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203)] 한강은 전두환 작품, 한강변에 전두환 세우자. 전세운(전두환 세우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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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05 12:53 조회19,1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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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메시지(203)] 한강은 전두환 작품, 한강변에 전두환 세우자. 전세운(전두환 세우기 운동)
한강은 대한민국 랜드마크, 전두환 작품
전두환 이전에 한강은 똥물이었다. 가을이면 똥냄새 진동하고, 홍수가 나면 논밭을 쓸어가는 일종의 애물이었다. 이런 문제의 강을 오늘의 아름다운 예술로 탄생시킨 인물이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 사실을 아는 국민 몇 명이나 될까? 1981년 2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과 60분간 회담을 했다. IMF 직전의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자 달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미국에 구걸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는 구걸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떳떳하게 달러를 얻는 길을 모색했다. 레이건 대통령에게 일본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캘리포니아 GNP는 800억 달러, 한국의 GNP는 600억 달러, 일본의 GNP는 1조 1,900억 달러, 한국 GNP의 20배인데, 한국은 매년 GNP의 6%를 떼어내 자유 진영의 안보를 최 일선에서 지키고 있지만 일본은 겨우 0.09%만 방위비로 쓰고 있다고 호소했다. 일본 돈을 주면 그것으로 미국의 전투기와 탱크를 사겠다고 제안했다.
1981년 4월, 그는 일본에 100억 달러의 차관을 요청했다. 스즈키 내각은 “별 미친놈 다 보겠다.”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수장이 된 나카소네가 1983년 1월 한국을 방문해 40억 달러를 주었다. 그중 10억 달러를 털어 오늘의 한강을 건설했다. 인터넷에서 ‘한강 개발 사업’을 검색해 보라. 누가, 무슨 돈으로 개발했는지 내용이 뜰 것이다.
한강 변에는 아름 도로가 양옆으로 깔려 있다. 엄청난 돈이다. 지하에는 덤프트럭 두 대가 다닐 수 있는 대형 터널이 54.6km에 걸쳐 묻혀 있고, 그 터널을 통해 오·폐수를 날라다 정화시키고 있다. 정화 시설은 중랑, 탄천, 안양, 난지에 건설돼 있다. 한강변에 조성된 고수부지는 210만 평, 그 고수부지 옆에는 방대한 올림픽 콤플렉스가 형성돼 있다. 일본으로부터 방위세를 물리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에서 가장 두뇌가 명석한 사람들을 참모와 장관으로 발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일본이 방위성금을 내주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우리 대통령이 또라이로 낙인찍히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만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두환은 역시 인물이 다른 사람이었다.
한강 고수부지에 전두환 기념관 짓자
우리가 건물을 지을 때는 건물에 시공사 명을 새겨놓는다. 그런데 저렇게 아름답고 거대한 한강을 맨주먹으로 건설한 영웅의 이름은 왜 기록해 놓지 않았는가? ‘평화의 댐’, 그것도 전두환의 작품이다. 전두환은 '평화의 댐'을 건설한 사실에 대해 희대의 ‘안보 사기꾼’으로 몰려 몰매를 두고두고 맞았다. 그런데 2002년 오마이뉴스, 조선일보 등이 나서서 '평화의 댐'은 '애국 댐'이라고 새롭게 평가했다. 그러자 '평화의 댐'에는 김대중의 이름과 조형물만 거대하게 들어서 있고, 전두환의 이름은 어느 구석에도 없다.
'평화의 댐'에는 전두환의 동상과 이름이 높이 서야 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한강 고수부지에 전두환 기념관이 동상과 함께 지어져야 한다. 이는 국민의 의무가 아닐 수 없다.
경제 건설의 영웅. 전두환, 박정희와 동급
많은 국민이 인정하는 말이 하나 있다. “전두환 때가 가장 살기 좋았어. 경제 하나는 참 잘했어!” 경제도 건설이고, 건설에는 건설자의 이름이 있어야 한다. 많은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영웅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국민은 지식을 업그레이드 시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박정희 경제가 없었으면 전두환 경제도 없었고, 전두환 경제가 없었으면 박정희 경제도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 공업으로 경제를 부흥시켰고, 1980년이 되면서부터 그 중화학 공업만으로는 한국 경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전자 산업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초에 IMF를 맞고 쓰러졌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 3고 시대를 맞아 한국 경제는 사망 직전에 있었다. 물가고, 유가고, 달러고 시대였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특히 한국의 도매 물가 상승률은 54.2%, 하루를 자고 나면 물가가 올랐다. 봉급은 5% 오르는데 물가가 10배 이상 올라가니 국민이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재기가 극성이었다. 부자는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사재기를 했다. 저축률이 제로였다. 저축이 없으니 기업은 외채를 빌려 투자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마다 중공업 설비에 경쟁적으로 투자하였기 때문에 공장 가동률이 10%~20% 대로 떨어졌다. 해외 빚을 내서 이자를 갚았다. 이것이 축적되니 갚을 능력이 고갈됐다. 당시 시중에는 IMF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때에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떠밀려 추대된 것이다.
주사파가 전두환을 증오하는 이유
가장 다행인 것은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일 때인 1979년,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해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일반 경제학자들도 상상할 수 없었던 과감한 정책을 세워 5년 만에 54.2%의 물가를 2.3%로 잡고, 저축률을 GNP의 32%로 올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절대적인 먹거리 사업을 육성시켜 연평균 13%의 기적적이고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경제 성장을 이끌어 10대 경제 대국으로 진입시켰다.
이 과정에 질투가 난 김일성은 암살, 방해 등 13회에 걸쳐 결투를 걸었지만 13회 모두 KO패를 당했다. 스스로 신의 행세를 했던 김일성에게는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장장 7년에 걸친 연속적인 치욕이었다. 그러니 남한에서 오로지 김일성의 승리만을 학수고대 해온 전라도 5.18 빨갱이들이 얼마나 전두환을 증오했겠는가? 선전전, 심리전의 위력을 알고 있는 스탈린과 김일성은 해방 직후부터 역사, 문화, 언론에 간첩을 투입해 역사, 문화, 언론을 장악해 왔다 이들이 연합하여 전두환을 깡패급 독재자로 세뇌시켜온 것이다.
지금 전두환을 악마의 희극적 인물로 격하시킨 영화 ‘서울의 봄’이 인기를 받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10.26과 12.12, 5.17, 5.18을 수사 기록으로 쓴 사람은 필자 한 사람뿐이다. 이에 대한 수사/재판 자료가 공개된 시점은 2005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검찰청 지하 창고에 숨겨져 있었다. 법원이 역사 연구를 위해 자료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2005년에 내렸어도, 18만 쪽을 다 복사하려면 1~2억이 소요되었기 때문인지 아무도 수사 기록을 복사해간 사람이 없다. 모두가 가짜로 만들어진 영화인 것이다.
결론
저들이야 어떻든 양식 있는 국민은 전두환대통령을 널리 알리고 '전두환 대통령 세우기' 국민운동을 열심히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뜻이 있는 분들은 자기 공간에서 동참하는 이웃들을 모집해 사단을 결성해 주시기를 바란다. 차차 여러 개의 사단이 구성되면 이들을 통합하는 연방 본부를 만들면 된다. 마치 초기의 미국이 13개 지방 정부가 연맹하여 연맹 정부를 만들어 냈듯이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르게 쓰는 파이어니어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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