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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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글말 작성일23-12-11 00:32 조회5,086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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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민진사 지령 5호 ☆
方山 이희영
조갑제,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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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랏빛 호수'가 518을 한창 물들일 즈음 조갑제는 그때 광주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며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북한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의 지론인즉 600명이나 되는 그 많은 사람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어떻게 북한에서 광주까지 내려와 518시위를 주도했다는 건가였다. 팬앤드마이크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정규제와 같은 논리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600명이나 되는 북한군이 한꺼번에 온 게 아니라 10여 명, 또는 7~8명씩 잠수정을 타고 순차적으로 왔다. 이런 말은 이미 대기자로서 명성이 굳어진 그의 아성을 허무는 데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예 귀를 닫아버렸다. 부산 국제신문을 먹여 살리는 대기자라는 훈장을 단 그는 취재기자로서가 아니라 휴가를 내서 광주로 올 정도의 끈질긴 근성으로 현장을 보았다는 자신의 시각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부터 조갑제는 내가 쓴 글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기무사령관 이재수가 택한 극단적 선택을 안타까워하며 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마지막 수첩'이라고 쓴 글을 그는 유족에게 확인하였다며 가짜뉴스라고 나를 내몰았고, 보수우파를 지지한 연예인이 희귀할 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탤런트를 내세워 우파에게도 이런 연예인이 있다는 글을 썼는데 조갑제는 그 탤런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에게 항의하게 했다. 거기에 2020년 415선거를 계기로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수많은 부정의 흔적과 동전의 같은 면이 나올 수 있는 몇 천만분지 일의 확률이 415 부정선거라는 통계학자들의 주장도 조갑제를 꺾지 못했다. 정규제라는 일란성쌍둥이가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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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
70년대 조갑제는 박정희를 반대하는 기자였음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후 어느날 부터 조갑제는 박정희 책을 쓰고 박정희를 찬양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조갑제의 이념이 옳은길로 돌아왔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후에도 조갑제를 부정하는 의견에는 반신 반의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 없이 5.18 역사를 뒤집은 김영삼과 이준석을 옹호하는 발언에서 조갑제의 정체는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조갑제씨 이러시면 안됩니다. 귀하의 스탠스는 무엇입니까 ?
김영삼이나 이준석이 거론할 가치가 있는 인격입니까 ?
한국롬멜님의 댓글
한국롬멜 작성일그래서 내가 조갑제를 싫어하는 제일의 이유입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조갑제기자는 5.18광주사태시 23일날 광주에들어왔다는 자가
21일 [쟁점]은 직접 목격한일도 없으면서 북한군은 절대 오지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신뢰할수없는 호남인들 말만듣고 역사를 판단한다는것은 위험한자다.
5.18의핵심인물[장갑차주인공 조사천]씨를 5.18당시 사실데로 공개했다면
5.18은 1980년 법과.관행에의하여 광주사태로 끝난 문제다.
세월지나 고도의 꼼수를부려 역사까지뒤집은 자들이 파렴치한 어리석은 자들!
용바우님의 댓글
용바우 작성일
조갑제는 5.18당시 광주에 갔다고 했다.
북한광수들 사진속에,광주 도청에서 순천사람 김인태와 학원강사 김중식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있는,많은 사람중에,조갑제 닮은 사진이
15-6년전에 발견되어 인터넷상에서 조갑제는 이사진의 상황을 밝히라고
많은 사람들이 오랬동안 소리쳤지만, 조갑제는 지금까지도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