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창고에 꽃게 3t… 죽어도 여기 못나가"
26일 오전 11시 서해
연평도 면사무소에서 "
인천으로 가실 주민은 지금 선착장으로 나와주십시오"라고 마을에 안내방송을 했다. 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사는 이유성(83)씨와 강선옥(82)씨 부부는 확성기 쪽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그물 손질을 계속했다. 부부는 "연평도 상황이 안정되면 이 그물로 자루를 만들어 갯벌에서 캐 온 굴을 담아 팔 거야"라고 했다. 곁에있던 딸 이기옥(50)씨는 "남편과 시댁 모두 인천으로 대피했다"며 "포격당할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부모 모시며 이곳을 지키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남았다"고 했다. 이유성씨 부부는 1951년 1·4 후퇴 때 북한에서 연평도로 피란온 뒤 농사와 굴 채취를 하며 5남매를 길렀다.
- ▲ 주민 대부분이 연평도를 빠져나간 26일 오전 11시 이유성·강선옥씨 부부와 딸 기옥(오른쪽)씨가 그물을 손질하며 대화하고 있다. 이들은“위험해도 평소처럼 내 터전인 연평도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우리 주민이 떠나면 여긴 '빨갱이' 세상이 될 거예요.
북한이 군대만 섬에 남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평도가 밀리면
대한민국 전체가 위험해지는 만큼 이 지역에 남는 것이 내 자녀를 지키고 이 나라를 지키는 길입니다."
이날까지 연평도 주민 1400여명 중 섬에 남은 사람은 30여명이다. 남은 주민들은 한 번도 육지로 대피하지 않았거나, 인천에 갔다가 돌아와 살고 있다.
어민 김정희(45)씨도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못 나간다"고 했다. 김씨의 냉동창고는 꽃게 3t으로 가득찼다. 그는 "(폭격으로) 방전되면 냉동창고를 위해 발전기라도 돌려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육지로 대피한 가족들이 울면서 '지금이라도 나오라'고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연평도를 지켜야 2남매 학비도 대고 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선착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송영옥(49)씨는 25일 인천에서 돌아왔다. 그의 집은 북한 포격으로 폭삭 무너졌다. 23년 전 연평도로 시집오면서 2남매를 키운 곳이다. 그는 "동고동락한 이웃들이 대피했지만 '나마저 나갈 수 없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구호단체에서 나눠준 먹을거리에 의존해 살고 있다.
일부 주민은 집을 잃어 대피소에 둥지를 틀었다. 25일 오후 인천에서 연평도로 돌아온 어민 한용석(42)씨는 포격 전까지 선사(船社)가 운영하는 숙소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숙소 문이 잠겨 지낼 곳이 없어졌다. 그가 인천에서 사온 빵 10개와 음료수 한 박스가 냉랭한 대피소 한구석을 차지했다. 한씨는 "먹을 게 없으면 풀을 뽑아 먹어도 되니 섬이 안정될 때까지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