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 족적[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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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22 23:26 조회8,3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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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 족적[4] 1~3 1. 아군에 퍼부은 포사격 포사격 과정 전쟁에서는 늘 억울한 희생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포대장을 하고 있을 때 내 나이는 19세였다. 내가 지휘했던 백마 30포병 제2포대는 여느 포대처럼 105밀리 곡사포 6문을 운영하기 위한 포대였다. 인원은 130명, 백마 포 사령부에는 966 포병 대대가 있었다. 155밀리 포를 운영하는 대대다. 이 155밀리 포 2문이 내 포대 기지에 배당되어 제2포대에는 105밀리 6문, 155밀리 2문이 함께 사격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155밀리 2개 포반은 중위가 따로 지휘했고, 105밀리 포가 사격할 때 위력을 보태는 사격 임무만 공동으로 수행했다. 하루는 포대에서 1km 앞에서부터 전개된 정글 산에서 보병 연대가 작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파견된 관측장교로부터 베트콩이 뛰어다닌다며 사격을 요청했다. 사격 요청이 있을 때는 언제나 105밀리 1개 포가 연막탄부터 쏜다. 파편이 날아가는 고폭탄을 쏠 경우, 만일 관측장교인 소위가 좌표에 착오를 일으키면 인명이 살상되기 때문이다. 첫 탄착지점은 언제나 목표로부터 이탈해 있는 지점이다. 그래서 관측장교는 자기 위치를 중심으로 ‘좌로 200 더하기 300’, 이런 식으로 포탄을 표적으로 유도한다. 지금 떨어진 지점에서 좌로 200m, 더하기 300m를 수정해야 목표에 명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몇 번을 하면 드디어 목표에 명중되는 사격제원을 얻을 수 있다. 연평도에서 북괴 간첩이 관측장교 역할 천안함 폭침 직후 연평도에 있는 155밀리 자주포에 북괴군 포가 명중될 수 있었던 것은 연평도 자주포가 잘 보이는 곳에 북괴 관측 요원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내가 시스템클럽에 ‘당국은 빨리 연평도를 포위해 관측 요원인 간첩을 잡으라’고 SOS를 쳤지만, 당국은 이를 무시했고, 여기에 착안하는 군인들도 없었다. 우리 군은 체력만 단련시키고 머리는 단련시키지 않는 것이다. 70대 노병이 금방 생각해내는 아이디어를 그 수많은 장병들은 왜 착안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일단 명중 제원이 구해지면 105밀리 6문과 155밀리 2문이 동시에 와장창하고 날아간다. 이를 ’효력사‘라 부른다. 전원 동작 그만! 이 효력사에서 이탈포가 발생해 아군 머리를 때렸다. 육사 2년 후배 중위가 눈이 왕방울만 해가지고 달려왔다. “포대장님, 우리 포가 아군을 때렸습니다. 무전기에 난리가 났습니다. 큰일입니다. 어떻게 하지요? 일단 사격을 중지시켰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높은 망루로 올라가 큰 소리로 ’전원 현 위치에서 동작 그만‘하고 외쳤다. 움직이는 장병이 일절 없었다. “정 장교, 하사관, 분대장 내 앞에 집합~” 모두가 모였다. “하사관들은 요소요소에 가서 움직이는 사람을 감시 하라. 장교들은 분대장을 이끌고 각 포의 포대경 눈금을 점검하라.” 범인이 잡혔다. 155밀리 2문 중 1문이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이는 심각한 책임 문제였다. 966대대 참모들이 조사를 나와 나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몰아갔다. 순발력이 없었다면 나는 물론 나의 대대장님까지도 문책을 당했을 것이다. 동작 그만! 나는 가끔 상상한 적이 있었다. “만일 내가 국방부 장관이 되고 군에서 사고가 난다면 곧바로 ’동작 그만‘을 명령하고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왜냐하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 부대는 사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현장 조작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대령 때만 해도 군대에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군대 행정은 가라 행정” 부하들에 포탄 쏜 포대장, 사살하러 온 보병 중대장 위 세부적인 지휘 관계를 알 리 없는 보병 중대장은 내가 장본인인 줄로만 알고 쏘아 죽이겠다고 찾아왔다. 하필이면 파편이 선임 하사와 분대장 등 지휘자들만 집중적으로 때렸다. 