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사회 의식구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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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발해의꿈 작성일10-03-16 11:13 조회2,5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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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사회 의식구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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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앞의 새마을 공장 외면하고 구로공단으로 가는 농촌처녀
1978년 5월 초순, 필자가 생산한 레드오쿠라, 휀넬, 아데쵸크 등 프랑스 요리용 채소들을 청와대 본관 검수관인 방의식 경호관(2009년 작고) 편으로 보냈다.
그날
한 달전인 그해 식목일 행사때
당시 필자는 용인 민속촌 인근의 가발수출 회사인 「다나무역」의 종업원(이들을 ‘공순이’ 또는 ‘자야’라고 불렀음)들 가정환경 실태를 파악 중이었는데, 다음 조사지역이 구로공단이라서 설문에 응하는 여성 근로자들에게 선물용으로 줄 타월에 ‘대통령
필자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신갈농민학교」는 비정규 전문대학학력인정 교육기관으로, 겨울 농한기에는 새마을 지도자들의 소득증대 교육을 실시하곤 했는데, 입소하는 호남지역 지도자중에는 다나무역에 근무하는 딸을 만나러 오는 것이 목적인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딸을 만난 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딸들이 월급이 적어도 구로공단으로 가기를 희망하는데 이유는 야간학교 진학과 결혼상대의 남자를 만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1978년도 전후 구로공단과 인근 공장지대에는 농어촌 출신 처녀 7만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미성년자를 포함하면 2배가 넘는다는 관할 파출소의 보고도 있었다.
보조요원 두 사람과 함께 파출소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여성근로자인 이들의 면담에서 이곳까지 직장을 찾아오게 된 동기는 가난한 농어촌을 벗어나기 위해서가 100%였고, 이중에는 부모님의 약값과 병원비 조달, 동생들의 교육 문제 등 자신이 희생되어 가족이 행복해진다면 무슨 일들을 못하겠느냐는 참으로 숭고한 뜻을 가지고 주경야독하듯이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야학에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추석과 명절에 고향 갈 때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어디에 근무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느냐’는 질문에는 90%가 좋은 직장에서 대우받고 있다고 거짓말 한다고 했다. 고향 갈 때는 서울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치장해가기 때문에 심지어 시골 남자친구도 속는다고 했다. 여기에 ‘대통령
이어서 “여러분들의 고향마을에 새마을 공장들(이후 1983년도에
이유를 묻는 필자에게 “정말 몰라서 묻느냐”면서 집 앞 공장으로 출퇴근하면 그곳에서 받는 월급을 봉투 채로 부모님에게 바치고 다시 용돈을 받아 쓰는 구조이지만, 여기에서는 내가 알아서 쓰고 나머지 돈들을 우체국을 통하여 소액을 보내주어도 통째로 월급봉투 받는 것보다, 고향의 부모님들은 더 감격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보고받은 각하께서는 “바로 그것이다. 내가 번 돈은 내가 집행을 해야지, 봉투채 주고 부모님으로부터 다시 받는 행위는 효녀소리는 듣겠지만 결코 자립정신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보고가 못미더웠던지 당시 치안본부장인
● 노인 혹사(酷使)가 「경로우대 정책」인 스위스
그날 이후 주변사람들로부터 황당하고 이상한 말만 하는 엉뚱한 놈으로 각인되었다. 그런데 2년후 각하께서는 필자의 건의가 타당성 있다는 말씀을 하였다고 전해 들었다.
이때쯤, 농림부의 젊은 서기관 조OO氏가 농촌 노인복지정책으로 스위스 노인정책의 검토 필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했는데, 그의 보고서는 노인들을 안방에 편안히 뫼시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바깥으로 몰아내는 것이 노인에게도 得이고 국가에도 이익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주장했다. 이 논리는 요즘 표현으로 각하에게 ‘필(feel)’이 꼽힌 것 같았다.
이번에도 담당자들이 조직되어 함께 현지 대사관의 도움 없이 스위스를 방문했고, 필자는 스위스가 처음이고 마침 가을 추수철이라서 무조건 알프스 산맥의 농촌(축산업) 마을을 가자고 고집했다. 그곳 관내에 있는 주(州:Kanton) 정부가 관리하는 주립 양로원과 마을 노인정에 둘러 현황파악을 했는데, 그때 이미 스위스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12%가 되었고, 월급의 80%가 연금으로 지급되고 있었지만, 양로원과 노인복지원에서는 노인들이 방안에 절대 있지 못하도록 별의별 유인책을 개발하여 야외로 불러내고 있었다.
예컨대, 산악구조요원, 구난견(세인트버나드) 관리요원, 산불방지요원, 등산객 안내요원 등과 같은 별별 직책을 만들어 주어 하루 평균 7km이상을 강제로 걷도록 하고 있었다. 당시 안내를 했던 스위스 공무원은 “과거 노인들을 편안히 뫼시는 정책이 있었는데, 이것은 노인들을 더욱 나태하게 만들고 술꾼ᆞ도박꾼으로 안내하는 지름길 같은 현상이 일어났고, 의료비와 보험료 지불은 늘어나고 가족들도 힘들게 하였다”면서 “거꾸로 노인들을 혹사시켰더니 더 건강하고 나이답지 않게 사회 참여율이 높았다. 또한 약값 등 의료비 지출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또한 “이것은 궁극적으로 노인에게 사회참여의식을 고취시키고 국가는 노인질병이 줄어들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그야말로 1석2조의 효과가 있다며 한국도 국민1인당 소득과 관계없이 실시하라”고 권유했다.
당시 한국 국민정서에는 가당치도 않는 것이었다. 2009년말 현재 한국도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0.2%를 차지한다. 스위스의 노인정책을 도입할 때가 되지 않았나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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