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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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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30 06:37 조회2,09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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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쌍천(雙川)

(1). 처음 본 미국 군인.

 그 이튿날부터 나는 학교엘 갈 수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약도 눈에 넣지 않은 상태에서 생짜로 앓았다. 보름 정도 집안에서 앓았는데 어느 날 햇빛이 들어오지 않을 때 나는 오른쪽 눈을 실눈같이 뜨고 오른쪽 귀 있는 쪽으로 옆으로 보니 옆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에게 오른쪽 눈 옆으로 조금 보인다고 말했더니 이제 낫는구나 하면서 좋아하였다. 하루 다르고 이틀 다르고 한 달쯤 지나니까 드디어 양쪽 눈을 뜰 수가 있었고 환한 곳은 눈이 시려 볼 수가 없고 빛이 흐린 쪽으로 시선을 돌려 물체를 볼 수가 있었다. 왼쪽 눈은 손으로 약간 가린 채로 오른쪽 눈은 반쯤 뜬 채로 나는 바깥출입을

쌍천

할 수가 있었고 한 달 반 뒤에는 하늘을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학교를 오갈 수가 있었다.

다른 애들은 내 얼굴만 보면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우르르 몰려와서 구경하였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전체는 그때 화약 하나 하나가 불덩이가 되어 얼굴에 박힌 것이 까맣게 되어 얼굴 전체가 내 얼굴이 아니었다. 매일 얼굴을 가리고 학교에 다녔는데 두 달 뒤엔 얼굴 전체가 제대로 되었고 신기하게도 약 하나 바르지 않고 내 눈은 원상대로 회복되었다. 참으로 전쟁 통에 총알 가지고 장난하다가 죽거나 크게 장애를 가질 뻔했던 것이다.

그 해 할머니는 소금재 고개 너머 넘은들에 문중 논까지 얻어 부쳤는데 날이 가물어 나도 논둑에서 할머니와 함께 자면서 차례 물을 대어 가면서 벼와 찰벼 농사를 지었다. 넘은들 한복판에 서쪽 설악산께로부터 쌍천 하류 바닷가까지

쌍천

쳐 있었던 철조망들이 모두 다 걷히고 벌판은 농사짓기에 장애물이 없었다. 그 해 초여름으로 치달을 때 몹시 가물어 논에 차례 물대기를 하느라고 온 벌판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차례 물 대느라고 나는 할머니와 여러 번 벌판 논둑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에 우리 차례가 되어 논에 물을 댄 적도 있었다.

장잿터(장자터) 마을 위쪽으로는 농사를 짓다가 미처 제거치 못한 지뢰를 윗동네 아저씨가 밟아 크게 다치고 다행히도 목숨은 건진 일도 있었다. 차례 물을 대고 난 뒤에는 도랑 웅덩이에 옹고지(미꾸라지 종류)가 하도 많아 삼태기로 퍼 올리던 생각도 나고, 특히 벼메뚜기를 많이 잡아 구워먹던 생각이 난다.

벼논에 많이 나서 핀 피를 뽑아다가 핀 피의 끝만 남겨 놓고 모두 훑어낸 다음 그 남겨 놓은 피 끝에 침을 가득 뱉어 벼 고랑에 드리우면 개구리가 피 낚시질에 걸려 피를 물다가 피대궁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면 그 개구리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땅에 떨어지는걸 보고 재미있어 했다. 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넓디넓은 벼논 벌판에서 내가 혼자서 놀았던 그때의 추억이다.

1952년 여름은 비가 오지 않아 아주 가물었다. 중복인가 해서 복숭아가 잘 익을 계절이었는데 우리 동네 농사짓는 어른들이 모두 다 소금재 고개 너머 넘은들 벼락바위 옆으로 흐르는 쌍천 아래께로 가서 천렵을 하였다. 쌍천은 설악산에서 흐르는 아주 맑고 시원한 큰 개울이다. 벼락바위 먼 발치서부터는 설악동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흘렀다. 그래서 쌍천이라 부른다.

설악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라 맑기도 하려니와 한여름인데도 아주 시원했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예전 병자년 포락(홍수)때까지는 바다에서 연어가 많이도 올라오는 곳이라 하였다. 이런 쌍천에서 한여름 물줄기가 가늘어질 때를 놓치지 않고 아저씨들은 쌍천 한 갈래 저 아래에다가 그물을 기다랗게 건너 쳐 놓고는 그 위에서부터 내려가는 물을 가로질러 막기 시작하였다.

