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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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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1-12 06:16 조회1,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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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할머니의 발병과 동생 선심이의 사망

 아버지를 따라 본토박이들의 집에 자주 가 보았는데 대부분 아래 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우연히 부엌을 지나쳤는데 부엌의 천정에 시커먼 그을음이 붙어 기다랗게 거미줄 늘어지듯이 늘어져 있었다. 불을 때면 아궁이의 연기가 장독대 뒤뜰로 나가는데 문 바로 옆에 굴뚝이 만들어져 있어서 연기가 부엌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집 구조가 이상해 보였다.

내 고향집의 구조는 부엌에서 불을 때면 그 화기가 안방 윗방 등의 구들장을 모두 통과하고 집 뒤쪽 끝에 있는 높다란 굴뚝으로 연기가 나가게 되어 있는데 내가 본 몇몇 본토박이 집은 고향 집들과 달랐다. 그러니 흰옷이 금방 검게 되기 마련이다.

손님이 왔다고 사발에 누르스름한 쌀을 가득 담아 내놓고 먹으라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 쌀을 손으로 한 움큼 집어 먹는데 나는 좀 이상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어서 맛보라고 해서 입에 넣고 씹어 보니 쌀이 구수한 것이 맛이 괜찮았다. 그 쌀을 ‘찐쌀’이라 불렀는데 가을에 햅쌀을 특별히 쪄서 저장해 두고 육지 사람들이 손님에게 과일이나 다과를 대접하듯이 찐쌀로 대접한다고 했다.

한번은 죽토리 다리께에서 본토박이와 피난 내려온 어른 두 사람이 싸움을 했는데, 그 옆에 있던 본토박이들이 고함을 지르며 야단이 났다고 하면서 동네방네 떠들며 외쳐대기를,

“야! 저기 사람과 피난민이 싸우고 있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이 삽시간에 연초 면에 퍼져 피난민들이 모두 분개했었다. 우리 학교에도 이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어려운 풍상을 겪어 사나워진 피난민 아이들이 그 말에 격분하여 얌전한 본토박이 아이들을 여기저기에서 이유 없이 패주는 바람에 학교 선생들은 비상이 걸렸고 한동안 연초 면 어른들이 긴장했던 적도 있었다. 이 소문이 거제도 전체에 퍼지고 육지까지 알려져서 ‘사람과 피난민이 싸우고 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은 한동안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다.

1953년 5월 25일 우리 집에는 너무도 큰 일이 벌어졌다. 앞에서 아버님의 일기에 잠깐 나왔지만, 할머니가 정신을 놓은 것이다. 가족 상봉의 기쁨은 잠시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형상이었다. 할머니는 순간 기절한 것이 아니고 혼이 빠진 것이었다. 전쟁 와중에 할머니는 가는 데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면서.

“얘를 제 부모의 손에 쥐어 놓으면 누가 당장 그 자리에서 죽으라면 당장 꼬꾸라져 기꺼이 죽겠다”

하면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내내 애절하게 말해 왔었다.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니까 모든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이리라! 온 가족의 놀람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애통함은 너무나 애절해서 매일 눈물로 지냈다. 학교에서 틈만 나면 집으로 달려와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간호하다가 수업종이 울리면 교실로 분주히 달려갔다.

할머니는 그간 온 가족을 만나 기쁨에 넘쳤으나 차차 말이 줄어들더니 갑자기 식기를 집어 내던지며 고함을 지르고, 걷잡을 수도 제지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머니는 그동안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을 다 털어놓지 못하고 한 많은 난리 통의 답답한 원한들이 가슴에 꽉 차서 풀어져 밖으로 쏟아내지 못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학교도 가기 싫고 할머니 옆에서 울기만 했다. 우리 가족은 너무 놀라고 슬퍼서 울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의 아버지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5월 25일 오호! 저주로운 오늘이여, 태산같이 믿어온 어머님 병이 발생.

일주간 천막교회 부흥회 철야기도에 다니시더니 오늘 뜻 아닌 발병.

오후 5시 내내 소란.

의사를 불러 진단결과 광증(狂症)이라 하였다.

철야 간호하다. 점점 더하다.

