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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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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09-30 04:36 조회2,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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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금강산 수련과 아오지 탄광

1949년 여름방학이 될 무렵 우리 학교에서는 기억나는 행사 하나가 있었다. 상급생 어린이위원장(학생회장 격) 형이 금강산 수련을 떠난다 하였다. 운동장에서 교문까지 선생들과 학생들이 모두가 도열한 한가운데로 그 형이 양 어깨에 손바닥만 한 계급장 같은 것을 달고 어깨를 재며 당당하고 멋스럽게 지나 갈 때 선생이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의 최영호가 영명하신 김일성 장군님의 은혜로 금강산 수련을 떠난다!”

하면서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환송하던 기억이 난다. 얼마쯤 뒤 그 어린이위원장 형이 돌아올 땐 더 대단했다. 선생이,

“보라! 드디어 최영호 동무가 김일성 장군님의 가르침을 받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라!”

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나는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나도 이다음에 커서 저 형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몹시 부러워했다.

지금도 나는 그 때의 생각이 나서 우리 대한민국의 청소년 학생들이 우리나라 입장에서 단순한 목적으로 금강산으로 관광 가는 것을 그리 좋은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김일성 우상화의 사상교육에 자칫하면 동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다.

또 ‘동무’란 호칭이 그때부터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강요되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이 ‘동무’ 호칭이 너무 우습다고 수군거리며 웃던 기억도 난다. 아버지 동무, 어머니 동무, 아저씨 동무, 할아버지 동무, 위원장 동무, 어버이 수령 동무……. 그저 갖다가 붙이는 게 동무라서 형들은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지만 비아냥거리면서 쓰레기 동무, 바가지 동무, 삽살개 동무, 송아지 동무 하며 킥킥대고 웃던 생각도 난다. 나도 그 때 처음 불러 보는 이 ‘동무’ 호칭이 이상하게만 들렸다. 아버지 동무라니!

1949년 3월 중순, 그러니까 6ㆍ25가 나기 전 해에 우리 동네 개울마을 아래쪽 다리께 돌담 울타리 안에 커다랗고 멋진 노송이 있는 집에 머일 이모할머니 가족이 이사를 왔다. 머일 이모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의 막내 여동생이다. 이모할아버지는 윤씨이고 키가 크며 거의 대머리인데 상투가 정수리에 틀어 올려있지 않고 뒤통수에 매달려 있어서 볼 때마다 그 상투 매달린 이상한 모습부터 눈에 띄었다. 중국 청나라 때의 변발을 한 사람과

이모할머니 집터 개울말 노송 고목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보다 연하인 아재 둘과 6촌 동생 남매와 아주머니 이렇게 일곱 식구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이모할머니 가족에게는 슬픈 사연이 있었다. 1947년 이모할머니 가족이 38선이 가까운 양양 광정리 머일에 살 때에 일어난 일이다.

이모할머니의 둘째아들, 당시 중학교 3학년인 석빈 아저씨와 몇몇 친구가 서로 짜고 38선 넘어 남쪽으로 몰래 숨어서 내려간 일이 있었다. 그때 광정리 쪽은 38선이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숨어서 왕복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당시 공산주의 김일성 우상 숭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데, 담임선생이 너무 심하게 학생들을 혼내며 몰아치는 바람에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학생들이 담임선생에 대한 반항심으로 이남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내려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한민국 국방군 경비초소에 들키고 말아 모두들 초소 한 곳에 모여 있게 되었다. 국방군이 이들을 보고 내려온 사유를 자세히 말하라고 하니 석빈 아저씨와 친구들은 담임선생이 너무 못살게 굴어 기분 나빠서 길을 들이려고 내려 왔다고 철부지 같은 말을 했다. 말을 듣고 난 후에 국방군이 사춘기 어린 소년들을 설득하기를,

“너희들은 한참 공부할 나이고 또 부모와 떨어져서는 살지 못하는 나이다.” 라고 하면서 “어서 다시 넘어가서 열심히 공부 하고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라.”

