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筆耕士)와 청소장(淸掃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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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발해의꿈 작성일10-12-20 15:11 조회1,920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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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筆耕士)와 청소장(淸掃長)
渤 海 人
(2010. 12. 20.)
● 필경사(筆耕士)의 인생행보
해방(1945년)을 앞둔 3~4년전 전라도 남해안 풍광 좋은 섬마을의 P氏 문중에서 연년생으로 4촌 형제가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어릴 때 글씨를 뛰어나게 잘 쓸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아 서당훈장으로부터 천재소리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1960대 초중반, 이들 형제는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형은 논산훈련소에, 동생은 광주지역 향토사단 훈련소에 입대하였습니다. 동생보다도 더욱 글씨를 잘 쓰는 형은 논산훈련소에서 필경(筆耕)하사관(흔히 챠트chart병이라고 표현함)으로 다른 동료 한 명과 같이 발탁되어 육군 내에서 최고의 필경사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훗날 이들이 쓴 문서를 모처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한글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형되는 사람은 1군사령부 예하부대에서 제대한 후, 취직차 고향에서 상경하여 우연히 정보사령부에 장기하사관으로 근무하는 훈련소에서 같이 차출된 필경사 동기를 만났고, 이후 상당기간 동기생의 필경사 업무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그때 몰래 챙긴 국가 기밀문서를 미국에서 사업하는 동생에게 건네주었고, 동생은 이것을 잘 다듬어 미국을 방문한 당시 야당지도자(훗날 대통령이 되었음)에게 단독면담 후 브리핑을 하였고, 감탄한 야당지도자는 훗날 동생을 최측근으로 중용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보사령관은 필경사가 쓴 챠트로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후 야당 지도자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국가 기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지금도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청소장(淸掃長)의 항의
1970년대 강남 개발 붐이 한창일 때, 전주 이氏 직계종손 한 사람이 청와대에서 청소담당관으로 근무했습니다. 얼마나 인성이 올 곧은지 이 사람의 행동거지에서 양반의 향기가 묻어났습니다. 그래서 별명도 ‘조선왕족’이라고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청빈하여 항상 가난했습니다. 특히 종손이라 지내야 할 조상님들의 제삿날 차례상 장만에 무척 고심하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조상이 밥 먹여주냐? 적당히 해라!”고 충고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이빨이 빠져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본 대통령(이하 ‘어른’)께서는 이 사람의 가정근황을 물었고, 남의 집 단칸 방에 기거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대통령부속실에 의하면 어른께서는 “최소한 양반 댁 종손 체통을 지키도록 해주어야 할 텐데…”라고 걱정하시더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이 사람은 국가기밀 문서 파쇄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른께서 일과를 끝내고 집무실에서 퇴청하시면서 이 사람에게 청소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때 건설부 장관에게 하명하는 강남 부동산건 개발문서 하나를 슬쩍 흘려놓은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그 문서를 퇴근길에 들고 나가 현대건설 또는 강남부동산 업계에 찾아가면 적은 평수의 아파트 하나 정도와 교환할 수 있는 값어치는 된다고 어른께서는 판단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이 사람은 부속실을 통하여 어른을 뵙고 꼭 전달해야 할 문건이 있다는 말에 면담하도록 했더니, 그 문서를 내보이며 이렇게 중요한 문건을 아무렇게 바닥에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졌던 모양입니다. 어른께서는 “내가 그 녀석에게 야단맞았다”라며 즐거워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 이 사람은 제5공화국이 들어서자 퇴직하여 청원경찰에 몸담은 후 은퇴하였습니다.
문득 오늘 필경사와 청소장에 대한 인생사 살아가는 요령에서 두 사람의 행적이 너무나 각인되어 이 글을 씁니다.
댓글목록
피안님의 댓글
피안 작성일
로버트 김 스토리가 생각 난다.
미 해군정보국에 근무한 한국계 사람으로 한국이름 김 채곤,
1996년 스파이 혐의로 FBI 에 체포되어 9년형 받고 구금
2004년 7월에 석방됨.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필경사(筆耕士/철필로 프린트 용 원판에 글 잘 쓰는이)란 직업이 요즘엔 없어졌으니(차트사야 물론 있지만..) 그렇다 치고, 청소장(淸掃長)이란 요즘 말로는 '미화원 팀장'이라던가......
비슷한 처지에 놓였으면서도,
필경사는 이완용 처럼 매국(賣國)을 했고,
청소장은 안중근 처럼 애국(愛國)을 한 표본이었습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이런 청소장같은 분이 청와대 에 많았으면 얼마나 국격있는 국운이 상승할까? 지금 양적 껍데기만 컷지 정신이 황폐한 사회인데 대한민국이 앞으로 온전할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