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라..."소강절" 닉네임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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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강절 작성일11-04-02 10:08 조회1,918회 댓글8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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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소강절"이라는 분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흥미와 관심, 애정이 남다르기도 하고 말입니다.
지난 동안 그분의 이름을 빌어 사용하던 정까지 가볍게 볼 수 없을 것 같고 해서...
아무래도 소강절이라는 예전의 닉네임을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영혼이 저를 그리워 하고 있는 것 같은 상서로운 과분하기까지 한 생각이 듭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사의 삶이 사람의 이름대로 되어 간다고 합니다.
소강절이라는 분의 이름은 그런 역할을 제게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강절의 영혼이 저로 부터 떨어지는 것 같은, 저에게 정착해서 가꾸던 소강절의 영혼의 삶이미아처럼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것 같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제가 놀랐던 실력과 인격의 소유자 소강절의 영혼을 이렇게 버려놓듯 떠나 보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너무 가볍게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냥 예전의 닉네임, "소강절"을 계속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희안했습니다. 뭔가 옆자리나 제 세계에 누군가, 뭔가 없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를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마음 그런게 저를 휘어 쌌습니다.
소강절이라는 분은 고매한 고집도 있고, 의지도 있고, 귀신같은 실력도 있고, 세상에 대한 관조와 의식도 있고, 세상을 관조하던 분이라서 참 생각하는 입장에서 오묘한 생각을 갖게 합니다.
처음 소강절이라는 이름 차용의 동기가 그냥 가벼운 생각이 아닌
그런 존경과 애착의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니 그런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다고 귀신 붙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하시지는 마십시요.
소강절의 영혼의 힘과 지혜의 힘으로 시스템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마운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소강절 같은 분의 귀신이 붙은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겠다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소강절이라는 닉네임으로 건필하겠습니다.
댓글목록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낙타와바늘은 알겠는데 소강절엔 무슨 의미가 있나요?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작성일
* 소강절(邵康節)의 점단비화(占斷秘話) ------ 네이버 지식인에서 퍼옴 --------------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선생은 송(宋)나라 때의 명현(名賢)으로서 역(易)의 상수(象數)원리를 밝히고 점복(占卜)의 도(道)로써 역의 진리를 확인하여 역학의 새로운 장(章)을 연 학자이다. 선생의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시호(諡號)이다. 신종(神宗-在位1068~1085) 때에 비서저작랑(秘書著作郞)의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선생은 우거(寓居)를 안락와(安樂窩)라 이름하고 스스로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선생은 역점(易占) 뿐만 아니라 측자점(測字占‥글자를 보고 판단하는 점)도 유명하였는데, 역점에 대한 일화(逸話)는 이미 『관매역수』에 수록(收錄)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측자점의 일화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秘話1〕하루는 소강절 선생이 집에서 한가하게 계시는데, 이웃에 사는 벗 진광(陳光) 선생이 놀러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소강절 선생의 점(占)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농담 삼아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점을 처서 판단하여 줄 수 있겠는가" 라고 청하니, 소강절 선생은 "글자라도 한 자(字) 써 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을 근거로 점을 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였다. 진(陳)씨는 무슨 글자를 써 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때가 마침 사(巳)시쯤 되었으므로 곧 사(巳) 자 한 자를 써서 주었다.
소강절 선생은 이를 받아보고 점단(占斷)하시기를 "사(巳)시에 사(巳) 자를 썼으니, 사(巳)의 동물 속상(屬象)은 뱀(蛇)인지라... 오늘 반드시 자네가 거처하는 방으로 뱀이 들어오는 일이 생기겠네" 라고 하였다. 이에 진씨는 웃으면서 "집에서 날마다 사(巳)시를 보내고 있으나 내가 태어난 이래 뱀이 방에 들어오는 것은 본 적이 없네. 그대는 지금 내가 와서 떠드는 것이 귀찮아 그런 허튼 소리로 나를 희롱하여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뱀이 들어오는 것이나 지키고 있으라는 말인가" 라고 항변하자 소강절 선생은 "믿고 안 믿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나 나의 점(占)이 맞고 안 맞는 것은 지나보면 알 일이 아닌가" 라고 말씀하였다.
