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출간 예정입니다[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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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6-01-07 21:30 조회4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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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출간 예정입니다 [234쪽]
234쪽 컬러 16,000원
프롤로그
양병 지휘관, 용병 지휘관
군 지휘관은 양병지휘관과 용병지휘관으로 양분돼 있
습니다. 각군 참모총장은 양병지휘관이고, 합참의장
은 용병지휘관입니다. 정호용은 공수부대를 먹이고
훈련시킨 양병지휘관이었고,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정
호용이 양병한 10개 공수대대를 폭동 진압작전에 사
용한 용병지휘관이었습니다. 5·18 진압작전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진종채 2군사령관-소준열 전투교육사령
관-정웅 31향토사단장으로 이어지는 작전지휘 선상
에서 이루어졌고, 공수부대 10개 대대를 직접 지휘한
사람은 광주 향토사단장인 정웅 소장이었습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정호용이 양병한 수십 개의 공수
대대 중 10개 대대만 차출하여 광주지역 작전을 관장
하는 제31향토사단장인 정웅 소장에 작전지휘를 맡
겼습니다. 10개 공수대대를 5·18 진압작전에 직접 활
용한 용병지휘관은 제31사단장 정웅 소장이었습니
다. 그래서 정호용은 광주 진압작전에 개입할 처지가
아니었고, 전두환 역시 아래와 같은 이유로 5·18 진
압작전에 개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전두환의 좌표
5·18 발생 직전,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겨우 2성 장군
으로 보안사령관이었고, 검찰총장까지도 지휘하는 합
동수사 본부장이었으며 여기에 더해 중앙정보부까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정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죄인-집단으로 낙인찍혀 식물 조직으로 방치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은 이 아까
운 조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두환을 부장서리에
임명하였습니다. 빨갱이 세력은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과 합동수사본부장과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혼자 지휘
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겁을 먹고 당시의 시국을 [안
개 정국]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전두환은 북
한정보, 국내폭동정보, 간첩정보를 관장하고 경찰과
검찰을 지휘하는 수사 업무를 총괄 관장하는, 이 세
상에서 가장 바쁜 공직자였습니다. 얼마나 바쁜 사
람이었는가를 조금만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호랑이와 사자의 혈투
전방 사단장 임기는 통상 2년이지만, 전두환은 제1
사단장을 14개월 수행한 시점에서 1979년 3월에 갑
자기 보안사령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보안사령관이
된지 불과 7개월 만에 10.26 사태를 맞게 되었습니
다. 10월 26일 밤, 전두환이 김재규를 전격 체포한
것은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를 체포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세상은 김재규와 정승화가 지배했을 것입니다.
당시 김재규와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한편이 되어
주위에 위압감과 공포감을 발산하면서 그들이 지배
하는 세상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전
두환 소장이 10월 26일 밤중에 김재규를 전격 체포
하여 김재규-정승화의 내란 음모를 차단시켰습니다.
당시 김재규와 정승화가 거느리던 군벌의 위력은 대
단했습니다. 이들과 암투를 벌이는 것은 죽음을 각
오한 결기였습니다. 10.26으로부터 12.12까지 46일
동안 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승화와 그의 야욕을 가로
막아선 전두환 사이에 무서운 암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라고 생각한 12월 12일에 하늘
을 찌른다는 권세를 가진 정승화를 전격 체포하였습
니다. 한남동 공관에서 총격전이 발생했고, 전방부대
와 전차대대들이 서울로 출동하였습니다. 김재규-정
승화가 이끄는 군벌과 젊은 장교들이 이끄는 부대
사이에 내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12.12였습
니다.
2026.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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