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 313] 5.18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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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12 21:33 조회6,3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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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 313]
5.18 플랫폼
반 5.18 여론 확산에 감사
"5.18을 북한이 했다는 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라요." 최근에 5.18의 진실을 터득한 분들의 말이다. 이는 5.18의 진실이 점점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1999년 말, 김대중과 김경재 두 사람만 5.18이 북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극비에 부쳤다. 그 이전 1997년 2월, 김영삼과 권영해가 똑같은 사실을 알았지만, 이 두 사람 역시 이를 극비에 부쳤다. 그런데 자연인인 저자가 2002년에 "5.18은 북의 소행"이라는 광고문을 냈으니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그래서 곧장 광주로 잡혀갔고, 잡혀가는 동안 온갖 수모를 당하고 물리적 린치를 당했다. 마치 가녀린 규수가 인신매매단에 잡혀 머나먼 무인도에 또아리를 튼 소굴로 잡혀가는 심정이었다. 이때 내 편은 없었다. 군사평론가와 시스템 전도사로 방송 많이 타고 신문칼럼 많이 써서 '장안의 지가를 높였다는 샛별'이 하루아침에 또라이가 됐다. 그래도 극소수의 의인들이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군이 매우 많다. 언론들이 무섭게 외면하고 있지만 입소문들이 무서웠고 학습의 습관을 가진 의인들이 열심히 이웃을 계몽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운명은 학습하는 의인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학습의 플랫폼 [다큐소설 전두환]
김대중의 심복 자격으로 평양에 갔던 김경재, 그는 수재이고 말을 조리 있게 청산유수로 잘한다는 트레이드마크가 달려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북괴 대남사업부 고위간부가 ‘광주에서 전사한 인민군 애국 열사묘’를 보여주면서, "5.18은 우리 북조선이 한 겁네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었다.
김경재는 당 고위 간부의 이 말이 평소의 상식에 너무 벗어난 이야기였기에 믿으려 하지 않았다. "왜 우리 말을 못 믿느냐"며 화를 냈지만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김경재가 돌아와 김대중에게 그 말을 전했다. "노동당 고위 간부가 5.18을 북이 한 거라며 광주에 와서 전사한 인민군 애국 열사묘를 보여주었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민군 열사묘를 직접 목격한 김경재는 5.18이 북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지만, 김대중은 그런 김경재의 말만 듣고도 호랑이 만난 사냥개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바지에 오줌을 흥건히 쌌다. 김경재에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이 돼있지 않아서 첨 듣고 첨 보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김대중은 사실을 첨부터 끝까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줌을 싼 것이다. 김대중은 전국 학생 시위를 주도했고, 북의 남침 의도를 알면서 이와 연결시키기 위해 5월 24일 남침의 마중물인 전국폭동을 계획했고, 이를 노골적으로 정부에 최후통첩, 선전포고까지 했기 때문이다. 단지 김대중이 오줌을 싼 것은 ‘5.18이 북의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김정일이 막대한 달러를 요구한다는 협박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각자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김경재와 권영해가 만일 5.18은 북괴군이 한국에 와서 저지르고 도망갔다' 까지만 증언을 했을 때 이를 사실로 믿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로 믿을 것이다. 왜? 두 거물들이 증언한 것이고, 특히 전 안기부장의 말이라 사실로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경재와 권영해는 한 발 더 나갔다. "5.18은 북한의 작품이었다. 북한이 적화통일시키려고 광주에 인민군을 많이 보내 그중 490명이 죽었고, 북한은 이 490명을 애국열사로 높이 모시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금방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뭐야? 얼마나 많이 몰래 왔기에 그중 490명씩이나 죽어?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하다가 490명씩이나 죽었대?" 시쳇말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말이다. 소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발언은 저자에게 즉시 반사적으로 흡수됐다. 저자는 5.18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소화력은 플랫폼 지식의 함수
