KBS 파업 참가자와 여타 MBC, YTN, SBS 기타 모든 한국 언론의 그런 부류들의 파업이라는 관례 행각의 주인공들에게 하루빨리 하나님으로부터 인생 중징계가 계시길 기원하며....
대한민국 유일의 김정일 책동 구제역 비전염 안심지역
하나님이 과연 이뻐하실까 싶은 전라도 광주에 거주하는
소 강 절 올림.....
2011 / 01 / 01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맨 마지막인 제 딸아이도 고향이 전남 광산군 서창면 마륵리 아파트 ,,. ,,. 제가 늦게 결혼해서,,.
1985년도 경? 육군보병학교 교수부 전술학처 공격과 연대반에서 교관을 할 때,,. ^*^
광주 사람들이 참 좋았었는데 '금 뒈쥬ㅣㅇ'롬의 선전.선동에 넘어간 뒤로부터는 ,,.
제가 Viet-Nam 전에서 귀국, 일시 경북 대구 영천 육군제3사관학교{학교장 소장 '이 근양'님} 교수부
학술학처 일반학과에서 대위 때 교관을 할 적에 전군 교보재 경연 대회에 교육보조재료 出品, 꼴등! ^*^
1등 : 국방장관(?)상, 2등 : 육군총장(?)상, 3등 : 제2군사령관{중장 '채 명신'님}상,
4등 : 전투병과교육사령관{CAC}상
이렇게 수여하는데 ,,. 당시 저는 等外(등외)를 수상! 꼴지{5등?}지요.^*^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관님은 관등 성명이 가물가물하는데 전남 분이신데요. 아, '송 호림'중장님! ///
'장려상'으로 '文化 賞章(문화 상장)'을 수상했었읍니다.
다행히, 그때, 화기학처 중위{육사생} 4.2인치 박격포 교관을 인솔해서 대동, 경연대회에 출품했었는데,
그 중위가 3등에 입선, 3사교의 명예를 선양! ,,. 지금 그 중위는 어디서 뭘 하는지,,.
그때가 아마 1972년도 가을 경 ? ??
광주 출신이시라니 갑자기 '송 호림' 중장님이 생각납니다. ,,.
제17연대장 '백 인엽' 대령 휘하에서 중대장(?)을 지내시면서 6.25 당시 엄청난 전공을 세우셨죠. ,,.
전역 후 '박'통 때 '유정회' 국회의원도 지내셨었죠. 훌룽하신 분! // 보람 찬 새 해가 되시옵기를! 아멘!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그 교보재 경연대회 때, 제 옆에는 최 전방 보병 제15사단에서 온, 말단 소총중대 근무하는 상병(?)이 사단을 대표해서 사단에서 입선된 ㅡ ㅡ ㅡ 그 먼 화천에서 그곳 전남 광주 상무대 육군보병학교 상무관 대강당에 전시했는데, ㅡ ㅡ ㅡ 출품은 'M -16 소총 탄피 회수장치'였었던 걸로 압니다. ,,.
그 병사는 '육군보병학교'라는 곳도 있음을 알고는 놀라던데,,. 눈을 떳었을 겁니다, 그 병사! ,,.
제가 그 경연대회에 참전한 그 15사단 병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이 출품에서 입선되건 락선하건 무관하게, 여기에 출품 전시하려 온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단에 복귀하면, 최소한, 무조건 연대장 특별 포상 휴가 가게 될 것!'이라고 말 해 주었었는데,,. 왜? 병사가 이런 곳에까지 출품, 참가했다는 사실이 벌써 부대를 알리는 계기가되었는고로,,.
그 병사도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이곳 시스템 클럽'의 '지 만원' 박사를 알고 {있게되고} 있기를 바라는데,,.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호남 광주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시는 군요?
몇 년 사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여기 사람들 참 많이 변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하는 사람들 하는 처신을 보면 "남의 인생에 도움 안되는 행동, 무례와 폐가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실력인양 멋인양 해대는 모습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말입니다...
광주, 나주에서만 세상을 살다보니 대한민국이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유독 전라도가 그렇다는 실체를 알게 되고 놀랐습니다.
모르고 살았으면 저마저 똑같은 사람 될 뻔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선량한 국민들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아무튼 inf247661님의 새해 행복을 기원합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두분의 대화글 재밋게 읽었습니다. inf..님에는 닠네임에서 부터 수학적 냄새가 묻어나는데 난해한 글의 전개를 보노라면 딴세상의 글을 읽는것 같습니다. 소강절님!수학 박사 inf..님! 모두 새해 건강하시고 건필을 기대 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5274426410 ← 제목: 목포는 항구다 / 가수: 李 蘭影
앨범: (1974) 이난영 - 흘러간 가요계의 여왕 / 가사: lmhs82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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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소강절'님! 고맙! ^*^ 사실, 저는 군부 생활의 근 1/3정도는 전남 광주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읍니다. 그곳에서 1년을 간부후복생 교육을 받앗으며, 대위 때 고등군사반 교육을 6개월, 육대 이수 후 보교 고군반 교관으로 근 3년, 보.포.기.화학학교 통합되자 그 전투병과학교 행정부 평가실 보병반장 및 교도연대에서 정작장교로 또 근 2년을 지냈으니,,. 그리고 또 기타 업무 차 戰敎司{CAC} 상무대(尙武臺) 다녀간 것까지 헤아리면 햇수로는 아마 1/2 정도는 될 겁니다. ^*^ 임관된 곳도 광주, 군복을 벗는 예편식을 치룬 곳도 그곳 광주이니 전 아마 평생 광주를 잊지 못할 겁니다. ,,.
비단 저 뿐만 아니라, 보병.포병.기갑.화확.공병 병과 부사관.장교들은 육군.해병대 공히 다 그럴겁니다만,,. 광주를 위요한 구례.곡성.화순.남평.장성.평동.영산포.광산군! 모두가 훈련장이지요, 거대하고도 광볌위한! ,,.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장학포' ROKMC Big colonel 대 선배님! ^*^ 덕담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푸근하신 지휘관 같으신 기분입니다. ^^* 남녀를 불문 가장 빼어난 가수이자 비참하게 일생을 마친 목포 출신 가수 '이 난영'님의 일제시대 히트곡 '木浦는 港口다'를 드립니다. 여 불비 례,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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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榮山江 안개 속에 汽笛이 울고. 三鶴島 燈臺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故鄕 木浦는 港口다. 木浦는 港口다. 똑딱선 운다.
2.儒達山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冬柏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故鄕 木浦는 港口다. 木浦는 港口다. 追憶의 故鄕.
3.麗수로 떠나갈까, 濟州로 갈까. 비 젖은 船艙머리 돗대를 달고.
그리운 내 故鄕 목浦는 港口다. 木浦는 港求다. 離別의 故鄕. ㅡ ㅡ ㅡ '이 봉룡' 작곡{'이 난영'의 오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