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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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ystemgood 작성일10-12-29 13:52 조회1,906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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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충남 부여군 은산면의 벽촌에서 6남매중 다섯번째로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6살 때 돌아가신 뒤 홀어머니(조용련·현재 77세)밑에서 어렵게 자라났다. 어머니는 1천여평의 논밭과 한우 3마리로 자식들을 키웠으나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다. 때문에 다른 형제들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가 대학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대전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친척 한분이{누군가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그를 대전으로 데리고가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대전서중을 거쳐 대전고를 졸업했다. 고교 선생님들은 그에게 서울대 의대진학을 권유했지 만 그는 아무 주저없이 서울대 수의과에 지원, 72년 합격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식구를 먹여살린 소에 대해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쭉 생각해왔어요.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논두렁에서 꼴을 만들어 지게에 가득싣고 소에 먹이던 모습을 평생잊을 수 없어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그 모습을 생각합니다.} 또 소의눈에서 한없이 어질고 평안한 모습을 보라보면 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공과정이 시작된 2학년부터 그는 그 흔하던 미팅 한번 해보지 않고 도축장이나 가축병원에 드나들면서 소의 항문에 손을 집어넣어 장기를만져 소의 상태를 진단하는 [직장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해외출장 때를 제외하고는 최소 1주에 2∼3번씩은 [직장검사]를 한다. 지금까지 30만번 이상했다. 전국에서는그보다 많이 소의 항문에 손을 집어 넣어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는 {손끝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직장검사를 계속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소의 자궁에 수정란을 집어넣어 수태에 성공시키는확률은 평균 63%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30% 수준이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평균 50∼60%를넘지 않는다.
그는 학교를 다닐 때나 박사과정을 마치고 4년동안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동안 전국의 3백여개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소를 만지고 실험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에 있는 그의 집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농민들로부터 {우리 소가 아프다}는 구호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그는 싫은 소리 한마디 않고 달려가 소를 진단하고 병을 고쳐준다. 그래서 그는 소를 기르는 축산농가들 사이에 {소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불리고 있다. {황우석을 모르면 간첩}이라고도 한다.
이같은 평가에 대해 그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단호하다. {우리는응용과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연구실 연구만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수 없어요. 농민들의 농장은 그자체로 훌륭한 살아있는 연구실이지요.소똥도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와 그의 식구들을 먹여살렸던 사람들도 다름아닌 이 농민들이었다.
그는 85년 7월 서울대 수의대학 학장이던 정창국교수로부터 {세계적 학문조류인 수정란 이식을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가나가와 히로시교수가있는 일본 북해도대학으로 갔다. 그는 이 대학에 서 10개월동안 머물렀는데 이 기간동안 평소 그를 알고 있던 농민 10여명이 부인과 어머니, 두아들이 살고 있는 서울 집으로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일본에 있는 그에게도 생활비의 일부를 보내주었다. 이들은 아무말도 없이, 아무 대가도 없이, 그냥 그가 좋아서 매달 5만∼10만원씩을통장에 넣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무조건으로 나를 도와준 농민들에게보답하기 위해 나도 무조건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그는 어떤 때는 하루에 2∼3시간만 자며 연구를 했다. 당시같은 연구실에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온 유학생이 12∼13명정도 있었는데 다들 그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가나가와교수도 그의 성실성과 집념에 반해 유학생중 유독 그만을일본의 목장이나 연구소에 직접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실습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가나가와교수는 지금도 그가 일본에 출장가면 부부가 공항까지 나와 맞이하고 일본 유명 학자 등을 자기 집에 불러 잔치를 벌여줄정도로 그를 아끼고 있다. 일본의 축산 현장에서 그는 {결국 기계화로생산성을 높이고 첨단기술을 접목시키지 않으면 우리 농촌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출처 : http://jsmain.egloos.com/9715032
댓글목록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어딘가 모르게 가슴에 와 닺는 분이라고 생각 했는데
시원한 목소리
밝은표정
우리시대의 지나간 거울 같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심정......
좋은 글 소개 감사드리며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군요.
東素河님의 댓글
東素河 작성일
황박사!
진실이 뭔가는 모르지만 한국의 미래를 이어나갈 하나의 획은 틀림없어 보였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태국에서 계속 연구하는 걸로 보이던데 최근의 근황은 어떠한지... 그래서 그런지 황박사의 눈도 꼭 황소눈처럼 컸지요. 아까운 인재를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로 잃은 것같은 느낌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 좋은 소식 감사!!
systemgood님의 댓글
systemgood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로 그리된게 아니고
좌파 당이 국부를 해외로 빼돌린 것입니다
금강야차님의 댓글
금강야차 작성일
한나라당 (광주)정두언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엉엉" 거리며 울때하고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장이 질질짜는 모습이 어찌그리 비스무리한지!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동소하 선생님
그분은 동료의 시기나 질투에서 빚어진 일이 아닙니다.
panama님의 댓글
panama 작성일그분을 믿는다. 혼란을 잠재우는 획을 귿는 새로운 연구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