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211)] 허겸기자: 5.21 학살 주범은 무장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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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22 23:45 조회12,9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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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메시지(211)] 허겸기자: 5.21 학살 주범은 무장괴한
주사파가 선동 선전한 도청앞 집단발포 내용
영화 [화려한 휴가]는 도청앞에 포진한 공수부대가 21일 오후1시, 애국가를 부르고 난 시민군을 향해 계엄군이 사격명령에 의해 일제 사격을 가함으로써 2,000~3,000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도 스토리가 비슷하다. 집단 사격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는 것이 주사파들의 끈질긴 주장이다.
2,000~3,000명이 사살됐다는 주장의 진원지는 북한 책과 북한 영화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통일부가 나서서 대북전단 금지법을 만들 듯이, 한국사회에 유행하는 유언비어는 대부분 북한이 제조했다. 여성의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냈고, 임산부에서 태아를 꺼내 임산부 얼굴에 던졌다는 등의 유언비어는 황해도 신천박물관에 전시된 모략용 그림을 번역 서술한 것이고, 공수대원에 환각제를 먹였다는 유언비어는 1991년 개봉된 북한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테마 괴담이다.
그럼 2,000~3,000명의 학살설은 어디에 기원했는가? 1982년 북한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특징] 제 591쪽 내용과 1980년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광주현장을 촬영하여 제작한 북한의 다큐멘터리 기록영화 [광주 비디오]에서 유래한다.
“광주에서 희생된 수는 5천여 명에 달하는데 총기류에 의해 사망한 수는 2,600여 명, 장갑차 등에 깔려죽은 수는 150여 명, 생매장 당한 수는 1,700여 명, 화장당한 수는 920여 명, 대검에 찔리고 총탁(개머리의 북한말)에 맞아죽은 수는 330여 명이며 중경상자는 1만4천여 명이나 된다. 광주에서만 아니라 항쟁에 나섰던 목포, 화순, 라주, 려수, 순천, 장성 등에서도 참혹한 살육만행이 벌어져 1,700여 명이나 살생되었다.”
주사파와 전라도는 한국 검찰보고서는 믿지 않고, 북한이 제공해 준 괴담만 사실이라고 주장해왔다.
주사파와 전라도가 신봉하는 괴담의 진원지, ‘찢어진 깃폭’
북한잡지 [조선녀성 1990년 제3호]에는 ‘광주는 잊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내용을 보면 당시 전라도는 물론 한국사회에 널리 유포된 괴담(유언비어)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0.6.5. 일본에서는 ‘천주교정의평화협의회’이름으로 기자회견이 열렸고, 거기에서는 [찢어진 깃폭, 어느 한 목격자의 진술]이라는 모략책자가 배부됐다. 그 일부가 ‘조선녀성’에 소개된 것이다.
“…심지어 파쇼 살인마들은 환각제를 먹인 공수특전대 놈들을 분기진압에 내몰면서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이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살인명령을 내리었으며 신경가스탄을 비롯한 유독성 화학무기까지 사용하여 봉기군중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다 못해 녀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어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꺼내어 참살하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광주의 거리거리에는 항쟁용사들의 붉은 피가 랑자하였다. 여기에 한 해외동포가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하여 광주에 갔다가 인간 백정들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만행을 목격하고 쓴 수기의 일부가 있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살인행위였다. 여자 대학생으로 짐작되는 세명의 처녀들이 공수병에 의하여 옷을 벗기우고 있었다. 속옷까지 모조리 찢어낸 다음 험악하게 생긴 공수병이 처녀들의 앞가슴을 걷어차면서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처녀들은 하나와 같이 가슴을 감싸고 길바닥에 꺼꾸러졌다. 순간 처녀들의 등에는 대검이 똑같이 박아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뿜었다. 