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82)] 지만원족적[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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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12 00:12 조회6,4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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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2)] 지만원 족적[2]
1. 카지노 소령
내 제2의 고향 존 스타인 백 컨트리
1974년 7월, 미 해군대학원에 입교하려고 김포에서 출발해 LA 공항으로 날아갔다. LA 공항에서 지방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40분 비행하여 몬터레이 작은 공항에 내렸다. 덕이 있게 생긴 미국인 부부가 나를 반갑게 맞으면서 자신들을 소개했다. 미국에 처음 온 내가 미국에 잘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스폰서를 자원했다고 했다. 이것이 미국이 이방인을 끌어안고 가는 시스템이었다.
몬터레이 반도는 태평양과 접해있으며 바다가 푸르고 파도가 아름다운 곳으로 존 스타인 백 컨트리라고도 불린다. 존 스타인 백이 살던 곳이며, 존 스타인 백 작품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성난 파도가 가파른 절벽을 때릴 때면 물웅덩이와 물보라가 하늘 높이 치솟다가 뽀얗게 부서져 내리고, 반달처럼 휘어진 백사장에서는 노을 진 바다 풍경을 즐기며 가장 편리한 복장으로 걷는 사람들이 시상에 젖는 듯했다. 내륙 쪽에 자리한 산들은 카펫에 덮인 듯 보드라워 보였다. 영화 ‘에덴의 동쪽’도 여기에서 촬영되었고, 샌디라디가 주연이었던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도 여기에서 촬영됐다. 내가 좋아하는 굴린트어스트우드도 여기에 살고, 킴노박도 여기에 산다. 미국에서는 손꼽히는 휴양지이고 시인의 고장이기도 하다. 페블비치의 골프장은 레이건 대통령의 놀이터였다.
모든 가옥은 단층집들이고 꽃과 푸른 숲속에 점박이처럼 들어앉아 있었고,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낮이면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밤이면 맑은 공기를 뚫고 들어온 해맑은 달빛이 방 안에 가득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 물개 소리가 이국적 정취에 취하게 만들어 잠을 재웠다. 나는 공부하는 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시기하는 인간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시의 고장에 와서 사람들은 왜 질투할까? 미 해군대학원에 나보다 먼저 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은 육군, 해군, 공군 장교들이었고 육군이 가장 많았다. 육군은 모두 육사 출신이었는데 나보다 2~8년 선배들이었다. 이들 모두는 응용 수학을 공부했고, 나만 경영학을 공부했다. 나보다 후배인 장교는 해군 조 소령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는 나보다 1년 후배지만 해군의 진급 체계상 진급이 빨리 되어 있었다. 후배는 조 소령, 선배는 지 대위
3개월마다 학기가 끝나면 학교 게시판에는 우등생 명단이 떴다. Dean’s List. 4점 만점에 3.65 이상인 학생들 이름이 뜨는 것이다. 한국 학생 중에서 우등생 리스트에 이름이 뜨는 학생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었다. 하루는 조 소령이 내게 말했다. “육사 선배들 왜 그래요? 후배가 영광스러운 리스트에 오르면 파티해 줘야지, 왜 씹어요?”, “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지 선배님은 쉬운 경영학을 해서 우등생 리스트에 오르는 것이고 자기들은 어려운 수학을 해서 리스트에 오르기가 어렵대요.” 수학은 수학 기호를 통해 공부하는 것이고, 경영학은 영어라는 언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공부하기엔 매우 힘들었다. 선배들은 사실을 왜곡해서 후배를 비하한 것이었다.
선배들 꼬셔서 골탕 먹여
나는 선배들이 모여 있는 방에 들어가 선배들을 꼬셨다. “저는 회계학이 따분한 과목인 줄 알았는데 공부를 해 보니까 새 세상이 열린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은 이러이러한 자료가 있다 치고, 그 자료들을 가지고 최적화시키는 수학을 공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자료가 어떻게 생산되는 것인지, 자료 생산에 메커니즘은 알고 하시는 공부가 멋있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꼭 한번들 시도해 보십시오. 어렵지 않습니다.” 세 선배가 회계학 과목에 등록했다. 가장 기초적인 ‘재무회계’(Financial Accounting)였다.
