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실의 출산 [탈북자들의 위험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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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9-29 14:57 조회4,4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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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실의 출산>
[탈북자들의 위험한 가면]
출산 발언에 대한 요약
2012년 10월 4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교생활이 끝나자마자(1991) 곧바로 꽃제비가 되었다. 5년 동안 밖에서만 잤다. 그 과정에 임신을 했다. 애기를 낳았다. 장마당 어머니들이 동냥젖을 먹여주었다. 위키백과에는 혜산청년역 길바닥에서 딸 출산했다고 기록돼 있다.2012년 6월 11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2004년에 출산했다. 꽃제비들이 모이는 여관에서 산후 조리를 했다. 강냉이죽국물로 연명했다. 젖이 니오지 않아 아이에게도 강냉이죽국물을 먹였다. 같은 날 이만갑 프로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혜산 역전에서 낳은 후 7층짜리 꽃제비 여관에서 강냉이죽먹으면서 산후조리를 했다. 아기는 잠시 소아병동에 입원했었다. 아이랑 동반탈출했다.
2012년 10월 4일에는 이런 말을 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유리조각으로 탯줄을 끊어줬다. 비닐장막 하나 쓰고 밖에서 살았다. 4일을 굶었다. 지나가던 여인들이 젖을 물려주곤 했다. 2013년 3월 19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역전 옆 아궁이가 아이 낳은 자리였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애 받아주고 깨진 유리로 탯줄을 잘라주었다. 아픔보다 할머니가 고마워 엉엉 울었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애 낳다 흘린 눈물이 다 얼어붙었다.
2014년 5월 20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역전 보일러실에서 아기를 낳았다. 재를 밖에다 버렸는데 그 재 위에 비닐방막 깔고 진통을 했다. 할머니가 쓰레기장에서 깨진 유리를 가져와 탯줄을 끊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장마당에 가면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할머니가 시커먼 앞치마를 벗어서 아기를 싸주면서 장마당으로 가라 했다. 그래서 곧장 장마당으로 갔다. 12월 25일이었다.
2015년 8월 15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역전 보일러 실, 방막 깔고 앉아 12월에 출산했다. 12월 27일이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도와줬다. 앞치마 찢어서 실오라기 뽑아내고 깨진 유리조각 찾아다가 탯줄 끊고 실오라기로 잡아매 주었다. 추위가 대단했다. 누가 양말 주면 아기 발과 팔에 끼워 옷이 되게 했다.
2018년 1월 12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혜산역 아궁이 옆에서 아기를 낳았다. 그 할머니가 벗어준 앞치마에 아이를 싸들고 할머니기 일러준 대로 장마당으로 갔다. 애를 배낭 속에 집어넣고 손을 높이 들어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장마당에서 3년 살았다. 아기가 3살 될 때까지.
출산 발언에 대한 평가
종합해 보면 이야기를 꺼내놓는 시기마다 출산 장소가 다르고 출산일이 다르다. 임신의시기가 1991년에서 1996년 사이라고도 말했고, 2004년 12월 25일이라고도 했으며 12월 27일이라고도 했다. 1996년 이전에 임신한 아이라면 1997년에는 출산을 했어야 한다. 이는 2004년에 출산했다는 말에 배치된다. 2004년 12월에 출산을 하려면 2004년 2월경에는 임신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순실은 2007년 8번째 탈북에 실패한 후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은 장소와 장면이 발표 시기마다 다르다. 혜산청년역 길바닥에서 출산했다고도 했고 역전의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출산했다고도 했으며 역 보일러실에서 낳았다고도 했다. 아기를 낳자마자 앞치마에 싸가지고 배낭에 넣어 장마당으로 달려가 손을 높이 들고 도와달라고 외쳐서 동냥젖을 얻어 먹였다는 말도 했다. 아기를 낳아 7층짜리 꽃제비 여관에서 산후조리 하면서 아이에게는 강냉이 국물을 먹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가 잠시 소아병동에 입원하였다는 말도 했다.
12월의 강추위에 할머니가 앞치마를 입었다는 말도 현실적이지 않고, 12월 하순의 앞록강 추위 속에 방금 자궁에서 나온 아이를 겨우 앞치마에 말아 배낭에 넣어가지고 장마당으로 달려가 4일동안 굶으면서 동냥젖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말과는 달리 산후 조리를 7층짜리 꽃제비 여관에서 했고, 거기에서 강냉이죽국물을 아이에게 먹였고 아기를 소아과 병원에 입원을 시켰댜는 말도 했다. 아이를 낳은 날짜와 장소가 발표할 때마다 다르고 산후 과정이 발표 때마다 다르다. 아이를 실제로 낳은 것인지, 이순실이 과연 아기를 길러본 여성인지 의문이 가는 대목들이다. 내용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말하는 내용이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아이에 대한 이순실의 이야기들은 남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려고 꾸민 가공의 작품이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2020.9.2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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