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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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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12 04:38 조회2,0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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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끊이지 않는 우리 동네의 상흔(傷痕)

 물치 장거리에서 신나게 춤을 추면서 국군을 환영하던 쉴집 할머니, 51년 6월 이후 국방군이 계속 주둔하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쉴집 할머니의 세 아들은 영영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마도 남쪽 어느 전투에서 전사했을 거라고 하였는데 그 뒤 쉴집 할머니는 우울증으로 고생하였으며, 한동안 정신을 잃고 생활하다가 60년대 초반에 많은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이런 슬픔은 서로가 말을 않고 지나서 그렇지 지금도 우리나라 도처에 깔려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 현대사에 깊이깊이 들어 있는 상처가 바로 6ㆍ25의 아픔이고 슬픔인 것이다.

옹기점 마을

쌍천 벼락바위께 안쪽 마을 옹기점이란 동네에 나의 할아버지와 이종사촌간인 안학조(安鶴祚) 할아버지가 살았다. 오래 전부터 천주교 신자 가족이었는데 아마 천주교 박해 시절부터 신자이던 것 같다. 지금 따져 보면 나의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115~6세 정도? 이 할아버지 가정도 슬픈 사연을 안고 있었다. 내가 1963년 23살 군 복무 중 보름 휴가를 받아 서울 집에 머물다 할머니와 같이 고향엘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 이때 안학조 할아버지는 하얀 수염을 곱게 길렀는데 외모와 풍채가 고운 선비의 풍모였다. 할머니와 내가 왔다 하여 그 댁 할머니가 아주 반겼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는 나의 할머니와 지난 이야기를 하였다. 나도 그때 같이 들었는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할아버지의 아들을 그리는 한 맺힌 이야기였다. 그 댁 아저씨는 8ㆍ15 해방된 뒤 6ㆍ25 전에 남하하여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다. 6ㆍ25가 지난 뒤 수복 후에 할아버지는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기에 할아버지는 육군본부를 찾아갔다. 입대한 때와 아들 이름과 병과를 대니까 조사 기록을 보더니 장교는 맞긴 맞는데 전사하지는 않았고, 지금 어느 부대에서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에 허겁지겁 아들이 복무하는 군부대를 찾아갔는데 면회 신청 후 나타난 고급 장교는 할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름도 같고, 병과와 입대 시기도 같았는데 말이다. 장교 전사자 명단에도 없고, 그 장교의 본적도 강원도 양양군 속초 읍 옹기점 할아버지 사는 집터 번지로 되어 있었다는데…….

할아버지는 그 때부터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돌아가기 전까지 노력하였으나 답을 얻지 못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들 이야기만 하였다.

1ㆍ4 후퇴 그 뒤에도 우리 동네 청룡 뒷산 너머 넘은들 벌판과 또 양양 남대천 일대에서는 여러 차례 인민군이 밀고 내려와 주둔하고 국방군이 밀고 올라와 주둔하고 하는 치열한 전투가 여러 번 있었다. 양편의 죽은 군인들의 시체가 벌판에 즐비하고 흘린 피가 도랑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처절함을 짐작케 한다. 이런 공방전이 몇 달 동안 이어졌고 첨예한 대치 상태가 강산과 사람들의 마음을 무서운 침묵으로 가라앉게 했다.

1ㆍ4 후퇴 뒤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머일 이모할머니와 나의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며 한탄에 겨워 눈물을 흘리던 일이 있었다. 양양 면 낙산해수욕장 안쪽께로 조산리 어느 집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데 남편은 전쟁 통에 인민군대에 끌려간 뒤에 온데간데없이 행방불명이 되어 소식을 기다리는 집이 있었다.

사실은 젊은 가장들이 없어진 경우는 38선 이북 공산치하 우리 고을에는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너무나 많았다.

넘은들 벌판

그런 판국에 전쟁 통이라 먹을 것도 없었다. 그때 마침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는데 배가 너무 불러 꼼짝을 못할 지경이다가 용케 견디며 출산을 하고 보니 딸아이가 출산되어 출산을 마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진통이 있어 한참 뒤 또 낳으니 딸아이였다 한다. 쌍둥이였던 것이다.