반면 나는 그들이 공부하는 확률 과목 중 어렵다는 과목인 Stochastic Process(확률행진)를 등록해 그들과 한 반에서 공부했다. 세 선배는 회계학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용어들부터 복잡하고 생소해 마치 수렁에 빠진 사람들처럼 그들의 표현 그대로 ‘개고생’을 하고 B 학점과 C 학점들을 받았다. 이에 더해 그들의 분야인 ‘확률행진’에서 나는 A 학점을 받고 그들은 B 학점을 받았다. 남의 능력과 성과를 무시하는 나쁜 버릇을 가진 선배들을 골탕 먹이는 하나의 작전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한국 장교단의 생각들
나는 선배들과 어울릴 시간이 전혀 없었다. 밤 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아침이면 7시에 일어나 학교로 달려가기에 바쁜데 무슨 수로 선배들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 어울리지 않으니 고자세로 보였던 모양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나로부터 골탕을 먹고 체면도 구겼다. 해군 조 소령은 부산하게 쏘다니는 데가 많아 선배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다. 그 역시 미운털이 박혀있었다.
조 소령은 이웃 동네 도박장을 많이 다닌 모양이었다. 졸업하기 며칠 전 도박장 주인에게 진 빚이 꽤 됐던 모양이었다. 그 돈을 갚을 길이 없었다. 그대로 도망가듯 귀국하면 난리가 날 판이었다. 그렇다고 조 소령이 선배들 앞에 찾아와 대책을 의논할 수도 없었다. 선배들이 그 일로 대책 회의를 했다. 내가 제일 막내였다. 그런데 선배들은 조 소령을 성토만 했지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결론은 자명했다. “그 새끼가 진 빚을 우리 한국 장교단이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 회의를 끝낼 참이었다.
여기에 내가 끼어들었다. “조 소령이 진 빚을 우리 주머니의 돈을 모아 갚자는 것이 아닙니다. 도박장 주인이 학교 당국에 찾아와 난리를 칠 텐데 그걸 막자는 것입니다. 이대로 우리 장교단이 손 놓고 있으면 분명 도박장 주인이 학교 당국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학교 당국은 분명 단장님을 불러 항의할 것입니다. 이 무슨 창피입니까? 조 소령은 귀국하면 곡 갚을 것입니다. 갚지 않으면 우리가 해군 총장에 편지를 쓰지요. 해군 총장이 그 돈 갚아주지 않을까요? 조 소령 역시 인생이 끝나는 문제인데 그 돈 안 갚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도박장 주인에게 찾아가 한국 장교단이 책임지고 갚겠다고 약속하면 조용히 해결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안 그러면 망신당합니다. 망신만 당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돈을 갚아야 합니다. 왜 감정만 앞세우십니까?”
이에 꼬장꼬장한 3년 선배가 나를 째려보았다. “야 지 대위, 너 조 소령하고 친해서 감싸는 것이냐?” 벽창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신 한번 당해 보십시오. 국제 장교 담당관에 불려 가서 망신당하고 난 후에 그 돈 갚으십시오. 그 국제 장교 담당관이 한국 장교들 대할 때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모두 깔보일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창피합니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그 후 그들은 그들의 고집대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선배 두 분이 포도주 한 병을 사들과 내 처소로 찾아왔다. 얼굴들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외국 장교 담당관 ‘맥가니겔’ 중령에게 한국 장교단 단장과 그의 동기생들이 불려 가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협박을 받은 것이다. “이 문제, 한국 장교단에서 책임지지 않으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 된다. 어찌하겠느냐?” 이에 두 사람은 그제야 “우리 한국 장교단이 책임지고 갚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하고 나왔다고 했다.
이 두 선배가 나에게 털어놨다. “야! 지만원, 진작 네 말을 들었으면 망신당하지 않았을 텐데, 부끄럽다. 미안해서 포도주 사 왔으니 한잔씩 하자.”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나에게 사과하러 온 것이라기보다는 조 소령이 정말 내 말대로 귀국하자마자 돈을 갚겠는가를 확인함으로써 마음의 위안 받기 위해 온 것으로 보였다. “어이! 지만원, 조 소령이 금방 갚겠지?”, “염려 놓으세요, 제가 장담합니다.”
귀국차 조 소령이 공항에 나갔을 때 배웅한 사람은 오로지 나 한 사람뿐이었다. “야! 조 아무개, 너 돈 빨리 보내지 않으면 네 인생 끝인 거 알지?”, “네, 걱정하지 마셔요.” 조 소령은 귀국하자마자 즉시 돈을 마련해 업주에 보냈다. 그리고 내게 고맙다는 편지도 보냈다. 조 소령은 고아 출신인데 어느 댁에서 입양한 아이였다. 그리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란 장교들의 자존심
한 이란 장교와 나는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는 돈이 많은데다 부인까지 동반해 와서 해변 고가 아파트에 세 들어 있었다. 반면 한국 장교들은 1970년대 말까지 가족을 동반할 수 없었다. 가족 동반은 1980년, 전두환 집권 시에 비로소 허락됐다. 이란 장교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미스터 지를 찾았다. 친해지자 그는 주말이면 가끔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 후에는 후식으로 꼭 캐비어(상어알)가 나왔다. 캐비어는 원체 비싼 식품이라, 이란 친구 집에서 먹은 것이 최초이자 최후의 것이었다.