하고 당부까지 하니 순진한 그들은 다시 몰래 넘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이 사실을 담임선생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 때의 학생들을 모두 호출하고 족쳐대어 이들은 일시에 사상범으로 몰려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어서 학생들 가족까지 모두 조사받게 되었다. 이 바람에 그 동네 몇몇 학생들의 형들도 억울하게도 사상범으로 몰려 함경도 아오지 탄광으로 징역을 보내게 되니 부모들과 친척들은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어 온 마을이 슬픔으로 가득하였다.

석빈 아저씨의 형인 석순 아저씨도 쇠사슬 차고 아오지 탄광으로 가게 되었고, 두 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이모할머니와 이모할아버지는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그 이후로 슬픔 속에서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머일 이모할아버지 가족은 그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큰 딸이 출가해 사는 하복리 동네 개울말로 이사를 온 것이다. 이사 온 뒤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몇 번인가 수도 없이 아오지 탄광으로 면회를 갔지만 면회를 시켜주지 않아 헛걸음하고 돌아와 아들들에게 주려고 가지고 간 미숫가루가 든 보따리를 땅에다 내동댕이치며 주저앉아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이모할머니를 여러 번 보았다.

6ㆍ25 동란 중 미군의 폭격으로 아오지 탄광에서 석빈 아저씨와 친구 한 사람이 감옥을 탈출하였는데 탈출할 때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곳에 먼저 온 친구가 여러 시간 숨어서 기다렸지만 오지를 않자 석빈 아저씨를 뒤로 하고 혼자 고향에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고향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그 일가친척들은 좋아하였지만 이모할머니는 두 아들들이 오지 않아 또 한 번 더 큰 슬픔에 잠겼다. 혹시나 하며 그 탈출 때까지의 아들 얘기를 더 들으려고 고향에 온 그 아저씨 집을 한동안 출퇴근하듯이 하였고, 나중에는 그 아저씨를 수양아들로 삼고 지냈지만 할머니의 한이 그것으로 풀리랴.

1992년, 머일 할머니가 세상 떠나기 1년 전에 나는 양양 읍내 장거리께에 사는 아흔셋 되는 이모할머니를 찾아갔다. 허리가 꼿꼿하고 안광이 빛나기는 여전하였다. 송이와 산삼을 캐러 한 달여씩이나 산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할 정도라기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가끔 찾아뵈었지만 안방에 나와 같이 앉으면 그때마다 으레 공산당 놈들에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아저씨들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하도 많이 들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내가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소연하듯 그냥 내뱉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온유한 이모할머니가 아저씨들의 기억을 떠올릴 때는 아주 달랐다. 그 연약하고 가냘픈 팔의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내 앞에서 방바닥을 손목에 멍이 들도록 내리치면서,

“네 이놈! 김일성 이놈! 내 그 놈의 살을 깨물어 으깨 먹어도 시원찮은 놈! 그놈의 살이 내 앞에 있으면 씹어 찢어 버리고 말테야!”

하며 입에 거품을 물어 가며 말할 땐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방바닥을 내리치면서 절규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서 할머니 앞에서 같이 주먹을 불끈 쥐어 가며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할머니 말을 듣곤 하였다.

“김일성 이놈 뒈지는 꼴을 보고 난 뒤 나도 눈을 감아야 할 텐데!”

하던 이모할머니가 김일성이 죽기 전, 1993년 조금이나마 한도 풀어 보지 못하고 두 아들을 천국에서나 만나려고 돌아가신 것이다. 1993년 초겨울 장례식날 나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발인 때 이모할머니가 생전에 땅을 친 것처럼 나도 땅을 치며 관을 붙들고 소리 내어 울었다. 할머니의 평생의 한이 떠올라 너무 슬펐다. 지금도 이모할머니의 슬픔이 생각나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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