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等山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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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족도 작성일10-12-29 09:07 조회2,235회 댓글2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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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無等山) 해발f 1187미터 전남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209-5
광주 동구 지산동 , 전남 담양군, 화순군이서면
60년 풍수를 했다는 어느 노인이 말했다.
무등산은 어깨위에 있어야 할 머리가 없는 산이다.
무등산의 정상 부분은 다른 산에 비하여 평평하다는 것이다,
양 어깨위에는 머리가 있어야 되는데 머리가 없다.
그래서 무등산의 정기를 받는 전라도에서는 임금이 나기 힘들다.
머리가 없다라는 뜻은 머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되고,
머리가 없다라는 뜻은 것은 누구의 통제나 지휘하에 있기를 거부한다는 뜻도되며,
머리가 없다라는 뜻은 무리를 이끌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도되며,
그러므로 머리가 없기에 누군가가 머리가 되려하면
이게 내 머리인가? 남의 머리인가 의심하여 머리를 잘라 버리거나
없애버리려는 기운 때문에 반골적 기질이 강하게 일어난다고했다.
그래서 무등산 꼭대기에 머리를 만들어 세워야 하는데
규묘가 아주 아주 큰 탑을 세워야 이러한 것을 진정시킬 수 있다.
라고 하였는데 그 노인이 아직 살아 계실지 의문이다.
만났을 때 풍수 60년 하셨다는데 돌아가셨 다면 풍수 70년은 하시고
돌아 가셨을거다.
김대중은 평생 반골적 기지를 가지고 정치생활을 해왔다
머리 두기를 거부하는 무등산 정기에 의하면 임금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는데
김일성은 광주에 기운을 보내어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치욕으로 남을
광주사태를 일으켰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는 가만히 있는데 마치 전라도 사람들만이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피해자인양 떠들면서 정부에 항거하고 투쟁을
일삼더니 결국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무등산에 머리를 올려 놓은 것이다.
머리가 없어야 할 산에 머리를 올려 놓으니 어떻게 되겠나?
전라도에서는 한을 풀었고 염원을 달성한양 기쁨으로 충만하여
자신들의 세상인양 즐거워했지만.....
머리가 없어야 할 산에 머리를 올려 놓으니
4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김일성이에게 광주사태를 일으켜준 대가로
지불하여서 결국 돌아오는건 핵폭탄 위협뿐이다.
김정일이는 광주에는 핵폭탄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무등산에 핵폭탄을 던져 버리면 무등산은 어께마져
무너져 내려 없어지고 다리만 남아 있는 산으로 변할 것이니
전라도 지방에 더욱 많은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김정일은 이런한 것을 알지도 못하지만 자신과 아버지 김일성을
자신들의 고향이자 조국인 대한민국 보다 좋아하는 전라도에
폭탄을 던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무등산의 기운을 강하게 받는 전라남도 지방에서
머리를 올려 놓으면 안되는 곳에 머리를 올려 놓으면
나라에 크나큰 재앙과 변이 발생한다는 그 노인네의
15년전에 들은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광주는 밝은 빛 고을로 밝게 남아 있어야 하는데
공산주의에 의하여 피로 얼룩져 붉은 빛을 띠우니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광주를 잘나 고 멋있고 귀하고 존경스럽고 가서 살고싶은
그런 고장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고
고향이 광주라고 하면 우선은 경계하여 마음을 주지 않고
멀리하려하고 뒤에서 이유없이 욕하고 있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가 있었기에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는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무등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데 하루 빨리 그의 그늘에서
벗어 나야만 특히 빛고을은 빛 고을다운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 날것이다.
무등산.. 이라 하지 말고
백제 때 부르던 이름 무당산, 신라때 무진악, 고려때 서석산이란
이름으로 달리 부르면
혹여 그런 기운이 없어질려나?
그러나 산 모양이 그러하니 어찌해 볼 수 없을것 같다.
