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보상금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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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강야차 작성일10-09-05 04:27 조회2,683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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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표'를 보고나서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저 사람들의 '자식'들도 분명히 유공자가 되었을 테고...설마 손자까지?(이건 잘 모르겠음)
아..너무 답답합니다.
국가유공자'가 부럽고 질투나서 배아파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나라가 어떻게 될려는지....
다른 국가유공자에 대해서 '평가절하'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저는 오로지 5.18 유공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5.18 그 유공자 가산점으로 '기업체,공무원,군인,소방관 등등 온 동네방네를 다니면서 할인 혜택을 본다고 생각하니...젊은 사람들이 또다시 5.18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자신들도 동참하려고하지 않겠습니까? 국가유공자가 되는 길인데?
아~
저는 이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싫습니다.
5.18만 생각하면 진짜...
5.18 실체규명과 더불어 5.18민주화유공자 지정'의 문제점
,거액의 보상금을 공론화 시켜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
할 것 같습니다. -야차-
댓글목록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어떤 해에 mbc에서 광주 5.18 다큐를 방송했는데 그때 5.18 때 다친 사람들이 나왔었습니다. 부모가 군인들에게 돌아가셨다고 믿는 휠체어를 타는 젊은 여성, 그리고 정신이상으로 판명된 40대로 보이는 남성도 나왔는데 그 사람은 자기방의 벽에다가 '폭도'라고 낙서를 해놨더군요. 5.18의 진실을 제대로 모를 때인데도 저 사람이 진짜 정신이상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이상자라고 하더라도 그는 5.18때로부터 그때까지 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다수가 정신적인 환각에 빠져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이제는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1980년대까지 전라 광주에서도 5.18을 폭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는데 서서히 민주화운동(미문화원 방화, 6.10, 대학가의 여론)과 정치적인 상황의 변화 때문에 세뇌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중반 광주고속터미널에서 5.18 사진 전시(중년 여성이)를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만 광주 사람들 다수가 5.18을 폭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고 교통의 요지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전파되는 효과도 노렸겠지요. 서서히 전북도 선거 때 싹쓸이 되고 전남 남부도 그렇게 되더니 5공 비리에 이은 광주청문회,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그리고 각종 방송 영화 문화행사, 좌파 언론(인)의 확산 등을 통해 모략을 확대재생산한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정신이상자가 광주 5.18때의 사고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더 정직하다고 볼 때, 광주 5.18때 다수의 일부 광주시민들이 느꼈던,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았다는 전제로, 폭동의 진상을 가공되지 않은 관점으로 바로보던 그 시각이 옳았던 것입니다. 피난 간 경우도 있었다지요.
이 정신이상자의 가족들은 보상을 8천여만원 받았는데 거의 다 썼고 더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했습니다. 환자가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 가족들이야 돈(보상)이 우선이었겠지요. 5.18 유공자 세력들과 5.18 폭동 피해자 5000여명(5.18세력과 중복도 다수일 것)과 이 두 사례의 가족 친척들과 이웃들을 강력한 모략의 후원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이후로도 추가 보상과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공고화(鞏固化)시켰을 것입니다.
마당쇠님의 댓글
마당쇠 작성일수사 자료만큼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봅니다. 수사 자료가 객관적인 자료로써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러하다면 무엇을 객관적자료로써 인정할 수 있을까요? 수사 자료가 있으나 마나한 사회..이런 사회...이건 사회가 아니죠...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고로 수사자료가 자료로써 인정될 수 없다면 수사는 존재 가치가 없으며 수사관들 또한 존재 가치가 없고 신고도 할 필요가 없으며 경찰이 나설 필요도 없다는 것이죠.법이고 나발이고 그냥 멋대로 사는 거라 봅니다. 자료는 객관적이여야 합니다. 그게 생명입니다.수사 자료가 무시된다면 입법 사법 행정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