2주간의 겨울 휴가를 맞이했다. 그가 갑자기 나에게 200달러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여유 있을 때 갚으라며 나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감을 표했다. “I am honest”를 연발했다. 사실 나에겐 당시 200달러가 필요하지 않았다.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내게 200달러나 되는 적지 않은 돈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강요하는 정도로 ‘오네스트, 아이엠 오네스트’를 반복할까? 돌아서면 한 사람은 이란으로 가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으로 가는 처지인데, ‘내 진정을 받아 달라’ 밀어붙인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좋아하고, 신뢰한다는 정을 표시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응, 마음으로만 받을게~” 이렇게 거절하는 것은 멋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그가 써주는 수표를 소중하게 받아서 은행에 예치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난 다음 “아주 요긴하게 잘 썼다.”라며 내가 발행한 수표를 건네주면서 포옹했다. 그는 나에게 ‘신뢰’의 정을 선사했고, 나는 그 ‘신뢰’에 대한 보답을 ‘갚음의 신뢰’로 보여준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가 차단된 우정과 그것이 열린 우정에는 급수가 존재했다. “이 친구, 사람 어떻게 보고 그래~” 이렇게 좁게 처신할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이란 친구가 없는 가운데 파키스탄 중령이 여러반 친구들 앞에서 “파키스탄이 이란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비행훈련을 시켜준 적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내가 들었던 이 이야기를 아무런 뜻 없이 말했다. 며칠 후 휴식 시간에 여러 명의 국제 장교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파키스탄 중령이 했던 이 말을 누가 이란 장교에게 옮겼느냐에 대한 짐작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란 친구에게 해 준 말이 이란 장교단 단장인 중령에게 전달됐고, 이란 중령이 자존심이 상한다며 발끈해 파키스탄 중령에게 엄중히 항의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란 장교들의 자존심이었다.
사태의 성격을 파악한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손을 들고, “그 말 내가 했다.” 이렇게 선언했다. 당황한 사람들은 여러 학생이었다. 어떻게 저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맙다”, “정말 용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이 말들은 또 나를 불쾌하게 했다. “나는 용감한 게 아니다. 나는 고자질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용기냐, 이란도 파키스탄도 다 미국의 친구 나라가 아니냐. 나는 이란과 파키스탄이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걸 바로, 이 순간에 눈치챘다. 그 문제의 발언은 여기 있는 저 파키스탄 중령이 여러 학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다. 공개된 말을 전한 것이 무슨 고자질이냐. 공개된 말은 상식 아니냐. 불편한 말이었다면 애초에 공개석상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이에 장교들의 시선이 파키스탄 중령에 모아졌다. 이어서 파키스탄 중령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특히 미스터 지를 고자질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이 매우 잘못된 처신이라고 사과했다. 이후 파키스탄 중령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늘 환하게 웃어주었다.
2. 미국 휴즈사와의 결전
1976년 2억 5천만 달러에 산 방공장비
1976년, 공군은 공중에 나는 새까지 포착할 수 있다면서 미 휴즈사로부터 방공 자동화 장비를 2억 5천만 달러에 구매했다. 당시 국방 예산의 7%나 되는 엄청난 돈이었다. 그런데 새보다 수만 배 더 큰 전투기와 여객기까지도 탐지하지 못했다. 1983년 북괴군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온 것도 탐지하지 못했고, 중국 민항기가 이리저리 구조요청 비행을 했는데도 탐지하지 못해 춘천에 불시착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안사가 조사했지만, 보안사에는 분석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 과제가 또 나에게 배당됐다. 보안사가 직접 나를 불러 부탁한 것이다.
25달러 가치도 없다.
1976년, 나는 8개월 연구 끝에 “이 장비는 25달러 가치도 없다. 이 장비로 항공기를 탐지하면 그것이 기적이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연구 결론을 냈다. 이는 군 전체에 충격을 주었고, 이에 보안사는 전두환 대통령에 이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이기백과 공군총장 김인기를 청와대로 불러 노발대발하셨다.
