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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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핸섬이 작성일25-09-26 15:01 조회3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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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감동)의
서정시(抒情詩)”
▶아내와 나 사이◀
詩 人 / 李 生 珍 (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詩낭송대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李生珍 詩人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 와
낭송하는 ‘나’ 와
그것을 듣고있는 ‘나’ 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
돌아가는 세월” 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 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 김남호 / 문학평론가
※ 오늘따라
몇 번이나 보았던
이 글을 또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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