댓글목록
또치님의 댓글
또치 작성일자유 민주주의국가의 호혜 평등주의 사상에 걸맞는 이름입니다. 산과 강 등 지세를 가지고 인걸을 판단하는 왕조시대의 지배사상이 못 된 지역주의를 키워 왔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점쟁이- 무당- 풍수지리가- 이름풀이를 한다는이나 예언가니 뭐니 하는 어떤 부류들도 난 이를 부정해 왔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일그러진 모습이나 생활상에 대해선 제대로 대답을 못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못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주변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놈의 돈을 받고는 뭘 아는 척 하는 사기행위에 오히려 뺨따귀를 갈겨 주고 픕니다.
그 흔하디 흔한 복권 한 장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뭘 남의 인생을 내다 본답시고 잡소리를 늘어 놓는지......
그래, 그많은 점쟁이 무당 예언가들 어느 한 녀석이라도,
"대구에서 사라진 개구리 소년 5아이들"에 대해 알아 낸 일이 있었던가요?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 많기도한 점쟁이를 무당을 예언가들을 단 한 번도 안 찾아갔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누가 헛 말이라도 제대로 했습니까?
그 몇 해 후 어느 등산인이 산 나물을 캐다가 이들의 합장된 시신을 발견해 냈고, 그 이후 아직까지도 그 5아이들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집단 납치하여 어떤 방법으로 살해 했는지, 그 범인(들)을 못 찾지 않았느냐 이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도, 무등산이고 백두산이고 풍수지리가라는 것들의 허황한 산세(山勢) 얘기에 현혹 돼선 안된다고 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성철 스님의 초 자연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운 표현이 아닙니까?!
달마님의 댓글
달마 작성일마음이 허한 사람들이 비의와 초월존재를 찾지요..... 깨어 있는 사람 앞엔 풍수지리란 한낱 부질없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하족도님의 댓글
하족도 작성일
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그릇은 어떤 일을 직면 하더라도
뛰어난 대처 능력을 발휘하고,
무지한 사람은 그저 용감하여 만용을 부릴 뿐입니다.
세상은 항상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는데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胡說八道하는데,
공자님 말씀 한마디..
세상만사 이미 정하여져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혼자서
공연히 바쁘다.
삶과 죽음은 命에 있고 부하고 귀한것은 하늘에 있다.
주역을 2,500년전에 헤어질정도로 읽으시고
명심보감에 남긴 글입니다.
공자님 말씀 어찌 생각하시는지 김종오니?
금강야차님의 댓글
금강야차 작성일
육관도사 손석우가 생각납니다. '터' !
중3때 담임이 수학이었는데 수학책 뒤에 몰래 숨기고 '터' 읽다가 걸려서 손바닥에 불났습니다!
돈 타작했다고 들었습니다.!! ㅋㅋ
육관도사의 말....
98년도에는 남북교류가 활발해져서99년쯤 통일이 될 것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족도님의 댓글
하족도 작성일
우리나라 무당들이 그리 쪽 집게였으면...
김정일이 김정은이 발리 죽게 해달라고 굿판 벌렸을거고,
그리하면 벌써 그들은 죽었어야 하지 않은 감여^^^
뭐 그리 다 믿을거는 못되겠지만 그럴 듯한 말은 그냥 재미삼아 흘립시다.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작성일
조선 선조 당시 영의정을 두번이나 지낸 아계 이산해 님의 작은 아버지였던 토정 이지함 선생은 아계가 태어날 때 터져나온 그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내 조카는 틀림없이 정승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합니다.
세간에 그 분의 저서다 아니다 이견이 분분한 격암유록이라는 책을 둘러싼 논쟁의 주인공인 격암 남사고 선생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남기셨죠.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다음 글들을 통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남사고 선생과 관련된 일화 중에 몇 가지들입니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남사고를 송정(松亭)에서 만났다.
남사고가 서쪽으로 안산(鞍山:仁王山을) 가리키고 동쪽으로 낙봉(駱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다음 날에 조정에 반드시 동서(東西)의 분당(分黨)이 있을 것이오. 낙(駱)이란 각마(各馬)로써 끝에 가서는 제각기 흩어지게 마련이고 안(鞍)이란 혁안(革安)으로서 개혁(改革)한 뒤에라야 편안해질 것이요, 또 성 밖에는 당들이 실시(失時)한 사람이 많아서 반드시 시사(時事)의 개혁이 있어야만 일어났다가 마침내는 없어질 것이오."
그 뒤에 과연 서인(西人)의 당은 모두 실시한 사람이 많았다.
