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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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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21 04:59 조회2,09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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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대천 하단 모래밭에 묻힌 시체 


 양양 읍내 쪽으로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벌써 한계령 아래 오색 쪽으로부터는 인민군이 내려온 것 같아 언제 총질이 날지 몰라 위험하다고 했다. 바닷가 옆 낙산 해수욕장을 지나 남대천 하류 백사장에서 갈벌이라는 동네를 건너가기 위해 우리 피난민 행렬은 잠시 멈춰 쉬면서 점심을 해 먹기 시작하였다.

연어가 올라오는 남대천 하류의 물 깊이는 어른의 가슴 정도 되었고 물살은 그다지 세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주먹밥 보따리를 풀어 모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하필이면 나는 오줌이 마려워서 상류 쪽으로 한 2, 30m 쯤 떨어진 곳으로 가서 오줌을 누는데 오줌 떨어지는 곳을 내려다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 때 내 오줌이 곡선을 그리면서 모래에 떨어지니 오줌이 모래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모래가 떨어지는 오줌에 밀려 나면서 모래 밑으로 물체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흡사 도랑에 죽은 쥐가 껍데기가 벗겨져 허연 살이 보이면서 검은 털가죽이 벗겨진 형태의 물체가 나타나 내 눈에 보였던 것이다.

자세히 내려다보니 사람 뒤통수였다. 머리카락이 꽤나 길었는데 나는 너무 놀라 오줌도 누는 둥 마는 둥 긴장한 정신으로 발을 뒤로 하려는데 내 신발 밑창으로 갑자기 꿀렁거리고 물커덩거리지 않는가? 나는 사람이 죽어 엎어져 모래에 덮인 시체 등 위에 올라서서 오줌을 눈 것이다. 옆으로 비켜서니 그곳도 죽은 사람이 묻혀서 모래가 약간 덮여 있었고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니 그 모래벌판 전체가 사람 죽은 시체가 묻힌 곳이었다.

그때의 짐작으로 그 넓은 남대천 하류 백사장 일대(지금 연어가 회귀해 올라오는 곳)는 전부가 죽은 지가 얼마 되지 않는 청년들의 시체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나중 이야기지만 남대천 하류는 우리 국군이 강을 등지고 남대천 둑에서 낙산사 쪽으로 공격해 남하하는 인민군들을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희생된 그런 곳이라 했다.

피난민 일행이 자리하고 있는 곳부터 상류 쪽으로 어마어마하게 널려져 모래로 살짝 묻혀져 있는 시체, 시체들! 나는 갈 때는 의식하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밟을 데가 없을 정도로 널려진 시체들을 피해 간신히 마을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장소로 돌아와 할머니 옆에 앉았다.

사색이 다 된 상태로 얼이 다 빠졌었다. 할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하는데 밥이 넘어갈 리 없다. 어렸을 때지만 그렇다고 다들 밥을 먹고 있는데 저기 사람 죽은 게 있다고 할 수도 없어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또 어린 마음에 너무도 놀라서 고개만 숙이고 죽은 듯이 있는데 할머니가 또 말하기를, 앞으로 많이 걸을 터인데 지금 먹어두어야 된다고 하였으나 나는 요지부동이었다. 보다 못한 머일 이모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

“저눔의 자식은 아무델 가던지 밥을 먹지 않아 제 할미만 맨날 굶게 만든단 말이야! 저 버릇 언제나 고칠 텐가! 아이 놈이 저렇게 고집이 세서야, 원 내 참!”

하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할머니 치맛자락만 붙잡고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엔 무서운 아까의 장면만 생각하면서……. ‘할아버지는 남의 속도 모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맛있게 밥을 먹었다. 강릉까지 내려가서야 나는 남대천 건너기전 그 시체 널린 사실을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할머니도 그때서야 크게 놀랬다.

사실 나는 머일 이모할아버지가 지적한 대로 아주 고집스런 버릇이 하나 있었다. 어렸을 때 여섯 살이 넘어서인가 우리 집 식구가 밥을 먹을 때마다 이웃집 어린애가 우리 집 밥 먹는 것을 늘상 문지방 앞에서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아버지가,

“찬수야! 저렇게 남의 집 밥 먹는 데 가서 거지처럼 밥을 얻어먹으려는 모양은 나쁜 것이란다.”

하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의 이 한 번의 가르침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주 잘하는 것인 줄 알고 그 이후부터 고집스럽게 받들면서 반드시 명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분별력 없이 꼭 지켰던 것이다. 어린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보고 싶은 아버지에 대한 약속 이행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다른 집에 가서는 절대로 밥을 먹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그러니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다른 집에 갔다가 끼니때가 되어도 내가 먹지 않으면 할머니도 따라서 식사를 하지 않고 손자 따라 굶는 것이 태반이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내가 야단을 맞은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대단히 병약했었는데 어디를 가면 하도 먹질 않아 할머니도 그것이 안타까워서 같이 울며 당신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웬만큼 커서도 그러했으니 나도 할머니 속을 어지간히 썩여 드렸다. 훗날 거제도 피난생활 이후는 그러하지 않았고 남대천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시 짐을 지고 남대천 하류로 도강하기 시작했다. 모두 건너 갈벌까지 갔는데 그곳에도 우리 집안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예전에 할머니와 한번 왔을 때는 머리를 길게 치렁치렁 땋은 총각들이 아주 많았고 수염을 길게 기르고 긴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어른들이 많은 동네여서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보지를 못하였다. 이미 모두 피난을 가서 우리 일행은 빈 집에 들어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쉬어 갔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피난 짐이 너무 무거워서 절반 이상을 빈집에 덜어놓고 이튿날 출발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도 나는 그 시체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계속)

 

댓글목록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쯔쯔쯔.....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도 16살 때 였던가????
우리동네 할머니 한분께서 돌아가셔서 묻는 모습을 보고도...
며칠동안 잠이 오질 않았었는 데.....
짙누런 삼베에 싸여있었던 시체를 보고....

금강야차님의 댓글

금강야차 작성일

뒤통수 부분이 끔직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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