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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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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2-11 05:38 조회1,93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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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 죽음의 행진과 원산형무소

 

여기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소위 말하는 ‘죽음의 행진’이란 만행 이야기다. 대한민국 각처에서 인민군과 소위 말하는 바닥 빨갱이의 행패는 종교인들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한층 끔찍했다. 인민군이 철수할 때, 그러니까 1950년 10월에 들어서서 그들은 천주교인들을 악랄하게 처형하였고 또 수많은 사제 수도자들을 납치해 끌고 갔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처음 시작은 서울의 영천고개, 혜화동 고개, 미아리고개서부터 강제행진이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죽음의 행진’이었다. 특히 ‘죽음의 행진’은 1950년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 사이에 700명의 미군 포로를 앞세우고 수도자 사제들 그리고 민간인들을 뒤따르게 한 처참한 도보의 고난의 길이 대표적 ‘죽음의 행진’ 길이었다. 평안도 만포와 고산 길을 지나 중강진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로인 압록강변의 산길에서 일어난 행진의 대명사이다.

눈보라가 치는 혹한의 280km 강제행진! 북쪽 땅은 이미 기온이 영하 30도로 떨어진 한겨울에 들어섰는데, 인간으로서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의 길을 공산주의자들이 700명 미군 포로와 사제, 수도자, 그리고 양민들을 개돼지처럼 끌고 행진한 만행의 길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모질기도 하고 또 신앙인이기에 기도의 힘으로 버텼을 터이지만 그 가운데 아사자가 속출하였고,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아 오늘에 와서 그때의 사실들을 증언한 사제 수도자들이 있으니 이런 행적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렇게 악랄했다. (참고 :《동토에서 하늘까지》2009. 11. 21. 바오로 뜨락 발행)

《동토에서 하늘까지》를 읽어보면 우선 너무나 슬프고 애잔한 마음이 가슴 속에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신앙인의 굳건한 표양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도 된다. 김일성의 공산당, 그들은 착한 목자의 길을 걷는 사제와 정결, 순명(殉名?), 청빈의 삶을 사는 수도자 등 가릴 것 없이 이렇게 인간으로서는 감히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을 수도 없이 저질렀던 것이다.

 

개신교의 원산 명사십리 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활동을 하던 한준명이란 훌륭한 성직자가 있었다. 김일성의 종교탄압이 극렬했을 당시, 한준명 목사는 원산 형무소에서 죄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죄명은 김일성 어버이를 따르는 인민들에게 예수를 알렸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한목사가 형무소에서 감금당해 생활을 할 때 그곳에는 250여 명의 다른 이북 주민들도 있었다고 했다.

1950년 6․25 이전 이야기다. 공산주의자들이 지목한 사상에 관련된 사람들과 대다수 종교인들이 느닷없이 죄수가 되었다. 형무소 생활은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생지옥이었다고 증언했다. 견디다 못한 수형자들은 몸은 병들어 늘어져 죽어가기 직전이었고, 형무소 내의 노동은 감당해 내기 어려운 혹독한 형벌이었다고 했다.

저녁이면 감방마다 널브러진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처량하였고, 희망도 없는 공포의 삶 속에서 모두의 의지는 꺾여가기만 했다. 그런데 형무소 안에서 한준명 목사의 눈에 홀연 천사 하나가 보였다고 했다. 그 천사는 다름 아닌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소재의 천주교회 주임 신부인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였다고 했다. 당시 형무소 생활이 너무 참혹해 성직자인 한목사나 다른 신앙인들도 겉으로 드러내 놓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행위도 버거웠다고 할 정도였는데, 이광재 신부는 자신의 지친 몸을 이끌고 중얼거리며 지쳐 늘어진 다른 수형자들에게 일일이 손수 물을 떠다 입에다 넣어 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유심히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신부의 정성은 자신보다도 같이 감금된 옆 사람에게 변함없이 더욱 지극하였다고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자한 웃음을 띠고 한결같았다고 했다.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얼굴도 닦아주고.

1950년 6․25가 나고 그 해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뒤 계속 진격하여 빠른 속도로 북진할 때 원산 형무소에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 250여 명은 다급하게 후퇴하는 인민군들에 의하여 모두 무참히 총살당했다. 거기에는 목사와 신부도 여럿 있었고, 외국인 수도자와 불교 승려도 있었다. 기적적인 사실은 세 사람만이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한준명 목사라고 했다.

후일 한목사가 형무소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 어디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주교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의 행적을 원산 형무소에서 처음 보고 뒷날 목회활동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 간증으로

참혹한 희생

널리 소개해 비로소 이광재 신부의 순교는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한목사는 그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가 되어 온 인민군들에게 반공교육을 시켰고(1.4 후퇴 이후인 이때 나의 아버지와 같이 포로들을 가르치는 교육담당관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당시 인민군으로서 반공포로로 전향한 사람들은 7,000여 명이 훨씬 넘었다고 했다) 그 이후 한목사는 일부 반공포로들과 같이 호주로 넘어가서 거기서 살았다.

한목사가 고국에 오면 그때마다 신앙 간증을 할 때 이웃사랑과 기도에 대하여 강론할 때면 반드시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의 순교 모습을 예로 들어 말한다고 했다. 이광재 신부가 형무소 안에서 중얼중얼거리면서 다니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사제가 바치는 성무일도 기도문이었고 묵주신공 기도였다고 했다. 인민군에 총살을 당할 때도 250명 다른 이웃과 또 한 사람의 신부와 같이 하느님께 자신의 몸을 온전히 맡기더라는 것이다.

한목사는 이신부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한목사가 천주교회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이때 베네딕또(분도) 수도원 덕원 관구의 힐라리오 수사 신부 일행도 원산형무소에서 순교하였던 것이다.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는 1909년생으로 1950년 10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향이 강원도 북부 이천군이고 포내 본당 출신인데 노기남 대주교의 후배이다. 1939년도에 강원도 춘천교구 양양군 천주교회 주임 신부로 소임을 받아 1950년도 6․25가 나기 얼마 전까지 나의 고향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그때 마침 강원도 평강의 신자들을 돌볼 일이 있어 그곳에 잠시 갔다가 인민군에게 붙들려 곧바로 원산형무소에 감금되었다고 했다. 공산주의자 김일성의 만행은 도처에 이런 슬픔을 안겨 놨다.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의 순교를 기리는 기념관은 지금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천주교회 뜰 안에 있다.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

화곡 선생님께서는 글 솜씨도 뛰어나십니다.

正道님의 댓글

正道 작성일

북한에서 김일성 유일神.말고 종교자유가 있나요?
개정일이 가장 증오하는 것이 타 종교입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무조건 퍼주자 주장하는 종교인에게
이보다 좋은 표현이 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북한을 우상화 하는 한상열이 같은 놈 빼고
6.25 전란과 자유월남의 패망에서
종교인들은 갚진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성직자와 목회자중에는 참 좋으신 분도 많은데.
일부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문제로 지적되네요~`
일부 상스런표현 이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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