오후 4시 목사 집사들 4명 내가(來家). 맥박은 정상. 체온은 36.7도, 기도로써 안정되지 않음.

조금도 차도 없으매 자식들 속 애달파라.

5월 31일, 병세 여전. 의사와 상의하고, 교회 만류도 무릅쓰고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 옴.

6월 1일, 덕도리 한의사 김성헌씨를 모셔와 치료.

6월 14일, 저녁부터 차도가 있는 듯하였으나 새로운 징후가 나타남.

6월 15일, 휴전 반대 면민 궐기대회 개최. 어머님의 소란으로 의사치료를 일시 중지.

6월 16일, 1학기 중간고사 시작 각 학급을 통하여 엄격히 감독키로 함. 금일부터 농구대 제작착수. 모친 병은 여전.

6월 18일, 중간고사 완료 채점시작. 오늘 오후 6시부터 어머님 병이 돌아섰다(2시간 동안). 반공포로 석방.

6월 25일, 6ㆍ25 3주년을 북진통일 대회로 체육대회 출전. 선수단 훈련.

오늘부터 어머님 병환이 덜하는 것 같다. 기쁜 일이다.

7월 3일, 어머님 병이 쾌차 일로, 희열.

7월 10일, 어머님의 병은 완쾌하시다. 아! 기막힌 1개월의 가환(家患)이여.

7월 26일, 덕도리 김성헌 한의를 찾아 모친 병 치료에 사례. 병 치료 완료.

선화 발열. 찬수와 함께 고기 잡으러 가는 것을 중지시켰으나 몰래 갔구나.

7월 27일, 휴전 조인 성립. 한국 남북통일 없는 휴전을 나는 반대한다. 국가 민족을 위하여 슬픈 일이다.

 

8월 12일, 가아(家兒) 선심이가 치명적 부상. 인근가의 이씨 댁 여자아이가 몰래 업고 돌아다니다가 넘어져 두부(頭部)를 크게 상함. 뇌가 상하고…… 오호 기막힌 노릇이다. 조모와 어미가 타아(다른 집 아이)에게는 잠시간 손 못 대게 하던 선심이를 자는 사이 몰래 훔쳐 업고 다니다가 치명상을 당하다니 제 딴엔 귀여워한 일이지만…….

9월 15일, 선심 병 악화.

9월 19일, 찬수 부상(얼굴).

9월 20일, 선희 부상(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어깨, 가슴).

오호! 금년은 왜 이다지도 가환(家患)으로 연속 불상사인고. 불행한 해여.

9월 28일, 흉통으로 쓰러짐.

9월 29일, 병세 여전, 사지(死地)로 갈 것만 같구나.

9월 30일, 선심 사망.

불행한 선심이는 기어이 가는구나!

너무도 기막힌 주검. 병으로 죽어도 한이 되는데 타인에 의한 부상으로 최후의 숨을 거두다니! 가상(加傷)한 아이나 그 가족에는 일체 불쾌한 말 아니했으나 천추의 한이 될 일임은 사실. 인생인 고로 병후 어머니의 비통해 하시는 것 자식으로 차마 못 볼 일 위로해 드리다.

오호 통재라 선심이의 죽음.

10월 1일, 시무식 거행 가을바람과 함께 심사 종일 쓸쓸.

중략.

1954년 1월 25일, 개학식 거행.

 

할머니의 발병과 쾌유 그리고 거제도 연초 면에서 태어난 내 귀여운 동생 선심이의 갑작스런 부상과 사망으로 6․25 동란 전화와 더불어 이후 엄청난 가족의 액운은 내 부모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6․25 동란 후 거제도에서 사랑하는 나의 두 여동생 선영이는 태어난 지 3주만에, 선심이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다쳐 한 달 넘게 앓다가 6개월 남짓 살다가 하느님 나라로 가고 말았다.

선심이가 나를 보고 평화롭게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온 가족의 상심과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상심은 너무 심했다. 그러나 내 아버지의 의지는 남달랐다. 피난민 중학교 학생 교육에 온 몸을 투신하여 전란 중 고통 받는 2세 교육에 쏟아 붓는 열정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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