진씨는 의심을 품고 집으로 돌아가서 해가 질 때까지 방을 지키고 있었으나 뱀이 방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뱀과 비슷한 지네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소강절 선생의 점(占)이 맞지 않았음은 분명하므로 저녁밥을 먹고 술을 몇 잔 마신 다음 불을 밝히고 책을 읽으면서 내일 아침 소강절 선생에게 가서 따질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광동(廣東)에 사는 친척이 방문하였는데, 먼 곳에 살고 있으므로 부지런히 달려왔으나 밤에야 겨우 도착한 것이다. 손님은 방으로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갖고 온 선물을 내놓으므로 열어보니 광동지방의 특산물인 단사(團蛇)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註〕단사(團蛇)는 식용 뱀으로서 중국 광동지방의 특산물이다. 뱀이지만 뱀장어와 유사하며, 그 맛이 진미(珍味)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광동지방에 가면 단사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데, 독특한 그 맛은 일품요리에 속한다고 한다.
진씨는 소강절 선생의 점(占)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감탄하고 하인을 시켜 단사 한 마리를 점험(占驗)에 대한 사례로 보내드렸다.
秘話2〕
하루는 가까운 동네에 사는 사람이 장(牆 담 장) 자 한 글자를 써 가지고 소강절 선생을 찾아와서 중요한 물건을 잃었으니, 실물(失物)을 찾을 수 있을지 점(占)으로 판단(判斷)하여 달라고 간청한다.
선생은 글자를 받아 보시고 점단(占斷)하시기를 "빨리 집으로 가서 침상(寢牀) 아래를 살펴 보라. 비록 잃은 물건을 즉시 찾을 수는 없을지라도 반드시 도둑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잘 추궁하면 찾게 될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다. 그 사람은 선생의 말씀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내가 잃은 물건은 내가 타고 다니는 말(馬)인데, 살아있는 말이 어찌 침상 아래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이에 선생은 "나는 그대가 말을 잃었는지 소를 잃었는지 알 바 아니고 다만 그대가 쓴 글자를 보고 판단한 한 것이다. 장(牆) 자에는 침상을 뜻하는 상(牀) 자의 한쪽 변에 올 내(來) 자와 낯 면(面) 자가 들어 있는데, 올 내(來) 자의 다리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는 침상 아래에 숨어있는 상이다. 그러므로 잃은 물건이 침상 아래에 있다고 단정(斷定)한 것이니, 침상 아래에서 즉시 말을 찾지는 못할 것이나 말을 훔친 도둑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비록 신(神)은 아니나 측자점(測字占)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 그대는 빨리 가서 침상 아래를 잘 살펴보면 나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징험(徵驗)하게 될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빠른 걸음으로 침실에 들어가니, 그의 처(妻)가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소강절 선생의 말씀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침상 아래에서 신음소리가 들리므로 급히 침상을 들치고 보니 거기에 한 사람의 괴한(怪漢)이 엎드려 있는지라.. 그는 그 괴한을 끌어내어 말 도둑으로 지목하고 우선 주먹으로 한 대 내려쳤다. 그 도둑은 애원하면서 말하기를
"어제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어른의 말을 훔쳐갔으나 오늘 잘못을 뉘우치고 어른의 말을 이미 제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믿지 못하시면 후원에 가셔서 직접 보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하므로 그는 급히 후원으로 달려가서 보니 과연 말이 마구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었다. 그는 다시 침실로 달려갔으나 말 도둑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원래 말 도둑은 그 처(妻)의 정인(情人))이었으니, 그 전날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밀회(密會)를 즐기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남편의 말을 태워 보내면서 내일 아침 일찍 말을 가져오라고 약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오기 전에 남편이 먼저 말이 없어졌음을 발견하고 소강절 선생에게 실물점(失物占)을 간청하려고 달려간 사이에 그 정부(情夫)는 말을 제자리에 갖다놓은 다음 마침 남편이 없으므로 침실에서 정담(情談)을 나누려고 할 때에 남편이 갑자기 돌아오므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침상 밑에 숨었던 것이다. 침실로 들어온 남편은 처에게 소강절 선생을 찾아가 점(占)을 본 이야기를 하면서 말 도둑은 반드시 침상 아래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침상 아래에 엎드려있던 사나이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여 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소강절 선생의 점(占)은 과연 신(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리라.