처음 심의겸(沈義謙)의 무리는 공헌대왕(恭憲大王)이 즉위할 때에 크게 일어났다가 정철(鄭澈)이 정적(鄭賊)의 변(變)을 진정시킨 뒤에 다시 일어났다. 또 윤두수(尹斗壽)의 무리는 선조가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할 때를 타서 일어났다. 또 몇몇 사람들은 금상(今上)이 즉위하는 초년에 일어났다.
한편 동인(東人)의 당은 남(南)과 북(北), 대북(大北). 소북(小北). 육북(肉北). 골북(骨北)의 이름으로 각각 나뉘었으니 그 말이 과연 맞다 하겠다)
_______________어우당(於于堂) 류몽인(柳夢寅)이 상재한 [어우야담(於于野談)] (붕당) 편에서____
남사고는 울진(蔚珍) 사람이다. 점을 잘 치고 망기(望氣)를 잘했다. 일찍이 맑은 아침에 동쪽을 향해 저주하기를 "살기가 몹시 성하니 고약한 일이로군!" 했다. 그는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임진년이 되면 왜병이 반드시 크게 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은 조심하라" 라고 했다. 그 뒤에 남사고는 이미 죽었으나 그 말은 맞았다고 한다.
______________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 <방술(方術) >편에서____________________
남사고는 명종때 사람으로 관동(關東)에서 살았다. 그는 풍수(風水)와 천문.복서.상법(相法)을 잘 알아서 모두 전하지 않는 비결을 얻었으므로 말하면 반드시 맞았다. 명종 말년에 서울에 와 놀면서 판서 권극례(權克禮)와 서로 친했다. 일찍이 말하기를 "오래지 않아서 조정에 반드시 분당이 일어날 것이며 또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왜변이 있을 것인데 만일 진년에 일어나면 오히려 구할 수 있지만 사년(巳年)에 일어나면 구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일찍이 사람에게 말하기를 "사직동(社稷洞)에 왕기(王氣)가 있으니 마땅히 태평한 임금이 그 동네에서 날 것이다." 라고 했다. 김윤신(金潤身)과 함께 동교(東郊) 밖을 지나다가 태릉(泰陵) 근처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명년에 동쪽으로 태산(泰山)을 봉(封)할 것이다."하니 윤신이 괴상히 여겨 다시 물으니 남사고가 말하기를 "내년이면 마땅히 알 것이다."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이 여러 가지라 그 예를 다 들 수 없다. 조정에서 을해년부터 의논이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장차 50년이 되어도 그치지 않으며 왜병의 침입은 임진년에 시작되었으며 선조가 사직동 잠저(潛邸)로부터 들어와서 대통(大統)을 계승했으며 태산(泰山)이란 곧 태릉(泰陵)으로 문정왕후(文定王后)가 그 다음해에 돌아가서 태릉에 장사지냈으니 우리나라에도 또한 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 했다.
________________[대동야승(大東野乘]), 제25권 신흠의 <상촌잡록(象村雜錄)>)에서____________
남사고는 울진 사람이다. 그는 학문에 힘써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상위(象緯:天文), 감여(堪輿:風水地理), 점험(占驗:占卜)에 통달해 말과 일이 모두 기묘하게 적중했다. 여러 번 고향에서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했다. 그의 친구들은, "자넨 남의 운명은 점칠 줄 알면서 자기의 운명은 헤아리지 못해 해마다 허송세월만 하니 어찌된 일인가?" 하였다. 남사고는 웃으면서 "내 뜻이 움직이는 곳은 술수(術數)가 남몰래 이루어지는 것이네. 사심이 동하면 술법도 어두워지는 것이지." 하였다. 말년에 천문교수(天文敎授)로 서울에 있을 때 태사성이 흐려지므로 관상감정 이번신은 바야흐로 자기가 그 징조에 해당된다고 하니, 남사고는 웃으면서, "제 자신에 그 징조가 해당할 것입니다." 라고 하더니 그는 과연 병으로 죽었다.
