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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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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1-10 06:48 조회1,85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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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할머니 거제도 도착, 이산가족 상봉

당시 아버지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던 일기장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12월 24일(음 11월 8일) 부친 제사

12월 25일 어머님이 오셨다(오전 11시)

오랜 세월(4년)을 두고

가슴 웅크려 쥐고 그리워하던

어머님 오시었네

검은 머리에 흰 가락 섞이어도

옥체 건강하심에 더욱 기뻐라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어도

머리 쓰다듬어 주시며

아무 말 없는 그 모습 장엄하여라

울지도 말하지도 않는 어머님

아마도 그 마음속엔

혈관이 부서져 피눈물 머금었으리

오직 자손들 보시려는 일념으로

62세의 노령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다만 홀로 천리 먼 길 오셨나니

오! 거룩한 나의 어머니여

기쁨 없는 평생 고애 속에

만고풍상을 낱낱 겪으시어

더욱 그 몸 괴로우시련만

도리어 자손들 위로하시는

그 마음 믿음직하여라

진정으로 희열에 찬 반생의 오늘이여

 

1953년 1월 6일 선화모가 부산을 다녀옴{모친이 가져온 돈으로 재봉틀 한 대 구입 110만원(화폐개혁 이전의 화폐단위)}

2월 7일 권상사(오홍) 내방. 어머님과 오래간만에 상봉함을 기뻐하면서 저녁을 즐기다. 고향 박소령에게 소식을 전하다.

2월 14일 우리의 명절 ‘설날’ 오전 8시~10시간 일식(日蝕)을 하다. 수년 만에 모친을 모시고 온 가족이 기쁘게 새해 계해년을 맞다.

풍진 속이나 나는 행복하다.

3월 6일(음 1월 21일) 오전 4시 18분 선심 출생 산모와 함께 건강. 어머님이 오셨으므로 모든 것이 안심.

5월 14일 고향에서 서종원 중사 옴. 내가 오래간만에 그리운 고향 사람들의 소식을 듣다.

어머님의 희열에 넘치는 얼굴을 보다.

5월 17일 서종원 중사 편에 고향에 소식을 전하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고향에서 농사지어 장만한 돈이 금방 없어질 것을 염려해 그 돈 모두를 가지고 부산으로 나갔다. 재봉틀을 사서 삯바느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배를 타고 부산으로 나갈 때는 날씨가 괜찮았는데, 부산 국제시장에서 재봉틀을 사는 과정에서 차질이 있어 같이 간 두 분(아버지와 같은 학교에 재직하였던 박선생의 어머님과 젊은 부인)과 헤어져 시장을 본 뒤에 늦게야 만나자고 한 부두엘 갔다. 그런데 파도가 일면서 바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고, 같이 온 두 분은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한 시간쯤 전에 창경호(?)라는 큰 여객선으로 먼저 떠났다.

어머니는 다른 배를 기다리면서 자갈치 시장에 머물러 있었는데, 뒤늦게 창운호라는 70톤급(?) 목선에 올라 재봉틀을 싣고 장승포 항을 향해 출발했다. 태풍이 몰려와 파도가 산같이 일어나는 가운데 창운호는 낙동강 하구로부터 바다로 흘러 내려오는 거대한 강물결에 크게 흔들리고, 태풍까지 겹치니 한 조각 나뭇잎처럼 금방 침몰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파도가 폭포수같이 몇 차례씩이나 배 안으로 덮쳐 들어와 배 밑바닥에 있던 승객들이 모두 일어나 난간과 계단을 붙들고 바닷물에 빠진 생쥐처럼 쫄딱 젖어 무서운 추위와 싸우면서 버티는데 그 와중에서 어머니는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장만한 재봉틀이 파도에 휩쓸려 갈까봐 계단에 무명 띠로 붙들어 매고, 어머니도 그 옆에 매달려 사투를 벌여 평소에는 4시간 정도면 갈 뱃길을 8시간이 넘게 표류하면서 버티다가 가까스로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운데 모두 울고불고 아우성인 사람 속을 어머니는 무사히 재봉틀을 지고 나와 아버지와 만났다. 안타깝게도 앞서 떠난 창경호는 수백 명이 넘는 승객과 바다 속으로 침몰하여 아직까지 연락이 두절이고 남은 식구들이 부두에 나와 저렇게 아우성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도 그 속에서 절망의 눈물을 흘리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재봉틀을 지고 나오는 어머니를 만났다.

낙동강 하구는 지금도 큰 장마가 지면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하여 배가 이곳을 항해할 때는 항상 조심한다고 한다. 창경호 사건으로 살아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몇 대 독자라고 했다. 어머니와 부산에 같이 나갔던 두 분은 시체도 찾지 못했는데 박선생 어머니는 영영 시체를 찾지 못하였고 부인의 시체만은 멀리도 떨어진 부산 해운대 앞 바다에서 연락이 와서 찾았다.

배 안에서 난간을 붙들고 어찌나 애를 썼는지 고기들이 살을 뜯어 먹어서 그런지 양 팔목에 살은 없고 뼈만 앙상하였다고 하면서 박선생이 우리 집에 와서 방바닥을 치면서 통곡을 하던 생각이 난다. 이 창경호 사건도 피난민들의 애환으로 기록된 일이다. 거제도 연초면은 이 사건으로 또 한번 슬픔에 싸였다. 바느질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는 그 재봉틀로 우리 집 생계를 위해 삯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

 

댓글목록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저희 집에도 예전에 singa(싱가????) 라는 재봉틀이 있었지요
저희 어머니께서 쓰시던 재봉틀인데.....
묘하게도 말대가리 처럼 생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

심심도사님 그렇습니다. 님께서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땐 유명한 재봉틀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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