秘話 3〕
하루는 소강절 선생께서 장절도사(張節度使) 댁의 연회에 초대되어 참석하였다. 연회에 온 손님들을 보니 모두 당시의 현관(顯官)과 명사들이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명화(名花)를 보내왔는데, 아직 꽃망울이 나오지는 않았다. 장절도사는 웃으면서 소강절 선생에게 "이 화분에 꽃이 몇 송이나 피겠오. 선생의 신묘한 점술을 한번 시험해보고자 합니다" 라고 말하므로 선생은 글자 한 자(字)를 청하였다. 장절도사는 화분 옆에서 화초를 손질하고 있던 외손자에게 마음대로 한 글자를 말하라고 명하니, 외손자는 마침 손에 전도(剪刀-가위)를 들고 있다가 그것을 가리키면서 전(剪) 자를 아뢰었다. (剪‥벨 전)
〔註〕절도사(節度使)‥중국 당(唐) 송(宋) 시대 지방관(地方官)의 벼슬 이름이다. 절도사는 관할하는 지방의 군정(軍政)과 행정을 총괄(總括)하였던 요직으로서 그 권한이 막강하였다. 조선 왕조시대에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두었는데, 모두 정三품의 벼슬이다. 그러나 중국 절도사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소강절 선생은 말씀하시기를 "전(剪)은 금(金)에 속하고 금의 수(數)는 四수이므로 꽃은 네 송이가 필 것이나 애석한 것은 전(剪) 자를 말할 때에 전도(剪刀)를 들고 있었으므로 전벌(剪伐)의 조짐이 먼저 보였으니, 이 꽃은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전도는 주로 여인(女人)들이 사용하는 기구이므로 장차 꽃이 핀 뒤에 반드시 여인에 의하여 시들게되고 마침내 죽게될 것입니다" 라고 점단(占斷)하였다.
절도사는 소강절 선생의 점(占)이 신묘(神妙)하여 적중하지 않은 적이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는지라... 미리 꽃을 보호할 요량으로 외손자에게 명하여 꽃을 손상하지 못하도록 죽편(竹片)에 써서 화분에 꽂아 놓도록 하였다. 그 얼마 뒤에 꽃망울이 나와 과연 네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꽃이 모두 핀 그 다음날 새로 고용한 하녀(下女)가 소금물을 타 놓은 것을 버리는 물로 잘못 알고 그 화분에다 부어 꽃은 그날로 시들고 나무도 잎이 마르면서 죽어버렸다.
秘話 4〕
과거(科擧)를 보러 가는 선비 두 사람이 소강절 선생이 사시는 마을 앞을 지나게 되었다. 선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소강절 선생을 흠모(欽慕)하고 있었으므로 선생을 찾아 뵙고 자신들의 전정(前程)과 공명(功名)에 대하여 점단(占斷)을 청하였다. 이에 선생께서는 선비에게 글자를 한 자(字) 쓰라고 하였다.
