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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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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28 04:24 조회2,0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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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내 고향 진달래 피는 마을

 나의 할머니는 담배를 피웠다. 젊을 적에 많은 자식들을 홍역 등으로 잃고 속을 달래느라고 담배를 입에 대었다고 한다. 긴 대나무 대롱으로 만든 담뱃대의 끝에는 놋쇠로 된 담배 꼭지가 있어서 거기에 담배 잎을 꼭꼭 담아 피웠다. 1950년 6ㆍ25 전 한번은 나의 바로 아래인 해방둥이 어린 여동생을 안고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꼭지가 여동생 목덜미 조금 아래 한가운데에 닿아서 데인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 흉터가 5백 원짜리 백동전만큼 크게 나 있었다.

담배 이야기가 나오니 또 빼 놓을 수 없는 기억 하나가 있다. 내가 장티푸스로 숨어 있던 큰 쉴집 아저씨가 큰아들 민태형 내외와 같이 빨갱이 물이 심하게 들어 이북으로 모두 다 도망을 갔는데 그때 그 집은 동네에서 비교적 큰 기와집이었다. 그 댁 아저씨가 6ㆍ25 나고도 1ㆍ4 후퇴 시 온 가족이 이북으로 없어질 때까지 거의 매일같이 한 차례 우리 집에 들러 담배 말아 피우는 손바닥보다 작은 빈 종이를 들고 문간 앞에서 창호지를 흔들면서 할머니를 멀거니 들여다보곤 했다.

나는 처음엔 매우 의아해하였는데 할머니 말이 밭에서 기른 담배를 말려 엽초를 썰어 만든 담배를 좀 얻어가 피우기 위해서 저러고 처량하게 서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6․25 나기 전 우리 집에 담배를 얻어 피우러 오는 또 하나의 목적은 행방이 묘연한 나의 아버지가 혹시나 우리 집에 왔는지 어떤지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고들 하였다. 지금도 90이 가까운 어머니가 당시를 회상 할 때 그 집 새로 장가간 민태도 그 아버지처럼 얄미울 정도로 우리 집을 감시하였다고 하며 마음속으로 미워서 죽을 뻔했다고 하였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군인들이 훈련받으면서 행군 시 잠시 휴식하던 곳이나 지나다닌 길에서 피우다 버린 무수히 많은 화랑담배 꽁초를 주우러 다녔다. 나도 자주 주우러 다녔는데 할머니는 그 주워온 꽁초를 전부 까서 펴 말린 다음 두고두고 담뱃대에 담아서 맛있게도 피웠다.

어느덧 우리 동네 형들과 우리들은 모여서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어 뻐끔 담배를 몰래 피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연기만 풀썩 내며 “캑캑.” 거리며 피웠으나 나중에는 목구멍 숨통으로 한참 들이마신 뒤에 두 콧구멍으로 재주를 피우면서 자랑삼아 허연 연기를 능숙하게 내뿜어 댔는데 어떤 아이들은 아예 인이 박혀 주머니에 담배꽁초들을 넣고 다니면서 피워댔다.

인지와 중지 사이에 종이로 만 담배를 어른처럼 흉내 내며 멋을 부리며 담배를 피워 양손가락에 담배 연기가 노랗게 쐬어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7~8세부터 16세 정도의 사내아이와 청소년들의 담배질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가관인 것이다. 훈련장이나 부대 앞길에만 가면 화랑담배 꽁초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도 아이들의 흡연에 한 가지 원인이었다. 나도 두어 번 호기심으로 피워 보았는데 콧구멍이 맵고 목이 콱 막히고 기침이 터지는 바람에 피우지를 못하였고 할머니가 그러지 말라고 하여서 친구들과 어울려도 피우지를 않았다.

봄이 되기 전이다. 할머니가 짠 삼베가 아주 큰 두루마리가 되었다. 할머니 말씀이 이만하면 앞으로 우리 식구의 옷은 문제없이 해결된다 하며 아주 좋아하였다.