_______[연려실기술] 제15권 (식소록), 현묵자(玄默子) 장주(長洲) 홍만종(洪萬宗)이 상재한 [해동이적(海東異跡] <무명씨전(無名氏傳)> 에서____
남사고가 일찍이 말하기를 임진년에 백마를 탄자가 남해로부터 오면 나라가 거의 망한다고 하더니 훗날 왜장(倭將) 가등청정(加藤淸正))이 과연 백마를 타고 왔다. 그는 또 일찍이 말하되, 태백산은 5천년 안에는 병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 하더니 남사고에게는 그의 서손(庶孫)이 있어서 아직도 그곳 옛날 터에 살고 있다고 태백산의 중(僧) 혜능(惠能)이 말한다.
____________현묵자 장주 홍만종이 상재한 [해동이적] 중에서________________
일찍이 강릉(江陵)에 갔다가 한송정(寒松亭)이 불에 탄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탄식하기를, 지금부터 30년 동안에는 강릉에서 과거에 오르는 선비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남사고의 예언(豫言) 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읍중(邑中) 유사(儒士) 최운부(崔雲溥)가 과거에 급제한 뒤 양친을 위하여 경연을 장차 열려고 하자 격암(格菴) 선생이 읍인(邑人)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모름지기 잔치에 가 보시오. 이 후로는 이 읍(邑)에서는 30년 동안 이와 같은 경사는 없을 것이오.' 후에 이오(李?)가 비로소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그 일이 있은지 바로 31년 후였다.
하루는 영동(嶺東)을 지나다가 홀연히 하늘을 쳐다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에서 떨어지듯 내려와 근심스러운 말로, 지금 이 시간에 조선을 잔해(殘害)할 놈이 태어났다고 하더니, 뒤에 들어보니 일본에 풍신수길(豊臣秀吉)이 그 날에 출생하였다고 한다.
__________________홍만종의 [해동이적} 중에서______________
선생이 여러번 향시(鄕試)에는 합격했으나 끝내 과거(科擧)에는 실패하자 어떤 사람이 농담삼아 말하길 선생은 남의 운명(運命)을 헤아리는 것은 능하면서 어찌 자신의 운명은 헤아리지 못하는가 하였더니, 웃으면서 대답하길 사적(私的)인 일에는 욕심이 개입하기 때문에 추산(推算)하는 술(術)도 분명히 판단하지 못하는 법이라 하였다.
어느 날 과거를 보려고 길을 떠나면서
"진정 괴롭구나. 이렇게 이(利)한 것 같기도 하고, 불리(不利)한 것 같기도 한 이번 길을 가야만 하다니"라고 탄식하였다. 이에 문인 남세영(南世榮)이 "선생님이 역리(易理)에 밝으신 터에 이(利)하면 가시고 불리(不利)하면 안 가시면 되는 일을 가지고 어찌하여 이렇게 탄식을 하십니까?" 하고 위로하였더니, 선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 운명을 점쳐보니 글귀 중에 <부디 공명일랑 짓지 마라. 또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놀라게 할 사람이 될 것이다(不作功名客亦作驚天動地人).>하였으니, 우리가 오늘에 살면서 입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과거를 통하는 길 뿐인데, 이 길(공명을 짓지않는 길)을 택하지 않으면 도저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업을 이룰 수 없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이룰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혹시 이룰 수도 있지 않겠나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___________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남격암유적(南格庵遺跡), 만휴(萬休)임유후(林有後)의 격암선생유전_(格庵先生遺傳)_____________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기독교의 폐단중 하나가 다른 종교나 사상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만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분들은 영국의 물리학자가 저술한 [동양사상과 현대물리학]이란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상당히 오래된 책인데, 그 책에서 현대물리학자인 카프카는 동양의 신비사상은 현대물리학이 발전하고서야 증명된 진리를 수천년, 혹은 수백년 전부터 수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서양의 실존철학인 이기이원론이 양자역학의 발전과 더불어 서양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동양철학에 심취해 있는것이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퇴계학도 미국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연구된다는데....
무학대사와 정도전, 경복궁의 방향, 그리고 화기를 막기위한 숭례문의 이야기는 역사책에도 나와 있지요.
이율곡 선생이 10만양병설을 주장하다 거절당하고 고향인 임진강가에 와서 화석정을 지은것은 유명한 이야기지요. 관솔을 많이 사용하고 정자를 매일 기름칠하는걸 보고 영문을 몰랐으나 선조가 장마철 피난갈때 화석정을 태워 불을 밝힌것은 참으로 유명한 일화지요.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하족도 님!
