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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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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1-24 07:13 조회2,06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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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멍드는 동심

내가 다니던 학교의 전신은 서울에서 피난을 왔다가 수복 후 귀경한 무학여고였다. 보수공원 중턱을 넘어 보수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곳에 있었다. 그 뒷자리에 들어선 문교부에서 인가도 나지 않은 사립중학교가 내가 다니는 학교였다. 1954년 가을 제일 송도 쪽에 있는 함남 중․고등학교에서 학급을 재편성할 규모의 엄청난 학생들이 한꺼번에 전학을 왔다.

1학년 때 생긴 일이다. 두 학교가 갑자기 합쳐지니 학생들 간에 세력다툼이 생겨났다. 우리 학교에 이승욱 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반이지만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와는 거제도에서부터 한 학급에서 공부했는데 피난을 왔는데도 그의 아버지가 광복동에서 명시당이란 시계 보석상 가게를 운영하여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운데 학교엘 다녔다. 그는 그 당시부터 학업에는 힘쓰지 않고 권투도장에 다녀서 다른 학생들이 그의 위세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다. 그의 주먹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함남중학교에서 온 학생 중에는 박태구라는 아이가 있었다. 역시 그도 나이가 많은 아이였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목이 긴 새까만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약칠을 하여 신고 재면서 다녔는데 몸이 날렵하고 우리 학교에 전학 오는 학생 중 주먹이 세기로 벌써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이 두 거물이 미리 한판 붙자고 약속을 하고 방과 후 꼭대기 운동장에서 맞붙게 되었다. 우리가 양쪽 학교 출신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둘이서 이승욱이가 갑자기 손에 들고 온 운동 가방을 천천히 땅에 내려놓더니만 아주 느긋한 동작으로 가방에서 권투선수가 시합 전 입에 끼우는 마우스피스를 보란 듯이 천천히 꺼내어 자기 입술 안에 끼워 넣으며 오물거렸다. 갑자기 입술이 평상시보다 두툼하게 튀어나왔는데 거기에 삼각형 눈매에 거무튀튀한 얼굴의 승욱이가 입술을 씰룩대며 세모눈까지 날카롭게 쏘아보는 듯 상대를 쳐다보니 고약한 인상이 더 고약하고 험하게 보였다.

긴장한 가운데 승욱이가 취하는 여유만만한 행동과 날렵한 권투선수 동작과 거기에 무서운 얼굴을 하여 씰룩대며 싸울 태세를 취하니 멀거니 건네다 보던 태구가 싸움 동작을 맥없게 슬그머니 허물었다. 그러더니 싸우려던 기세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기가 폭삭 죽어 눈물까지 글썽거리더니 갑자기 “누가 싸운댔어! 누가 싸운댔어!” 하며 죽어 들어가는 자세로 소리지르며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전학 온 함남 중 패거리들이 판정패로 끝났다. 세력의 기 싸움은 우습고 싱겁게 끝났으나 큰 싸움이 되지 않아 서로가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싸움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는데 다행히 승욱이가 싸움도 없이 이기는 바람에 얌전한 우리학교 학생들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이후 집단으로 전학 온 함남중학교 출신 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이 사건 바람에 승욱이의 위세와 무용담은 촐싹거리고 부풀리기를 잘하는 대포가 센 친구들 입을 통하여 더욱 부풀려 퍼져 나갔다. 실상 그들은 싸우지도 않았는데도 “권투선수 승욱이가 번개같이 태구에게 한방 놓으니 태구가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이런 식이었다. 승욱이는 권투도장에만 다녔지 권투선수로 한번도 출전한 적이 없었는데도 그러했다.

그 이후 세월이 조금 지나 친구 승욱이는 유명한 부산의 칠성 깡패단 창설 초기 두목이 되었고 태구는 칠성파보다 약한 영도섬 제2송도 지역의 백조 깡패단 두목이 되었다. 당시 부산은 깡패 그리고 온갖 범죄행위의 박람회장 정도의 도시였다. 서대신동의 20세기, 초량 수정동의 라이온스, 마라푼다, 교통부의 자이안트, 영도의 백조파…… 등등. 그리고 그 당시는 지금의 고아원(보육원)에 해당되는 아이들이 한떼로 몰려다니면서 아주 사납게 설쳐대어 여기저기서 나쁜 소문이 나 있었다.

학생들의 제일 큰 고민은 깡패 등살이었는데 그 공포감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웬만한 골목마다 지켜서서 지나가는 착한 아이들을 불러 돈을 빼앗는다든지 수틀리면 주먹질하며 상해를 입히는 깡패들 등살에 밥맛을 잃을 정도였다. 전쟁 후 피난시절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 중 가장 커다란 고민 덩어리였다.

부산의 중심가에 있는 국제시장, 보수동 헌책방 골목, 부산극장, 동아극장, 남포극장, 보림극장, 미화당 백화점, 광복동 거리, 동광동 거리, 우남공원(용두산 공원), 부산 본역앞, 부산진역앞, 서면극장앞, 국제극장앞, 초량극장앞, 제1송도, 자갈치 등등 그 일대 중심 거리는 구경할 만한 곳도 되지만 동시에 아주 무시무시한 공포의 거리이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수틀리게 잘못 걸려들기만 하면 얻어맞거나 돈을 빼앗기기가 일쑤이고 이렇게 매일 여러 장소에 지켜 서서 위협하는 바람에 청소년들은 심지어 시내를 거쳐 학교 가기를 꺼려 할 정도였다. 부산일보, 국제신문, 민주일보 등 일간지 사회면 신문지상엔 6ㆍ25 전쟁의 상처 아픔에 대한 기사만큼이나 깡패들의 패거리 싸움과 그 피해상황이 뻔질나게 기사화되어 실려 있을 정도였다. 6ㆍ25 동란 직후의 험난한 또 다른 사회상이었다.

당시에 부산에는 ‘뽕끼’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적 깡패대장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이 든 그런 어른 같은 학생이었다. 피난민학교 함남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아주 점잖고 그들끼리의 의리를 다지는 데 수완이 놀라웠다. 그의 부하들은 함경도 난다리(또는 기계다리), 원산돼지, 평안도 박치기, 북청 물장수(내가 그때 보기엔 성격이 아주 순하고 성실해 보였음) 오산 돼지 등 우리 청소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무용담(?) 속의 주요 등장인물들이었다. 모두 ‘뽕끼’라는 거물을 두목으로 하여 뒤따르며 충성을 다하는 무서운 무리들이었다. 주로 제1송도와 자갈치 시장 남포동 광복동 남항동 남부민동이 그들의 설치는 무대였다. 그러나 그 용맹(?)은 부산 전역을 휩쓸었다.

이들의 일화는 너무 터무니없이 부풀려져서 마치《수호지》나 여러 가지 무협지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함남고등학교 모자엔 하얀 줄이 두 줄 둘러져 있고 앞에 교표로 고(高) 자가 해서(楷書)체로 씌어져 있었는데 이 모자만 쓰고 다니면 부산에서는 집적거리거나 건드리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깡패가 많은 학교였다. 경찰들은 그들을 잘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전시 피난시절에 부산에서는 함남고등학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나 있었다.(계속)

 

댓글목록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저도 깡패들이 많이 산다는 곳마다 살았더랬습니다
물론 전라도 쪽만은 빼놓고.....
삼척, 추풍령, 영주도 꽤나 드셌었구요
영주강패들은 신사답더군요
일반인들은 아예 건드리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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