甲선비가 먼저 차(且) 자를 한 자 써서 올렸다. 선생은 글자를 받아 보시고 "축하하오. 그대는 이번 과거(科擧)에서 반드시 급제(及第)를 하게 될 것이오" 라고 점단(占斷)하였다. 이에 甲선비는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라고 아뢰니, 선생께서는 "그대가 쓴 차(且) 자는 그 형상이 펑퍼짐한 것이 사모(紗帽)와 같으므로 반드시 급제하고 장래에 공명(功名)도 얻게 될 것이오" 라고 일러주었다. 甲선비는 반신반의하였으나 다만 선생의 점(占)이 극히 유명한 까닭에 대체로 믿는 듯하였다. (且‥또 차)
乙선비는 앞의 선비가 차(且) 자를 써서 좋은 점단(占斷)이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자기도 역시 차(且) 자를 써서 올렸다. 선생은 글자를 받아 보시고 머리를 연달아 흔드시면서 탄식하는 어조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공명을 얻을 희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乙선비는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고 불복하여 말하기를 "앞의 선비는 차(且) 자를 써서 길(吉)하였는데, 나는 어찌하여 상반되는 것입니까" 라고 하는지라 선생은 "앞의 선비가 쓴 차(且) 자는 그 형상이 사모(紗帽)와 같은 까닭에 공명(功名)을 얻을 가망이 있으나, 그대가 쓴 차(且) 자는 그 형상이 오뚝하여 흡사 묘비(墓碑)와 같으므로 까닭에 주로 흉(凶)한 것이다" 라고 설명하여 주었다.
밖으로 나온 乙선비는 소강절 선생께서 그 이치를 설명해 주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甲선비와 함께 서울로 향하다가 날이 저물어 강변(江邊)의 객점(客店)에서 유숙하였는데, 밤중에 큰 비가 내려 강물이 크게 불어난 까닭에 강을 건너갈 수 없게 되어, 두 사람은 강가에 나와 거친 물결을 일으키며 흐르는 홍수를 구경하면서 건너갈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한 乙선비는 바짝 물가로 나가 제방 안쪽에서 넘실대는 물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방이 무너져 토사와 함께 물결에 휩싸여 빠져 죽었다.
〔附記〕두 사람이 같은 글자를 썼으나 한 사람은 공명(功名)을 얻고 한 사람은 비명횡사를 하였으니, 동일한 글자를 놓고 이와 같은 현기(玄機)를 헤아리신 소강절 선생의 점(占)은 과연 신(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秘話 5]소강절은 젊어서 과거 급제하여 이십대에 벌써 상서(장관급;우리나라 판서급)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문장이 빼어나고, 시를 잘 지었으며, 주역에 아주 밝았고, 학문이 높아 전국적으로 이름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공부하느라고 장가를 못가 벼슬이 높이 된 이십대 후반에 가서야 성취를 하게 되었다.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고 긴장한 탓인지 새벽에 너무 일찍 잠이 깨었다.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를 뽑아 점을 치게 되었다. 과연 하룻밤 잤지만 아이가 생겼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샐려면 멀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 운수를 점쳐보게 되었는데, 소강절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팔자였다.
그러면, 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는 어떤 운명을 타고 살아갈까가 궁금해졌다. 그 아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한 대 한 대 점쳐 내려 가다가 5대손에 이르렀는데, 그는 중년에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사형 당할 운명이었다. 이러구러 날이 새고 소강절은 평생 그 일을 고민하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소강절도 늙어 죽게 되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 손부 등을 모아 놓고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을 하나 내어 주면서 "살아가다가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보자기를 풀어 보라. 만약 너의 대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며느리에게 물려 주고, 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다음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 대대로 이 함을 전하라." 고 하였다.
유언은 실행되었다. 맏며느리에게서 맏며느리에게로 함은 전달되었다. 그런데, 5대 손부에게 정말 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남편이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던 것이다. 역적은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뻔하므로 집안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다.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밤새 꽁꽁 앓던 5대 손부는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급히 벽장을 열고 함을 꺼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 쓰였으되,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 함을 형조 상서 집에 가져다 전하라.]라고 씌어 있었다. 집사를 불러 급히 의관을 갖추라 한 후에 함을 들려 보냈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 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다.