그러니 중대장이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훗날 그는 2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2002년 봄, 그와 나는 잠실에서 만나 소주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나누었다. 막상 와서 보니 보호 본능이 생겼다고. 전쟁에서 당한 억울한 주검, 국가가 보상하라? 만일 위 분대장들이 사망했다면, 제주도 사람들처럼 한 사람당 9천만 원씩 보상하라 할 것인가? 6·25 때에는 아군 포와 아군 전투기, 미군 전투기로부터 오폭을 당해 전사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 사람들이 제주도 사람들처럼 9천만 원씩 보상하라 주장하는가? 2. 순발력과 인생 하루는 앞에 전개된 광활한 밭에서 일하던 월남 아낙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포대로부터 40분 거리에 있는 연대 본부에 갔다가 돌아오니 포대 정문 앞에 촌장과 마을 유지들이 10명 정도 와 있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포대에서 늘 소총 사격 소리가 났는데 그 아낙이 우리 포대에서 날아간 총알을 맞아 사망했을 것이라고 항의하러 왔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것이 훗날 정치문제로 번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군의 양민 학살, 대위 지만원.” 나는 부하들에 내 지하실 포대장 방에 있는 탁자 밑에 여러 개의 녹음기를 탁자 보로 숨겨놓고 녹음 버튼을 눌러 놓으라고 지시했다. 준비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후 마을 유지들한테 갔다. 다행히 내가 소위 때 3개월 동안 월남어 교육을 받아서 월남말로 소통했다. 총소리가 늘 나던 곳은 25m 길이의 사격장이었다. 불도저로 5m 정도의 깊이로 호를 파고, 거기에서 나온 흙을 정글 산 쪽으로 올려놓고, 그 흙더미 밑에 표적지를 꽂고 엎드려서 사격하는 시스템이었다. 촌장과 유지들이 보는 앞에서 병사에게 사격을 하게 했다. 총알이 높이 쌓아 올린 작은 흙산을 타고 넘어간다는 것이 자기들 보기에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은 내 설명과 시범이 끝나자 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총소리만 가지고 의심했었는데 막상 사격장을 와 보니 총알이 높이 쌓아 올려진 흙더미를 타고 넘어갈 수 없겠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를 구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포대장 탁자 위에는 콜라, 맥주, C-레이션 과자들이 있었다. 나는 녹음을 의식해 처음부터 내가 보여준 사격장의 구조, 사격 시범 과정을 다시 설명하면서 “유지들께서는 제 설명을 들으시고, 시범을 보셨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아직도 그 총알이 우리 부대 사격장에서 날아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다시 묻고, 그들의 반응을 녹음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달 후, 내가 포 2문을 정글 산 정상에 헬기로 공수해 여러 날 동안 작전을 하고 있을 때, 포대에서 연락이 왔다. 월남 국회의원, 성장(도지사) 등 높은 사람들이 이를 정치 이슈화하기 위해 조사하러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녹음기를 틀어주라고 했다. 서슬 퍼런 자세로 왔던 정치인들이 맥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영문 모르시는 내 대대장님은 바짝 긴장했었다고 했다. 만일 이것이 문제화됐다면 나는 물론 대대장님까지도 계급을 박탈당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슬아슬했다. 3. 장교의 순발력과 병사들의 생명 내공도 없으면서 똥고집만 센 병사 킬러 지휘관 나는 주월 한국군에서 전과를 가장 많이 올렸다는 백마 사단 28연대 제3중대 관측장교를 했다. 3중대는 연대 13개 중대 중에서 기동 타격 중대로 지정되어 이웃연대 작전에까지 투입되곤 했다. 여기에 더해 나는 28연대 수색 중대에까지 나가 관측 임무를 수행했다. 1969년 베트콩의 총공세인 구정공세 때는 신임 중대장과 함께 사단사령부 지역에 출동했다. 내 뒤를 바짝 수행하던 무전병이 지고 있던 무전기 안테나가 마을에서 쏜 베트콩 총알에 날아갔고, 거기에서 10여 명의 병사를 잃었다. 새로 부임한 중대장이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내 만류를 물리치고 1개 소대를 마을로 진격시켜 그중 30%를 전사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중대장이 나중에는 2성 장군까지 올라가 전방 사단장을 하고 있었다. 돌같이 단련된 공수부대 출신 중대장 나는 수색 중대장과 함께 헬기를 타고 매우 멀리 떨어진 밀림 산속으로 정찰을 나갔다. 