둘째아이를 낳자마자 산모가 어지러운 정신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시어머니와 같이 그 둘째를 탯줄도 끊지 않고 장독대 밖의 수북이 쌓인 눈 위에다가 포대기에 싼 채 내버렸다는 것이다. 갓 나은 영아가 추운 한겨울에 세 시간이나 울다가 소리가 나지 않아 나가 보니 가련한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이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57년 지난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어디서나 어린이를 본다든지 임산부들의 숭고한 모습을 볼 때, 또 서울 성북동 가톨릭 입양원이라든지 그 외의 장소에서 어린 생명들의 엄숙함을 보면 하느님이 내는 존재의 귀함을 항상 생각하고 만나는 이웃들에게 옷깃을 여미고 그때마다 마음자세를 바르게 추스릴 때가 많다.

개울말

생명의 존엄성이 전쟁 통에 어린 영아처럼 버림을 받고 또 전쟁까지 일으켜 가면서 백성 잘 살게 해준다며 결과적으로 독재자 자기들 무모한 욕심만 채우려고 우리 젊은이들을 인간 살육의 장으로 마구 몰아넣다니……. 잘 이어 나가던 하나뿐인 국민들의 생명을 옳게 펴지도 못하고 벌레목숨보다 더 못하게 취급을 하는 얼치기 독재자 살인마 김일성의 무모한 통치방식이라니!

우리 마을 강현은 끔찍한 전투가 왔다간 가고 또 오고 하는 통에 민심이 마구 엉클어졌다. 국군의 진격과 마을마다의 주둔으로 인민군 따라 월북한 가정의 친척들은 그들대로 쥐 죽은 듯이 말도 못하고 기웃기웃 여기저기 눈치나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민군대들이 재차 들어오면 금세 어깨를 꼿꼿이 펴고 우쭐대고, 그러면 국군이 왔다고 좋아서 뛸 듯이 기뻐하던 사람들은 금세 풀이 죽어 분위기 살피고, 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한 마을에 살고 있게 된 국민들…….

1950년 10월초에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아직도 많다. 그 즈음 국방군이 양양을 거쳐 속초를 탈환하고 계속 북상하여 고성, 통천을 차례로 탈환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할머니와 나는 원산에 있는 부모와 어린 두 여동생이 그래도 무사하길 바랐다. 할머니는 집 뒤 장독대 옆의 돌 바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는 틈이 날 때마다 밤낮으로 두 손을 싹싹 빌며 치성을 드렸다.

연합군 탱크와 피난민 행렬

밖에서 원산지역에 대한 불길한 소식만 전해 듣고 온 날은 몇 번씩이나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누구에게 하는지 그저 “무사하게 해 주십소사, 무사하게 해 주십소사.”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청됀에서 무시무시한 전투를 보고 놀란 가슴으로 마을에 돌아온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전쟁 사이사이에 지어 놓은 들판의 곡식들을 거두어들였다.

며칠간 조용하던 마을에 또 큰 일이 벌어졌다. 대청봉과 화채봉 아래 송암산 쪽에서 인민군 50여 명이 개울말로 들이닥친 것이다. 집집마다 밥을 빨리 지으라고 총을 겨누고 주민이 밥을 짓는 동안 보초 경계를 서고 난리가 난 것이다. 동네의 친척 형이 몰래 빠져나가 물치 장거리께로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 내려가 국방군 부대에 인민군이 왔다고 신고했다.

곧 국군 전투부대가 출동하여 위치가 높은 양짓말 벌판의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인 논두렁 끝에 완전히 매복하고 바로 아래 개울말의 동정을 지켜보다가 개울말의 인민군을 향하여 “너희들은 완전 포위되었으니 항복하라!”고 소리를 쳤다. 한동안 기척이 없던 인민군들은 밥도 못 먹고 갑자기 들고 일어나 앞산 정승골 쪽으로 살금살금 튀기 시작했다.

국군들은 일제히 건너편 산에 도망가는 적을 발견하고 일제히 사격을 했는데 먼젓번 청됀 전투 때처럼 총소리 위세가 대단하였다. 양짓말 논둑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그 많은 인민군들이 일시에 도망가다가 거의 전멸되는 일이 벌어졌다. 무시무시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마을은 며칠간 조용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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