여럿이 지게에 흙을 져다가 연이어서 퍼다 부으니 한나절도 못되어 쌍천 지류 하나는 물이 내려가지를 않고 다른 한쪽으로만 내리 흘렀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물이 다 빠진 뒤에 고인 웅덩이와 굵은 돌을 들추고는 여러 가지 민물고기 뚝저구, 기름종갱이, 빼둘가지, 옹고지 심지어 뱀장어까지 잡았다. 나는 그때 천렵 가서 고기 잡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지금도 설악산 신흥사 쪽으로 올라갈 때면 잠시 멈추어 길 왼쪽 아래로 힘차게 흐르는 전쟁 통에 천렵하던 맑은 쌍천을 내려다보곤 한다. 그때 쌍천 바로 옆은 싸움이 치열한 뒤 양쪽 군대가 대치할 때 쳐놓은 철조망도 미처 다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른들은 지고 온 커다란 검은 솥을 걸어 놓고 잡은 고기들을 거기에 솥에 쏟아 부어 설설 끓이기 시작하였다. 그러고는 막걸리를 마시고 민물고기 탕국을 즐겁게 들면서 놀았다. 우리들은 복숭아 한 덩어리씩을 손에 들고 고기가 갇혀 있는 여기저기 물웅덩이만 찾아 다녔다. 가재 같은 것은 돌만 들추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뱀장어를 잡을 때는 여러 친구들과 손에 모래를 한 움큼씩 움켜쥐고 미끄러운 뱀장어를 잡느라고 법석을 떨었다.

6․25 당시 미군 지프차

전쟁과 평화! 무엇이 전쟁이고 무엇이 평화란 말인가? 나의 슬픈 가슴 안고 이웃과 친척들의 한을 잠시 잊고 지나간 사람들을 잠시 동안 염두에 두지 않으며, 우리 동네 어른들과 아주머니 그리고 어린 우리들은 그렇게 한여름 복날을 해가 설악산 대청봉으로 넘을 때까지 늦도록 즐겼다.

1952년 여름이 지날 때 나는 UN군으로 참전한 미국사람들을 처음 보았다. 관덕정 군부대에서 지프차를 몰고 우리 집 앞 양지마을 도로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나 기억이 없는(사실은 해방될 때 소련의 로스께들을 많이도 보았다 하였으나 그때는 너무 어려 기억이 나질 않는다) 괴상하게 생긴 외모의 사람이었다. 코가 우뚝하고 뭐라고 쏼라대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지나가고 조금 있으니 같은 쪽 저 아래쪽에서 또 지프차가 올라오는데 역시 앞서 지나간 사람들과 외모가 똑같았다.

마을 보호수 오래된 굴참나무. 이 옆에 6․25때 임시 로 지은 우리 집 집터가 있다

이상한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쌍둥이 군인들인가 하고 갑자기 나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들도 쏼라대는데 역시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뒷좌석에 얼굴이 새카만 군인이 탔는데 나는 그 검은 사람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미국에서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었음을 나중에서 알게 되었고 우리 마을에서 물치 내려가는 강선리 강현천 건너께 짐미(장산리) 비행장에 그들이 주둔하는 군부대 막사가 있었다.

한번은 친구들과 물치 장거리에 갔다 오는데 물이 많이 고인 강현천 하류에서 체격이 어마어마하게 큰 미군들 20여 명이 옷을 홀딱 벗고 깊은 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노는 것을 보았다. 서로 편을 갈라 하얀 비누를 서로 던지고 받으면서 놀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수구 같은 게임을 편 갈라 하였던 것 같다.

우리들은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천변 강둑에 줄줄이 늘어앉아 미군들이 수영하면서 노는 것을 구경했다. 군인들도 우리들이 보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뭐라고 저들끼리 떠들면서 재미있다고 웃어가면서 노는데 전쟁 통에도 저런 한가함이 있었구나 하고 지나간 날의 그 장면을 회상해 본다.

여름이 다 지나갈 때 나는 혼자서 집 앞 보호수 굴암나무(굴참나무) 아래에 앉아 수수대궁을 가지고 장난감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 경적 울리는 소리가 내 앞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수수대궁을 가지고 노는 나를 지프차 타고 지나가던 미군이 본 것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세우고는 나를 보고 차 앞으로 오라고 하였다. 갑작스런 일이라 주춤하고 망설이는 나에게 그들은 또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나는 수수대궁 껍질에 손가락을 베어 피가 나는 곳을 다른 손으로 꼭 잡고 있었을 때였다. 그렇지만 자꾸 오라는 외국 군인 아저씨들 앞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을 맞잡고 지프차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긴 미군 아저씨는 커다란 손으로 사탕을 한줌 쥐어 나의 작은 손에 얹어 주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나에게 어께를 토닥여 주면서 여러 색깔이 든 사탕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손을 베어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내가 문제였다. 어색하게 사탕을 받았는데 어른 손으로 한줌 집어주는 사탕을 땅에 흘리지 않고 다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꾸벅 절을 하였고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붕―.” 하고 떠났다. 그 이후 지금까지 손가락 베지 않았으면 두 손으로 더 많이 받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운 감정이 남아 있다. 저녁때 할머니 앞에 사탕을 내놓았다. 그 사탕은 참 맛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맛있는 사탕은 두 번 다시 맛보지를 못하였다.(계속)

댓글목록

피안님의 댓글

피안 작성일

오늘도 아름답고 감동적인글 잘 읽었습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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