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187)] 5.18현장 지휘반장 간첩 손성모와 5.18 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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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1-12 00:34 조회9,4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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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메시지(187)] 5.18현장 지휘반장 간첩 손성모와 5.18 조사위
5.18 조사위의 엉터리 발표
2003.11.1. 광주드림 보도에 의하면 5.18조사위는 간첩 손성모가 5.18기간 중 무등산 증심사에 머문 것이 아니라 전북 남원 서진암에 머물렀다가 1981년 2월 15일 경북 문경 해국사에서 검거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손성모와 5.18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탈북 작가 이주성이 [보랏빛 호수]를 통해, 손성모가 무등산 증심사에서 지휘했다는 주장을 해서 논란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결론적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코미디가 아니할 수 없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간첩 손성모가 5.18의 ‘현장 반장’이었다는 증거 3개
(1) 5.18 현장 사진에서 손성모가 현장 반장 행세를 하는 모습들이 있다. 노숙자 담요가 들춰낸 것만 해도 5개의 씬(장면)이다.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들을 정리하여 사용가능 상태로 준비하는 모습에도 현장 반장 자격으로 나타나있고, 관을 나열해놓고 시체장사 행사를 하는 현장에도 반장 자격으로 나타나있다.
(2) 2021.4.30. 탈북자 제 1호 박사인 안찬일이 ‘안찬일 TV’에서 밝힌 내용이 있다.
①. 손성모는 증심사에서 비전향 장기수 류낙진의 딸 류소영과 함께 5.18 작전을 위한 공작을 했다.
②. 5.18 현장을 사실상 손성모가 지휘했다.
③. 그 결과 그는 김대중에 의해 석방되어 북송되었고, 북에서는 5.18 현장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영웅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 최고의 훈장인 ‘공화국 영웅 훈장’과 ‘1급 국기 훈장’을 받았다. 이런 훈장은 김정일이 직접 주는 훈장이다,
(3) 손성모가 류낙진의 딸 류소영과 증심사에서 함께 활동한 기록이 ‘5.18 기념재단’ 기록에 여러 개 노출돼 있다.
간첩 이창용에 대한 코미디 결정
11월 1일자 광주드림은 5.18 조사위가 권총, 달러, 독침, 난수표 등을 소지하고 광주에서 서울로 가던 간첩 이창용에 대해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는 1. 이창용이 간첩망 복구와 지하당 구축 임무를 띠고 왔기 때문에 5.18과 무관하다는 것이고 2. 이창용이 붙잡혔던 5.23.에 자살을 시도하여 혼절상태에 있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었는데도 계엄 당국이 서둘러 5.24.에 허위조작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1980년 6월 광주인들로 구성된 ‘합동검안위원회’에서 카빈총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확인한 사람을 1995년과 2023년에 M16 총상으로 사망한 사람이라고 수정 발표한 행태와 그 패턴이 정확히 일치한다. 간첩 지하망 구축하러 온 간첩이 왜 하필 5.23.에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가? 5월 23일 이전까지는 광주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광주에서 하필이면 가열된 폭동기간에 지하망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진상위 사람들, 고등학교 교육이라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인지 허탈감마저 든다. 그의 소지품 중에는 [환각제]가 있었다고 한다. 폭도에 매맞아 죽은 병사의 주머니에 넣어놓고 환각제에 대한 유언비어를 사실로 증명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결론
이창용이 광주 사태와 무관하다고 결론 내린 최초의 ‘우려먹기’ 위원회는 노무현 시절인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국방부에 설치된 ‘과거사 진상위’였다. 김대중과 함께 혁명내각을 구성했던 목포 목사 이해동이 지휘했다. 지금의 5.18조사위는 그 때의 결론을 인용하여 재탕하고 있는 것이다. 손성모가 폭동기간 중 광주에도 없었고 증심사에도 없었다는 주장은 그냥 주장일 뿐이지 3가지 부인할 수 없는 빼박 증거들과 완전 배치된다. 5.18 조사위가 코너에 몰려,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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