정찰이란 적지에 들어가 적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중대는 4개 소대, 소대는 3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60명에 해당하는 2개 소대와 중대 본부 5명이 차출되어 적지로 잠입한 것이었다. 적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헬기는 부대를 목표에서 먼 곳에 위치해 있는 야지에 내려놓았다. 갯벌로 가득한 개울을 건널 때는 검은 갯벌 흙이 목까지 올라 찼다. 총을 두 손으로 머리 위에 올리고 발을 조금씩 움직여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햇볕이 워낙 강하다 보니 전투복과 목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던 갯벌 흙이 마르기도 하고 바람에 스치기도 하면서 조금씩 날아갔다. 들판 길을 걸을 때는 기분이 좋아졌다. 중대장이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야 지 소위, 내 팔뚝 만져봐” “와~ 돌, 돌이네요.” “야, 내 대퇴부 주먹으로 때려봐.” “와~ 돌 그 자체네요.” “그렇지? 내가 공수부대 출신이거든, 이거 대관령에서 스키 타면서 길러진 근육이다. 너 좀 만져보자. 애게~ 이게 팔이냐, 이 팔을 가지고 무슨 전투를 하냐?” 월맹 정규군 보자마자 공황 상태에 빠진 중대장 드디어 깊은 밀림 산속으로 들어갔다. 능선을 탔다. 일렬로 앞 병사를 따라가는 것이 밀림 속의 기동이었다. 1996년 강릉에 북괴군 26명이 침투했을 때 대규모 부대가 투입됐다. 방송 매체들은 연일, 엄청 많은 병사가 험한 태백산을 ’저인망‘ 식으로 훑고 있다고 중계했다. 국방장관도, 합참의장도 병사들이 일렬횡대로 서서 고지를 향해 훑어 올라가고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군에서 계급 높은 사람은 현지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제멋대로 상상해서 명령을 내려 병사를 뭉텅이 단위로 죽이는 것이다. 계곡으로 행군하는 부대는 없다. 능선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타고 가는가가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 방법이다. 계곡을 타거나 산 중턱을 옆으로 가로질러 행군하는 부대는 없다. 그래서 능선은 적도 이용하고, 우리도 이용하는 것이다. 적이 나무 위에 숨어서 저격할 수도 있고, 구덩이를 파고 독침을 꽂아 위장하기도 하고, 부비트랩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능선이다. 그렇다고 해도 능선은 피할 수 없는 행군로인 것이다. 조심조심 살피며 올라가다 보니 중간 봉우리가 나타났다. 바로 이때 앞서가던 경력 병사가 눈이 왕방울만 해가지고 중대장에 보고했다. 속삭이는 보고였다. “이 웅덩이는 네이팜 탄이 떨어진 자리입니다. 발자국에 물기가 솟아 있는 거 보니까 금방 지나갔어요.” 반사적으로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위 뒤에도, 거목 뒤에도 몸을 숨기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한 병사가 기어왔다. “우리 봉우리로 연결된 저 위 봉우리에서 월맹 정규군이 오고 있어요.” 새파란 군복을 입고, 중화기들을 어깨에 메고, 목소리를 내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돌다리 대위는 즉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웅덩이에 무전기 송수화기를 들고 “연대장님, 부대가 포위됐습니다. 분명히 보고 드렸습니다.” 하더니 쐐~ 소리가 나는 무전기 송수화기를 놓아 버렸다. 송수화기는 돌돌 말린 끈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면서 쐐~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려서 나는 빨리 수화기 부분을 손바닥으로 막고, 무전병에게 막고 있으라 했다. 분노한 연대장님(대령) 목소리가 간간히 새어나왔다. 나는 얼른 내 주위에 있는 6개 지점의 좌표를 땄다. “연대장님 저 관측장교 지소위입니다. 여기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가 능선으로 연결돼 있는데, 우리 수색대는 아래의 작은 봉우리에 있습니다. 큰 봉우리에서 우리를 향해 월맹군 1개 중대정도가 중화기를 메고 우리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6개 지점의 좌표를 불러드릴테니 즉시 포 사격을 해 주시고, 곧바로 무장헬기로 위협해주십시오. 그 틈을 타서 탈출하겠습니다.”, “오 그래, 지소위 알았다.” 바위틈에 박혀 지샌 밤 금방 포탄들이 산 속을 들볶았다. 그 틈을 타 밑으로 뛰라했다. 소대장들과 병사들은 내 입만 쳐다봤다. 길이 매우 넓고 잘 닦여있었다. 갑자기 이 길로 계속 가다가는 베트콩 소굴로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마시는 맑은 샘물도 보였다. “앞으로 전달, 무조건 좌로 꺾어라.” 정글의 밤은 서서히 드리워지는 게 아니라 카메라 셔터 닫히듯 갑자기 내려앉는다. 거대한 바위 위로 병사들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잣 송이에 잣 열매가 박혀있듯이 바위 틈 여기저기 병사들이 박혀있었다. 