북한은 해마다 28개 도시 전역에서 5.18 추모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한다. 거기에서는 북한 아리랑과 같은 [무등산의 진달래]를 부른다. 그 가사에는 북한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광주에 가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노래 가사와 490명은 일치한다. 여기에 북한이 제작한 1980년의 기록영화와 1980~85년 사이에 북이 발간한 3개의 문헌들에는 475명이 하룻밤에 죽었고, 그 시체가 도청에 있었다며 분노하는 내용들이 있다. 475명은 광주에서 죽었고, 나머지 15명은 부상 상태에서 북으로 철수해 한 명씩 죽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저변 지식(플랫폼 지식)이 없으면 권영해가 말하는 490명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교도소 공격이 있던 5월 21일 밤, 계엄군이 사용한 실탄 수가 48만 5천여 발이었다는 사실, 미국 헤리티지 보고서가 밝힌 ’교도소 공격 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야 "아하~ 교도소 공격에서 다 죽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저변을 이루는 플랫폼 지식이 있어야 김경재와 권영해의 증언이 비로소 전달력을 갖게 되고, 소화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토양이 있어야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나듯이, 토양이 구축돼 있어야 한 편의 논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5.18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동안 발생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 5.18을 이해하려면 그 모양을 이루는 10.26과 12.12와 5.17을 이해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 네 개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게 수사기록을 가지고 쓴 책은 [다큐소설 전두환]뿐이다. 비록 소설이라 장르를 정했지만 그것도 딱딱할 수 있는 사실을 스토리텔링식으로 풀어서 이해하기 쉽게 썼기 때문에 정해진 장르다. 역사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단문으로 묘사한 책이다.
인격에도 지식에도 기본이라는 게 존재한다. 저자는 5.18 역사책을 22년 동안 16권을 썼다. 이 모두를 수집하고, 가보로 보존하는 분들도 꽤 계시다. [다큐소설 전두환]은 이 모든 것의 공통분모를 엑기스로 뽑아 저자의 능력 범위에서는 가장 정성스럽게 현대인과 후대인들에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옥에서 꾹꾹 눌러야 글자가 되는 질 낮은 볼펜으로 한 땀 한 땀 뜨개질해 내놓은 책이다. 글의 내용은 지금 생각해 낸 내용만이 아니라 22년 동안 쌓아 모은 내용들이다. 이 기본 플랫폼조차 외면하고, 5.18을 학습한다는 것은 자기 도그마다.
5.18의 마침표, 책 하나 더 낼 것
[다큐소설 전두환]은 5.18 역사 지식의 플랫폼이다. 이 책과 최근의 두 인물 김경재와 권영해의 증언은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이 두 거목들의 증언은 플랫폼 지식이 없으면 소화될 수 없다.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학습한 내용은 '음미'(Appreciation)의 과정을 거쳐야 뇌에서 체질로 침투한다. 진정한 학습은 머리를 소화시키는 과정이고, 다시 머리에서 체질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머리에서 체질로 흡수시키는 과정이 학문의 명상, 음미(appreciation)인 것이다. [다큐소설 여로]의 27쪽에는 필자가 육사에서 실행한 독서 방법이 기술돼있다. "매 10페이지를 읽으면 책을 덮고, 이 10페이지에서 저자가 내게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에 대해 상상을 했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그 10쪽을 다시 훑어본 후 내용과 느낀 점을 메모했다. 나의 글쓰기 능력은 그리고 요약 능력은 바로 이 과정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그러니 책 한 권을 읽는데 얼마나 시간이 많이 갔겠는가? 학습은 고래처럼 물고기군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개미처럼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다. 최근 독서론자들이 이와 같은 독서이론을 새로 내놓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도 책 속에 있고, 가장 훌륭한 교사도 책 속에 있다. 계몽하려면 학습을 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전달력을 향상시켜야 계몽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전달력은 음미의 함수다. 나를 앞세우면 전달력은 죽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부터 내세우려 한다. 저자는 모든 계몽인들이 괴력에 해당하는 전달력을 배양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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