형조 상서는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막 입궐하려던 참이었다.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 나으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형조 상서는 그 말을 듣고 100여년 전에 작고했지만 그 명망 높은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자, 큰 학자요 대 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털어 주역에 완전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을 받았다. 유품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삼풍백화점 같이 통채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부 상서는 급히 함을 열어 보았다. 함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글자 열 자가 씌어진 하얀 창호지 한 장만 뎅그러니 들어 있었다. 상서는 재빨리 펼쳐 보았다. 그 글에 하였으되, [活汝壓樑死 救我五代孫]이라 적혀 있었다. '네가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니, 나의 오대손을 구해 달라.'라는 뜻이다. 재수사를 명한 상서는 오대손의 무죄함을 가려 내어 그를 살려 주었음은 물론이다. 묘하고 묘한 일이로다.
그는 평생 동안 자기 손자를 구하기 위해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 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부 상서의 운수를 알아 냈던 것이니,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이 어찌 후대인들인 우리들로 하여금 입 에서 입으로 전해질 이야기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기이한 일도 많지만 참으로 기적 같이만 여겨지는도다.
**혹자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소강절'만큼의 知(앎)을 소유했던 사람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날아들지도 않던 두견새가 날아와 나라(아마도 송나라 일 듯 한데 잘 기억이 안납니다)안에서 우는 것을 듣고 나라가 머지 않아 망할 것이라는 예기를 들려줬고, 그 이야기 역시 맞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 된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생각합니다.
듣기로 한국 현대 명리학의 최고봉이라는 박제현(일명 박도사)라는 분도 많은 일화를 남겼다고 합니다만...
사이비나 가짜 사기꾼이 아닌 그런분들이 국가를 위해 위대한 생각으로 헌신한다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닉네임을 삼았던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뛰어난 지적성취를 이룬 점이 놀랍고, 참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에서... 저도 부러웠던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도를 깨우쳐서 도통하겠다는 일념으로 들어가서 평생을 걸려서도 성취하지 못하는 술수(術數)의 세계를 일생에 걸쳐 발휘하며 신기함을 자아낸 사람...
그런 소강절에 대한 경외감만큼 국가를 위하는 시스템클럽의 정신에 대해 경외감이 있고 또한 그 정도로 진지하고 어려운 마음이기에 닉네임을 삼았던 것입니다..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와~ 그렇게 깊은 뜻이... 장문이라 갈무리해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기린아님의 댓글
기린아 작성일딱 소강절이라는 호칭이 소강절님에게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반가운 기린아님, 왜 이제 오셨어여...
며칠 전 부터 기린아님 생각이 여가시간에는 꼭 들어지곤 했는데...
떠나시지는 않을 분인데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근심섞인 생각을 했습니다.
기린아님을 사랑하시는 박사님과 회원분들의 마음이 어떠실까도 생각했죠.
22세의 젊은, 어린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야무지고 훌륭하십니다.
박사님이나 김종오 어르신같은 분들께서 사랑하실만한 분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대하고 멋있고 아름다운 삶 사랑받는 삶을 항상 사시길 바랍니다.
소강절 호칭이 어울린다는 말씀, 제 개인사에 영광스럽게 새겨두는 바입니다.
영광입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소강절이라...
저는 그런 대단한 분은 모르겠고.....
소짜는 작을 소(小) 본인이 작다는 뜻으로
본인을 낮춘 것으로만 알고 있었더니.....
강절은 글에서 풍기듯이
강한 절도라는 뜻으로만 이해를 했었는 데....
그게 아니었군요????
저도 책을 좀 더 읽어야 겠네요!!!
기린아님의 댓글
기린아
감사합니다.
Plus, 사랑하는 삶을 사려고 합니다
행동력이 정말없던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이보다 뜨거운(?)것도 없더군요..하하;;
systemgood님의 댓글
systemgood 작성일
영혼이 순수하신 소강절님 글은 언제 봐도 좋습니다
기린아님 글도 마찬가지 입니다
님들은 전라도의 2% 의 존경할만한 전라도인 이 십니다
당연히 저도 소강절은 유명하신분임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