나는 베트콩이 우리 위치를 알 수 없게 하려고, 우리가 있는 지점에서 1km정도 떨어진 곳의 좌표를 포대에 불러주고 가끔씩 포를 날려달라고 부탁했다. 155미리, 위력이 대단한 포였다. 하지만 내게는 자장가였다. 소리가 안 들리면 적막이 오고, 적막이 오면 공포에 떨기 때문이었다. 한 병사가 기어오더니 파편이 날아온다고 했다. 병사가 있던 곳으로 기어가보니, 포탄이 작열하는 섬광이 보인지 3초 만에 소리가 들렸다. 빛의 속도는 1초에 340m, 1km 밖에서 작열하는 폭탄에 심리적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훗날 같은 지역에 대위를 달고 포대장으로 부임해 나갔을 때 이 사실은 내가 베트콩을 심리적으로 제압하여 내 부대에 박격포를 쏘지 못하게 하는 데 결정적 지식으로 활용됐다. 베트콩 유인책에 걸려든 두 병사 날이 새면서 산에서 내려와 개활지(평평한 땅)에서 철수용 헬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활지 양쪽에는 능선이 하나씩 있었다. 양쪽 능선의 정점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뒤얽혀 있었다. 딱 보아도 베트콩 소굴이었다. 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2명의 병사가 실종됐다. 베트콩이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니까 두 병사가 따라갔다. 몸을 숨겼던 베트콩이 또 모습을 보였다 숨었다. 또 따라갔다. 이렇게 따라갔다가 사살당한 것이다. 헬기만 날아오면 철수하면 그만이었는데, 연대가 발칵 뒤집혔다. 두 병사의 시체를 구출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이 전개됐다. F-5 전투기로 양쪽 능선에 포탄을 퍼붓고, 포병 사격을 가했다. 적이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이에 장갑차가 접근하여 시체를 구출해냈다. 베트콩의 이런 유인 전술에 당하지 않게 하려면 중대장이 평소에 교육을 시켜야하는데, 돌다리 중대장은 그런 교육을 시킬 위인이 아니었다. 병사의 목숨은 파리 목숨 이처럼 병사들의 생명은 장교들에 달렸다. 평소에 상상력을 길러주고, 자기도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전쟁과 전투는 두뇌로 하는 것이지 근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군에는 ‘항재전장’이라는 문화가 확립돼 있어야 한다. 항상 전쟁 현장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1985년 나는 신중철에게 물었다. “북한군의 토의는 어떤 식으로 하는가?”, “이제까지 이런거 물어보는 사람 지선생밖에 없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지요. 인민군은 북쪽 능선에 있고, 남조선 괴뢰군은 남쪽능선에 있다. 그 사이에 계곡이 있고 물이 있다. 밤에 갈증을 느껴 양쪽이 다 계곡물에 접근한 것이다. 남조선 괴뢰군에게는 접근을 못하게 하고, 우리 인민군만 접근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야~, 그거 어려운 문제네요?”, “그럼요, 병사들한테서 기발한 아이디어 많이 나옵니다. 북조선에서는 김일성 가문에 대한 것만 금기시되고, 그 외는 모두 터놓고 말합니다. 소위도 사단장 공격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항재전장 문화이고 병영 토의 문화인 것이다. 우리 군은 체력만 단련하는 훈련만 하지, 이런 순발력 있는 꾀를 길러주는 두뇌훈련은 전혀 시키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만일 내가 국방장관을 한다면 이런 군사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적이 있었다. 이국종교수의 [골든아워]를 읽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사는 얼마나 많은 수련을 쌓아야하는 것인지, 여러 의사가 달려들어 한 생명을 구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소위, 대위가 남의 귀한 집 자식들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가? 최근 정부가 병장 봉급을 200만원 선으로 올린다고 한다. 소위-중위와 비슷한 액수다. 병사들이 소위-중위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소위-중위들은 병사들에 얼마나 쪽팔려하겠는가? 명령을 내리기도 불편하고, 명령을 우습게 여기기도 할 것이다. ‘상경하애’를 기본 기율로 하는 병영문화가 박살이 날 것이다. 이게 무슨 군대인가? 최신 장비만 미국에서 구입하면, 군사력이 강해지는 것인가? 이런 군대에서 누가 하사관이 되고 장교가 되고 싶어 하겠는가? 허리가 두 동강 난 군대가 지금의 한국군인 것이다. 2023.5.17. 지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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