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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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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agok22341 작성일10-09-28 00:36 조회1,97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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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시 대상 우리 집


 1948년 10월 중순이 조금 지나 내 둘째 여동생이 태어났다. 나의 아홉 형제자매 중 다섯만이 살아 있는데 고향에서 난 형제는 바로 둘째 여동생뿐이다(나의 형과 바로 아래 남동생은 해방되기 전 함경북도에 살 때 홍역으로 사망하였고, 거제도에서 태어난 여동생 둘은 앞으로 다시 말하겠지만 피난 시절 거제도에서 사망하였다).

 우리 집이 가장 가난했고, 가족 모두가 공포 속에 살았던 시절이라 둘째 여동생은 영양실조 등 잔병치레도 참 많이 하면서 자랐다. 갓 태어난 동생이 어느 정도 큰 뒤 내가 학교에 갔다 오면 어머니가 동생을 어린 나의 등에 업히고 포대기 끈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너무 꽉 매주는 바람에 가슴이 답답하여 숨이 막혀 쩔쩔매던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생을 업혀 주고서 농토가 없어 농사일은 못하고 그나마 바느질 솜씨가 좋아 동네 삯바느질을 도맡아 하였다. 당시 어머니의 이 삯바느질 삯이 우리 집안 수입의 전부였다.

 1948년 늦가을의 일이다. 시골 벽촌이라 머리가 길면 할머니가 잘 들지도 않는 재봉 가위로 듬성듬성 머리카락을 짧게 깎아 주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깎고 다듬어도 사내인 내 머리는 흡사 얼룩말 가죽 씌워 놓은 꼴이었다. 나는 이것이 창피해 누가 있으면 양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고 지내던 중에 어느 날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려는데 담임선생이 나를 아주 다정히 불렀다. 이제까지 선생이 그렇게 다정하게 부른 적이 없는데 나는 의아해 하면서 예의 그 얼룩말 가죽 같은 내 머리통을 감싸고 긴장한 자세로 선생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선생이 내 머리를 아주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면서, “찬수야! 네 아버지 요즈음 잘 계시지? 아버지 집에 오셨니?”하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고 예쁜 우리 선생이 왜 갑자기 우리 아버지 안부를 묻는지 의아했고 그때 내 아버지는 내무서원들에게 사상이 이상하다고 감시를 받다가 잠적하여 이웃도 모르게 설악산 계조암에 몇 년간 몰래 숨어 있을 때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못 보았기에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오히려 머리 깎은 창피함보다 나의 또 다른 관심사는 내 어머니가 있는데 왜 예쁜 선생이 관심을 갖느냐, 이것이 더 큰 의문거리였다. 어렸지만 나의 이성 감각은(?) 상당한 수준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선생은, “찬수야! 네 아버지 오시면 꼭 아무도 모르게 살짝 알려줘!”
하고 당부하는 사랑 넘치는 듯한 말투를 뒤로 하고 창피한 까까머리를 감싸며 집으로 갔다.

 그 뒤 내가 철이 들면서 생각하니 그 선생을 통하여 내무서원들이 아버지를 수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공포를 느꼈다.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심리를 이용하여 그들은 나에게 아버지 행방 여부를 추적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김일성을 서서히 신격화시키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요즘 김일성 항일 전투랍시고 선전하는 ‘보천보 전투’나 ‘김일성 일제 항쟁’이란 내용을 우리는 알지도 못했고 또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았다. 다만 우상화 작업으로 김일성을 내세울 때는 콧수염 달리고 모자를 쓴 스탈린 대원수라고 씌어진 사진 옆에 김일성 장군 또는 김일성 원수란 명칭으로 된 새파랗게 젊은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 사람들이 지나다가 눈에 띌 만한 벽에는 거의 놓치지 않고 붙여 놓았다.


 초기에는 김일성이 너무 젊어서인지 어버이, 아버지 등의 칭호도 그 사진 밑에 자신 있게 붙이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주로 김일성 장군, 원수라는 칭호를 썼다. 아마 당시는 김일성의 배경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김일성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을 다 숙청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리라. 그리고 그 먼발치엔 남조선의 미국의 꼭두각시 대통령 이승만이란 설명글을 사진 아래에 써서 걸어 놓았는데 사진이라기보다 괴상하게 그린 만화 초상화를 그려서 붙여 놓았다.

 코는 꼬불꼬불 길게 하고, 길게 그린 손가락 발가락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금반지가 모두 스무 곳에 가득 가득 끼워져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계란 깨 넣은 목욕통에서 도깨비들처럼 좋아라고 놀아나며 목욕을 하는 그런 해괴한 그림이었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서 집안 어른들끼리는 ‘김일성은 가짜다’라는 소리만 비밀스럽게 오갔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38선 이북 인공치하에서 그렇게 나도는 말을 부지기수로 많이 들었다.(계속)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분위기가 어쩌면 이토록 섬찍합니까! ,,. 이게 바로 북괴 통치하의 상호 감시 체제! ,,. 이런 걸 요즘 청소년들이 알알히 깨달아야만 하거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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