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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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06 05:00 조회2,2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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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B-29 항공기의 강현 역과 철다리 폭파
양력 8월 초순이 좀 지난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위 개울 물레방앗간 집 바로 위 지소 건너편 개울에서
그런데 떨어지는 시꺼먼 물체가 우리 눈짐작으로 땅에서 상공으로 10m 정도 보이더니 홀연 없어지면서 역 주변에 갑자기 연기가 풀썩 하고 일더니만 조금 있다가 “쿠웅!”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천둥치는 소리와 흡사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먼 곳까지 땅이 흔들렸다.
우리들은 너무 놀라 금방 죽을 것 같아 옷이고 뭐고 입는 둥 마는 둥 홀딱 벗은 채로 맨발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반격하는 대한민국 국군을 지원하는 유엔군 비행기(미국 비행기)가 강현 역뿐만 아니라 양양 철다리, 물치의 쌍천 철다리 속초 역 등 그렇게 올라가면서 원산 흥남 그 이북까지 폭격을 했다고 한다.
앞에 뛰는 형들이 비탈길 솔밭 야산으로 한 100m 쯤 떨어진 방공호로 치달리는데 모두 옷을 벗어 한손에다 거머쥔 채로 20여 명의 사내애들이 홀딱 벗고 줄지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들고뛰어 치달리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일이나 그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생사가 걸린 판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모두 컴컴한 방공호 안으로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며 들어가서 마음을 진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방공호 안쪽으로 들어가던 형들이 또 한 번 놀랬다. 우리도 웅성거리며 그 안쪽을 보니 방공호 바로 아래에서 멱 감던 윗동네 누나들과 우리 또래 여자 애들이 먼저 피신했는데 우리 일행이 뒤미처 들이닥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서로 어색하게 놀랬다. 밖으로 나갈 수 도 없고 옷도 챙겨 입지도 못하고 서로 웅크리고 눈만 멀뚱거리고 외면하고 있는 모습을 지금 다시 생각하니 배꼽을 잡고 웃을 그런 장면이었다.
한동안 진정이 된 뒤 우리도 굴 밖의 기미가 조용해 밖으로 나갔다. 또 동네에선 그동안 조용히 숨어 있던 어른들이 비행기가 날아간 지 한참 지나서야 밖으로 나와 자기 집 아이들을 찾아 목청 높여 불러대느라고 온 동네가 고함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강현 역 역사는 계속 타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무시무시하게 치솟고 있는데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지나 보니 역으로 들어가는 강현 천 기차 다리가 폭격으로 끊어졌고 역사는 흔적도 없어졌으며 역 안에 산더미같이 쌓아 놓은 마초더미(말먹이 풀) 등 전쟁 지원용 군수물자들은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다. 함경도에서부터 기차로 실어온 전쟁 지원물자들이 몽땅 다 타버린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군청요원 정치보위부 인민위원, 여성연맹위원(여맹위원) 등 동네 각 집에 숨어서 사무를 보던 집단들이 보따리를 싸기 시작 하더니 그날 밤중에 동네 사람들 몰래 우리 동네를 떠나 북으로 철수하고 동네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셨다. 원산의 내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이 죽었을 것 같은 무서움 때문이라 하였다.
가끔 하늘에 검정색 정찰기가 날아 다녔는데 우리는 그 정찰기를 “뿌웅―” 하고 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고 해서 ‘방구 비행기’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방구 비행기가 제일 무서웠다. 폭격기보다도 더 무서워했다. 왜냐하면 그 비행기가 떴다 하면 곧이어 공격용 ‘쌕쌕이(제트기, 훗날 들은 얘기인데 호주비행기라 했다)’가 순식간에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방구 비행기가 뜨면 2, 3분도 못되어 어디서 오는지 엄청나게 빠르고 “샤아악―” 하는 소리를 내는 쌕쌕이가 몇 대 날아와 양양 읍내 상공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폭격을 하고, 어떤 때는 속초 북쪽으로 날아가는데 빠르기가 번개 같았다. 우리 마을 논에도 폭탄을 떨어뜨렸는데 땅에서 터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땅 속까지 흔들려 방공호 땅굴 천정에서 흙 부스러기가 떨어질 정도였다. 비행기가 가고 나면 우리들은 그 폭탄이 떨어져 땅이 넓고 깊게 움푹 팬 곳으로 달려가 구경하며 폭탄의 위력에 놀라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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