공자말씀에 어디 틀린말씀이나 잘 못 된 말씀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공자 말씀 어느 한 구석에라도 "며칠날 몇시에 발행변호 몇번짜리 복권을 사라, 그러면 일확천금으로 부자 되리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까? 공자 말씀을 무등산 얘기에 곁들이면 안되지요.
그리고 금강야차님의 육관도사 얘기도 등장하나 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육관도사(손석우) 어른을 잘 압니다. 미국에도 같이 가는 등등, 박정희 대통령의 국립묘지 묘터를 두고 '지창룡과 손석우의 대립'을 보노라면 성깔 나쁜 애들의 개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 더 얘기 하리다.
이곳 충북 음성엔 유엔사무총장(반기문)이 태어났다고 하여, 전국의 풍수지리 패거리들이 패철을 들고 아마 수 천명은 다녀 갔을 겁니다. 그러나 반기문이 태어난 그 마을이 유명해 지기는 커녕, 공동묘지 마을로 변해갈 것이라고는 어느 예언가도 어느 풍수지리 전문가도 에언한 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기문 생가마을이 지난해부터 공동묘지 마을로 둔갑해 가고 있음을 어찌하오리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광주 반씨'들의 수백년 혹은 수십년 된 묘소들을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은 겨우 10 여호(戶)의 농촌마을 뒷산에다 백여기(基)의 묘지를 이장해 와서 공동묘지 마을이 되 버렸습니다.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앞 산에서 찍어 둔 이 마을 전경을 인터넷에 올려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또 명예훼손이다 민사다 형사다 하며 시끄러울 것이 뻔 하기에, 이를 그만 두렵니다.
관심 깊은분들은 한 번 내려와(동서울~음성 Bus 8.400원) 이를 한 번 확인해 보시기를......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저야 풍수지리설을 믿은 바 없었고,
세상돌아가는 것 봐서 이곳에 몇마디씩 글 올린 것 밖에 없으나
어쩐 일인지 몰라도 이렇게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올린 것은 기가 막히게 맞네요
이게 불행이 아니고 뭔지????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역경(易經)! 유교의 삼대 경전중 하나이고 주나라때 대성했다고 해서 주역이라 했다 함은 모든이들이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 저 나름대로는 의미상으로 동양인의 전통적인 우주관으로 집대성된 이론이다 라고 이해 합니다. 오래간 만에 님들께서 고전의 서책을 준거로 하여 상호 고견을 서로 주고 받으시며 담화하시니 저는 아주 흥미롭고 또 재미가 있습니다. 이 역경이 동양인의 생활 속에 여러갈래로 침투되어 뚱단지 같이 나타난 것이 역술이니, 풍수지리니, 점술이니 무당들의 무술이니 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결과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은 허무맹랑하게 세인의 마음까지 미리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는 경우가 있어 이런 대목에서 모두가 주관없이 혹하게 되면 원래의 유교경전 역경의 순수의미를 받아드리는데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접목되어 어떤 경우엔 흥미본위로 나약한 세인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비켜나가는 이론으로 둔갑되어 가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신기하리 만큼 뛰어났던 옛 술수사들도 옛날에는 계셨지만..
사람들을 혹세무민 하는 사기꾼 술수사가 또 지금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죠.
그런 부분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무등산에 관련된 풍수가 참 참신하게 느껴졌는데,
공감하시는 분들이 몇 없으신 듯 하여, 남을 정말 위하는 참 술수에 대한
생각을 전해드리고파서 글을 장문으로 인용해 올려보았습니다.
술수라는 것,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겠죠..!
뉴스보도를 봐도 사람 망하게 만드는 사기꾼 술수사들 너무 많이 저도 봤습니다.
순진하게 맹신하거나 의지하는 것은 금해야 할 것입니다...!!
하족도님의 댓글
하족도 작성일
나는 풍수를 모릅니다.
풍수 전문가가 이 글을 읽고 댓글을 올렸으면 기대하는데
풍수 전무가들은 바빠서인지 정치에는 관심이 없나 봅니다.
어떤 학문이나 사안이나 전부 아니다 라고만 할 수 없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봅니다.