휴즈사 팀 세 명
나는 이 사업을 중개한 오파상에 부탁해 휴즈사 사업팀을 보내달라 했다. 고려대 맞은편에 자리한 홍릉 국방연구원 내 사무실에, 체격이 우람하고 배가 출렁이는 미국인 세 사람이 들어왔다. 고압적 태도였다. 나는 대뜸 물었다. “공중에 나는 새까지 다 포착한다는 방공 자동화 시스템이 어떻게 대형 여객기와 전투기 2대가 구조를 요청하는 S.O.S 비행을 한동안 하고 다녔는데도 탐지하지 못할 수가 있는가?” 매우 시건방진 태도로 팀장이 앵무새처럼 말했다. “휴즈사는 세계 최고의 회사다. 휴즈사가 할 수 없는 일은 세계의 누구도 할 수 없다. 휴즈사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엎지락 뒷치락
“당신들 통계학 기본 중에 ‘타입 원’ (Type Ⅰ) 에러와 ‘타입 투’ (Type Ⅱ) 에러가 있는데 그 원리가 이 자동화 시스템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나를 얕잡아 보던 그들의 얼굴에 주눅이 들었다. “휴즈사는 세계 최고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들은 최고가 아니다.” 내게 위압감을 주려 한 것만큼 그들의 자존심을 직선적으로 긁어 놓았다.
문제점 찾아줘
“레이더가 돌아가면서 발사한 전자파 목표물에 부딪히면 반사파가 날아온다. 레이더 화면에 나타나는 점들이 그 반사파들이다. 그런데 공중에는 이를 방해하는 노이즈(잡상)들이 많다. 어느 것이 진상이고 어느 것이 잡상인지 인위적으로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어느 강도 이상의 상은 통과시키고 그 이하의 강도를 갖는 상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을 통계학에서는 ‘문지방’(Threshold)이라 부른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종류의 에러가 발생한다. 하나는 진상을 버리는 에러(Type Ⅰ error)이고 다른 하나는 잡상을 선택하는 에러(Type Ⅱ error)다. 휴즈사 제품이 크고 느린 민항기까지도 잡지 못한 것은 휴즈사 장비에 잡상을 생성시키는 매우 불량한 구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해태된 공군의 애국심
이들의 눈에 순간적인 빛이 흘렀다. 어느 정도의 답을 얻은 듯했다. “잡상을 만들어내는 불량한 구성품” 이런 구성품이 있는 한 비행체를 발견해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장비를 수정하라!” 명령조의 이 말에 그들이 반박했다. “공군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이 사업은 내가 연구해서 대통령에 보고된 것이다. 공군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비양심적인 말이다.”. “우리는 공군과 거래했다. 요구 사항이 있으면 공군을 통해서 제기해 달라.”
협박이 먹혀들어
이에 내가 협박했다. “당신들과 이야기해 보니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미 해군대학원에서 통계 수학 공식과 정리를 다수 창조한 사람이다. 나는 28개국에서 관련된 장교들과 함께 공부했다. 그들 모두가 그들 나라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낼 것이다. 휴즈사의 프로젝트팀은 자동화에 대한 기본 실력이 없고, 진지함이 없는 사람이더라. 이렇게 알릴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를 휴즈사 본부에도 보낼 것이다.”
약속까지 했건만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들이 수선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 설명에서 힌트를 충분히 얻었을 것이다. “노이즈(잡상)를 양산해 내는 곳이 어디인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시정에 나서겠다고 했으니 나는 일단 성공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손을 굳게 잡고 힘겹게 포옹까지 하고 내보냈다. 그리고 그날 일부 연구원들과 자축 파티를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들로부터 편지가 날아왔다. “자동화된 시스템은 공군이 운영하고 있다. 공군에게 이야기 해 보니 공군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혼돈을 피하기 위해 이후 모든 귀하의 요구는 공군을 통해 전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떠날 때는 말 없이
그리고 이어서 공군총장 김인기가 국방부 장관 이기백을 찾아갔다. “지만원과 공군,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이기백은 전두환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였다. 이기백은 국방부 차고나 황인수(육사 12기)와 기획관리실장 황관영(육사 12기)을 시켜 나를 국방 대학원 교수로 추방시키라고 했다. 나에게 분석을 맡겼던 보안사도 사람이 바뀌자 그들 편이 되었다. 나는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물러날 자리에서 선뜻 물러나는 것도 인생의 멋이었다. 대령으로 진급한 지 3년 만에 옷을 벗고 무작정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미국의 몇몇 은인들 덕에 미 해군대학원 교수가 되었다.
2023.05.0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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