어느 날 사단 사령부 소속의 군인 한 사람이 우리 집에 하룻밤을 묵고 가겠다고 하였다. 그는 후방으로 출장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밤늦도록 할머니와 내가 있는 데서 전쟁 이야기를 재미있게 다정스럽게 하였다. 그리고는 신세 한탄도 하면서 가지고 온 철모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빨리 전쟁이 끝나야 된다고 얘기하다가 나와 같이 윗방 베틀 있는 데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되었을까 갑자기 할머니가 나를 급하게 부르면서 윗방으로 건너왔다. 예감이 이상하고 갑자기 섬뜩하여 윗방 고리를 열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등잔불을 켰는데 내 옆에 자던 그 군인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베틀을 보고 크게 놀라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놀랠 일은 베틀에 초가을부터 겨우 내내 할머니가 짜 놓은 삼베가 장도칼로 날카롭게 끊듯이 흉측스럽게 몽땅 끊어져 텅 빈 모습으로 있었다. 바디집 위의 실만 너덜거렸다. 베틀 밑이 아주 흉하게 보였다.

군인은 할머니가 작년 피난 갔다 온 뒤에 겨우 내내 짜놓은 삼베를 우리가 잠들기를 기다려 무참하게도 몽땅 도둑질해 간 것이다. 할머니는 힘없이 나를 끌어안으면서

“그 망할 놈의 군인이 날카로운 칼로 삼베를 끊을 때 네가 일어났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났을 터인데 하늘이 도왔다.”

하면서

“나는 네가 다친 줄 알고 놀랬는데 삼베만 없어져 다행이다.”

하고 맥없이 말했다. 그 전쟁 통에도 도둑놈이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할머니는 허탈해 하였고 나도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1950년 6ㆍ25가 나던 그해 봄, 야산마다 큰 산까지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볼 만하였었는데 1952년 봄에도 진달래꽃이 온 산비탈에 붉게 물들었다. 6ㆍ25가 나던 해는 김일성 간부 앞잡이들이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진달래가 저렇게 많이 핀 것을 보니 통일이 될 징조라고 하였다.

그렇게들 떠들면서 6월 25일에 남쪽에 쳐내려갔다가 여름이 지나 반격하는 국군에게 혼쭐이 빠져 통일은커녕 큰코다친 모습을 우리는 날마다 보았다. 볼 때마다 당시의 이북의 나라꽃이라고 내세우던 진달래가 아름답게 피면 필수록 이북은 빨리 망한다는 말이 마을 여기저기서 퍼졌었다.

1952년, 국군의 최전방 신병 훈련장인 우리 마을 앞산에는 진달래꽃이 참으로 아름답게 피었다. 산야가 모두 붉게 물들었다. 우리가 나무하러 갔던 마을 뒷산에도 진달래꽃이 너무 아름답게 피었다. 깨끗한 진분홍빛 진달래꽃을 한 움큼씩 따서 수시로 먹기도 하였고 많이 먹으면 얼굴색이 빨갛게 된다고들 하였는데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새큼한 맛에 많이도 따 먹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우리들은, 진달래꽃이 저렇게 아름답게 피었으니 김일성의 인민군대는 모두 다 국방군에게 패해서 도망가고 김일성도 곧 죽을 것이다, 라고 모두들 한 마디씩 하였다. 그때부터 진달래꽃은 이북 김일성 신봉자들에게는 별 볼일 없는 꽃으로 여겨졌다는 국방군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면 필수록 흥망이 뒤바뀌는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는 기쁜 이야기보다 매일 슬픈 이야기만 돌아다녔다. 군인 아저씨들에게서 들었다면서 동네 할아버지들이 슬픈 말을 하였다. 관덕정에서 훈련을 받던 신병 두 사람이 훈련 중 약속을 하고 어느 으슥한 골짜기에 숨어서 서로 상대방의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총으로 쏘아 자르는 사고를 내었다 한다. 그 손가락이 잘리면 총을 쏘지 못해 후방 병원으로 이송된다 하여 그렇게 사고를 당한 것처럼 했는데 이 사실이 발각이 되어 그 신병 두 사람은 모두 군법에 의하여 즉시 총살형을 당했다는 것이다.

적군과 싸우다가 죽은 것도 아니었다. 불명예스럽지만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난겨울 전투에서 동상이 심하게 걸린 다리 때문에 썩어가는 다리걱정보다 전쟁을 않고 후방으로 이송된다는 바람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군인들도 있었다 하였다. 모두 다 마음 아픈 전쟁 안에서의 애처로운 이야기였다.(계속)

송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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