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서(간첩 손성모의 5.18공작과 북한의 5.18기념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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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5-01 10:21 조회3,4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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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변 서
간첩 손성모의 5.18공작과 북한의 5.18기념행사
사건 2020노804 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피고인 지만원
위 사건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1. 탈북자 제1호 박사 안찬일tv 방송
2020.10.4. 탈북자 1호 박사 안찬일이 “[TOP SECRET] 5.18 사건 때 실제 광주에서 체포된 직파 북한 공작원이 있었다!”는 제목으로 5분 36초 동안 방송하였습니다.
[다인 속기사무소]에 의뢰하여 제작한 녹취록을 증228로 제출합니다.
1) 녹취록의 요약
(1) 손성모는 북한 엘리트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 1929년생으로 1967년도에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다.
(3) 통일전선부가 그를 스카우트하여 공작원으로 키워오다가 1980년 4월초 광주로 직파됐다. 북한군이 내려왔다 것은 아직도 설이었지만 이 공작원이 침투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4) 광주사태가 진정된 이후 북한에서는 당간부들과 권력기관 사람들한테 특별강연이 있었다. 강의 내용에 의하면 손성모는 광주지역 시민군 총 사령관으로서 북한에서 내려간 특수부대, 공작원, 또 광주의 학생들, 시민들을 묶어서 지휘한 사실상의 총 사령관이었다. 손성모 동지를 따라 배우자는 강연이었다.
(5) 김일성은 1960년대 초반에 남파간첩들에게 비밀교시를 주었다. “공작원들은 십자가와 스님 뒤에 숨어라.” 공작원 손성모도 80년 4월에 대한민국에 침투하면서 광주 근교에 있는 증심사라는 절로 숨어들어 스님으로 위장했다. 거기에서 거사를 음모했고, 비전향장기수 류낙진의 딸 류소영의 주도로 그 절에서 여러 차례 시민군이 어떻게 일어나서 저항할 것인가, 이런 회의를 열었다는 것이 손성모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6) 광주사건은 그 이후에도 손성모는 월북하지 않고 그 주위에서 계속 또 다른 기회를 노리다가 1981년에 체포됐다. 거의 19년 동안 복역을 하다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 김대중이 비전향 장기수들을 대거 북한으로 보냈고, 손성모도 이에 포함돼 북으로 갔다.
(7) 북한에 돌아가서는 북한 최고명예인 공화국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등 수많은 명예를 누렸다.
2. 손성모에 대해 안찬일이 새로 밝힌 것
위키백과에 의하면 손성모는 1980.5.7.~10.4.까지 151일 동안 전국 유명 사찰 35곳을 다니면서 위치, 전황, 승려들의 신상 등을 파악했다가 입건되었는데 그 행적을 5.18과결부시킨 적은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안찬일은 손성모가 승려로 위장해 김대령의 저서 등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5.18시민군 활동의 핵심 근거지로 알려진 증심사에서 비전향장기수 류낙진의 딸 류소영 등과 함께 5.18 공작을 했고, 그 결과 북한에서 일약 명사가 되어 김일성과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고 방송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것들은 시간표를 정해놓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3. 손성모에 대해 노숙자담요가 밝인 것(제36광수)
노숙자담요는 광주현장 사진 5개 장면에서 손성모를 발견하여 제64광수로 지정하였습니다. 아래는 노숙자담요가 분석한 영상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