역전광장 앞에서도 조선대학교의 6명의 여자대학생들과 3명의 녀공들을 창고에 가두고 발가벗겨 희롱하다가 나중에는 광장에 끌어내여 분수대에 매달고 유방을 도려내어 전선대에 묶어놓고 칼로 가슴과 배를 찌르던 나머지 사지를 찢어 죽였다. 두명의 공수병이 만삭이 가까운 임산부를 끌어다놓고 <야 이년아, 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뭐냐?>하고 묻자 임산부는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 공수병이 <머슴아는 모조리 죽이라는 것이 전두환 총장의 분부다>하고 소리치면서 <새끼주머니에 든 것이 머슴앤가 계집앤가>고 다그쳐 물었다. 이에 옆에있던 다른 공수병이 <내가 알려주지>라고 하면서 녀인이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나꿔채자 원피스가죽 찢어지고 속살이 드러났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다시 그녀인지 아랫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 내여 아직도 할딱거리며 마지막으로 숨져가는 녀인에게 던졌다…”(39쪽3단 중 하단)>>
(주: 한사람의 목격자가 여러 곳을 다니며 보았다는 것 자체가 꾸민 이야기 냄새가 남)
1982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590쪽
“악귀같은 교형리들은 녀학생들을 그들의 부모가 보는 가운데 발가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낸다음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 무차별 학살의 잔학성은 어린이나 늙은이, 임산부들에 대한 만행에서 더욱 몸서리치게 드러났는데 놈들은 광주천 기슭에 쓰러진 어머니의 시체를 붙잡고 우는 4살짜리 어린애에게도 달려들어 <폭도의 종자를 멸종시키라>고 하면서 총검으로 참살하고 살인만행에 항거하였다하여 70대의 할아버지도 하수구에 밀어넣고 죽였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창자가 튀어나온 배에서 태아를 꺼내 던지는 귀축같은 만행도 서슴치 않았다.”
1995년 검찰이 사망원인자료 조작
5.18사태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54명, 이태원 참사 159명보다 5명이 적다. 김영삼 시절에 발생한 끔찍한 사고규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적은 수의 규모를 가지고 5.18을 세계적인 민주화운동이라 외치자니 뒤로는 쪽이 많이 팔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실종자가 많다느니 암매장 규모가 크다느니 너스레를 떨면서 이를 규명한다며 국민세금을 계속 축내고 있다. 실종자 가족은 겨우 82명이다. 그런데 무슨 암매장 규모가 2,000명이라는 말인가? 암매장 장소가 있다면서 지금까지 동원된 굴착기가 얼마이며 거기 매달려 국가예산 털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1995년 7월18일, 검찰은 전두환에 죄를 주기 위해 카빈총에 맞아죽은 사람을 M16에 맞아죽은 사람으로 통계를 조작했다. 1980년 당시 계엄사는 광주의 모든 분야 대표자들로 합동조사반을 꾸려 각 사망자의 사인을 공개적으로 규명했다. 총상사망자 116명 중 75%에 해당하는 85명이 카빈총 등 무기고에서 폭도가 탈취한 무기들에 의해 사망했다. 그런데 1995년 검찰은 이 통계를 거꾸로 뒤집어 대부분의 사망자가 계엄군이 소지한 M16소총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조작했다.
스카이데일리 허겸기자가 발표한 진실. 도청 앞 학살은 무장괴한집단에 의한 학살
스카이데일리 허겸기자는 지난 11월2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8진상규명세미나에서 매우 귀중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는 한국 최고수준의 법의학박사가 지난 3년동안 끈질기게 연구한 내용이다. 1995년의 [광주사태 관련 수사결과]에는 1980년 5월21일, 24시간 동안에 사망한 광주인은 모두 61명인 것으로 명기돼있었다.
그런데 이 연구는 61명이 아니라 62명이었고, 이 중에서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놀랍게도 제로라는 결론을 냈다. 당시 M16소총은 시위대에도 최소한 4정이 있었고, 이는 사진으로도 확인된다. 5월21일 새벽 8시, 광주톨게이트 부근 ‘군분교’라는 개천교량에서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를 300명의 어깨들이 습격해서 빼앗은 것만 해도 4정이었다. M16소총은 무서운 총이다. 총을 맞으면 맹관이라는 게 없다. 맹관은 총알이 몸을 다 뚫고 나가지 못해 몸속에 박혀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M16소총알은 관통력이 매우 강해서, 들어간 자국(삽입부)은 볼펜 점처럼 작지만 몸을 훑고 나간 출구는 매우 넓다. 회전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총알을 맞으면 손상당한 부위가 여러 부위다.