그 노인네는 충청도 서산에 사시던 분이었는데
당시 이야기를 들을 때 김대중이 대통령 하기전 이었습니다.
정조대왕이 1800년에 붕어하시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정조대왕을 훈련장으로나 쓰는 惡地에다 정조의 묘를
썼다 합니다 정조대왕 붕어하시고 불과 100년도 안되어
조선은 망합니다.
이렇듯 풍수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들리는게 많습니다.
너무 아니다라고만 한다면 왜 프랑스에서도 천주교신부들이
묘지를 정할 때 수맥을 보고 지리를 봐가면서 묘지를 쓰는지...
긍정적인 면도 부인 할 수 없는것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사망 후 물이 차서 시체가 썩지 않고 퉁퉁 불어 있는 곳
그런 곳에 묻히고 싶은 분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
그 노인네의 말씀이 무등산의 모양을 보고 다른 산보다
우뚝하게 선 봉우리가 없고 전반적으로 평평한 것으로 보이는 산세
를 보고 한 말씀으로 생각되는데
믿거나 말거나는 모두 독자의 몫입니다.
스스로들 혜량하시길......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하족도님 그러니까 역경은 동양인들의 자연법칙에 근거한 우주과학 분야라 인식되고 있는 듯 합니다. 역경에서 동양인들이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이론 전개는 곧 과학이론 전개라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형따지는 것과 4방위 보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이라고 저는 봅니다. 지나가다가 양지바른 쪽에 위치한 묘를 볼때 아늑하기도 한 묘소는 우선 자연에 안긴 그대로로 보기도 좋더군요. 그러나 묘쓰고 5대 뒤에 후손 중 정승이 나온다든지 또는 후손이 끊어져 가문이 멸망한다 등등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경우에 보통강심장이 아닌 사람인 경우엔 지관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는 외통수 결론이니까요. 그래서 지관이 밥벌이를 쉽게 하는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님의 말씀에 저는 공감되는 부문이 많이 있습니다.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소강절님 오랜만에 이런 대화도 해 보니 좋습니다. 한가지 빠트린 것은 역경이 일부 불가에 까지 젖어들어 이상한 불교 파도 많고 또 우리 생활에 가장 핵심적으로 침투된것이 작명술이란 것도 있는데 하여간 어느 부분 까지는 재미가 있으나 더 빠져 들면 자기 주관이 없어지는 지경이 되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부평초 같은 처신을 취하는 사람처럼 될가 보아 이 또한 색다른 관심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불가에서 그런 짓도 하는 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제 닉네임인 소강절 만한 분을 만나고자 한다면
심각하고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운 자들의 사악한 행위가 백주대낮에 군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느 부분까지는 재미가 있으나 더 빠져들면 자기 주관이 없어지는 지경이되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부평초같은 처신을 취하는..."
제게 자극을 주는 문구이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건필 하셔요...!!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소강절님 송구합니다. "자극" 받으셨다는 말씀을 해 주시니 혹시나 하여 오해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음해하고자 하는 문귀가 아님을 거듭말씀드립니다. 만약 그런분야에 너무 도취되는 저의 경우가 된다면....의 제 입장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해명 해 드립니다.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어르신, 오해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자극이란, "깨닳음이나 그에 비슷한 자극, 그런 좋은 영향" 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자극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미적거렸는데
이런 오해를 불렀군요...
오해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휴~!
금강야차님의 댓글
금강야차 작성일
우와~ 정말 댓글이 많이 달렸네요!
하족도님이 글 잘읽었습니다.
참고로 조는 묘'자리보다는 '집터'에 관련된 풍수지리는 어느정도 믿는 사람입니다. ^^: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금강야차님의 집터에 관한 말씀은 우리 산사람들의 생활의 주된 지혜이기에 아주 적합한 소신이라 보겠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좋은 자리에 집을 세운다던지 운용함은 일종의 생활지혜중 가장 현명한 분별력 있는 자연 생활과학에 순응하는 태도에 들어간다고 모두들 보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경치 좋다고 아무데서나 강가옆에 바득이 한여름 장마 물 불은 뒤 떠내려 갈것 생각치 않고 미련스럽게 터를 잡고 집을 세울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것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