익명의 최고 법의학자는 모든 사망자의 검시자료를 정밀분석하고, 각 사망자의 사망순간을 목격한 수백명 증언자들의 증언록을 3년에 걸쳐 분석했다.
금남로 옥상을 미리 점령한 무시무시한 무장괴한부대
금남로 옥상에서 사진을 촬영하려던 국내외 기자들이 모두 무장괴한들의 서슬퍼런 위세에 눌려 도망을 해서 도청 귓골목 동자여관으로 피신했다. 건물관리인은 무서워서 떨었다. 옥상에 올라간 무지막지한 손을 가진 어깨들은 심지어 무거운 총류탄 발사기가 결합된 M16유탄발사기까지 거뜬히 한손으로 파지하고 있었다. 이 모습들은 사진들에 나타나있다.
괴한 측 전투지휘자는 도청앞에 줄을 지어 정열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장갑차를 세 차례씩이나 지그재그 궤적으로 쏜살같이 돌진시켜 계엄군 지대장들만 가지고 있는 총알 일부를 발사케했다. 지대장은 40명정도를 지휘하는 초급 지휘관이다. 이렇게 총소리를 유발해놓고, 그 총소리에 숨어 금남로 옥상을 점령한 무장괴한 부대로 하여금 대량학살을 자행케 했다.
전남도청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동그란 분수대가 있다. 전남도청 정문과 분수대 중앙을 향해 직선을 긋고, 직선거리 200여미터 지점에서 10시 방향으로 선을 그으면 그 선이 금남로 6차선의 중앙선이다. 이 금남로 6차선 양쪽에 높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빌딩숲을 이루고 있다. 금남로에서 죽은 사람을 계엄군이 조준하려면 시선이 200미터 나아가서 10시 방향으로 꺾여야한다. 프리즘이 아니면 시선도 총알도 뻐드러진 ㄱ자 선을 따라 진행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날의 사망자 대부분이 금남로에 치중돼 있다. 빌딩숲을 수십개 지나 위치해 있는 광주여고 등 먼 공간들에서도 시신들이 발견됐다. 21일의 총 사망자 62명 중 9명은 계엄군과는 무관한 곳들에서 차량사고로, 또는 타박상으로 죽었다. 나머지 53개의 총알 진행방향을 분석한 결과, 하향사격에 의한 사망자가 18명, 등 뒤에서 맞은 사람 13명, 측면으로 맞은 사람 8명, 정면으로 맞은 사람 9명이었다. 그런데 정면으로 가격당한 9명 모두가 금남로에서 사망했다.
도청 앞 사망자라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①사망장소가 도청앞이라야 한다.
②피격시간이 동일해야한다. 일제사격이니까.
③정면이 손상되어야 한다.
④모두 M16 소총알을 맞았어야 한다.
⑤증언자가 있어야하는데 증언자가 전혀 없다. 금남로 사망자들에 대한 증언자는 매우 많다.
⑥손상부위가 여러곳이어야 한다. M16 소총알은 뚫고 나가니까. 그런데 위 6개 항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망자가 전혀 없는 것이다.
결론
1. 5월21일 계엄군에 의한 사망자는 그날의 총 사망자 62명 중 단 1명도 없다.
2. 북괴 게릴라군의 전술이 뛰어났다. 건물들이 많은 곳에서는 다중의 에코현상 때문에 총성의 발원지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도청앞에서 계엄군으로 하여금 돌진해오는 장갑차를 향해 사격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해놓고, 실제 대량학살은 옥상을 미리 점령한 무장괴한들로 하여금 자행하도록 정밀한 속임수를 사용했다. 그리고 도청 앞 총소리에 대량학살을 뒤집어씌웠다.
3. 도청앞 학살이 없었으니, 전두환의 발포명령도 없었다.
4. 주사파와 전라도의 만행에 분노한다.
5. 나라를 지켜주는 국군을 학살자로 모략하는 집단은 국민이 아니라 적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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