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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 수기(4) - 가장 길었던 날 (The longes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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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1-02-23 14:26 조회2,181회 댓글7건

본문

       한 소대장의 5,16 혁명 수기 (4) – ‘가장 길었던 바로그날

                                            김 피터 (박사, 교수)

 

       (5,16 군사 혁명 5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그 당시 혁명 선봉군으로 한강다리를

       돌파했던, 한 일선 소대장의,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기억을 더듬으며

       후세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여기 글을 올립니다. _ 필자)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의 지시에 의해, 한강대교에 바리케이드 저지선을 설치해 놓고 대항하던 헌병 병력을 물리치고, 우리 해병 혁명군은 서울 시내로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도 잠자는 서울 시내! 방금 격전을 치르고 난 우리들의 눈에 비친 서울 거리는 너무도 조용해 보였다. 한강교 전투시 내가 추측했던 서울 시내에는 이미 혁명을 저지하려는 반 혁명군이 대거 포진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틀린 것이었다.  그러나 용산 경찰서 지역과 서울역 지역에서 경찰들의 총격이 좀 있었다.  소수의 경찰력이므로 그것은 쉽게 진압되고 말았다.

 

                              목표지역점령

서울역에 왔을 때는, 그 역사적인 516일이 훤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길었던그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새벽녘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상황을 잘 모르는 대부분 시민들은 총소리와, 무장한 군인들을 보고 무슨 일인가 불안스런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새벽에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해병대는 이렇게 쎄게 훈련을 합니까?” 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서울역 지역에서의 가벼운 총격을 물리치고, 이제 각 부대는 명령 받은 목표 지역을 향해 떠나 갔다.  우리 3중대는 그당시 경찰의 총 본부인 치안국을 점령 확보하였다.  경찰력의 본부인지라 혹 강한 저항이 있을까 염려하며 처들어 갔으나, 치안국 내에는 여자 교환수들을 제외하고는 한 명의 경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4,19 때 혼이 난 경찰들인지라, 이미 군사 혁명의 방송을 듣고, 모두 도망쳤던 것 같다.

 

                          외곽 방어에 투입

 

 얼마 후, 우리 제 3중대는 최초작전 명령에 하달된대로, 외곽 방어를 위해 미아리로 향하였다. 이때는 이미 시민들이 거리에 많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차량을 타고 가는 우리를 향해, 얼굴에 웃음을 띠며 손을 흔들어 환영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길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아마 새벽에 긴급뉴스로 나간 박종세 아나운서의 군이 궐기했다는 방송을 듣고 나온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긴장해 있던 나의 마음이 비로소 좀 안도가 되며,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답하는 나의 눈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 것 같다.

 

미아리고개 마루에 와서 (그 당시 미아리 고개 꼭대기 지역에는 지금처럼의 집이 없었다. 밭이나 혹은 풀, 나무들로 덮여 있었다) 우리는 산개하여 방어진을 구축하였다. 혹 동두천 지역에서반 혁명군이 서울로 진입한다면 여기서 그것을 격퇴 하기 위해서였다.  기관총,

60 미리 박격포, AR 자동소총 등으로 화력 계획을 세우고, 각 소대 별로 방어 체계를 구축하여 언제라도 적이 나타나면 이를 물리칠 태세를 취하였다.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서울로 들어가는 모든 차량이나 수상한 사람은 우리 대원들에 의하여 검문을 받았다.

 

중대장이 나에게 인근에 있는 경찰 파출소를 조사하라고 해서 똘똘한 대원 몇 명을 대동하고, 파출소로 내려갔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나는 부하들에게 파출소 내를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분대장인 하사 하나가 무기와 탄약을 다 내놓으라고 경찰 중에 높아 보이는 사람에게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 경찰은우리 경찰은 군인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며 거부하였다. 그러자 그 하사는 이 새끼가 뜨거운 맛을 보아야 정신 차리겠어?”하면서 총개머리판으로 그 경찰의 배를 후려쳤다. 경찰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자 다른 경찰들이 그 쓰러진 경찰 쪽으로 몰려들며 대항할 자세를 취했다. 그때 예의 그 하사가 다 죽여버리겠어하며 총을 겨누었다. 동시에 우리 대원들이 누가 명령한것도 아닌데 모두 경찰들을 향해 총을 들었다. 노리쇠를 당겨 실탄을 장진하는철커덕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여차하면 쏠 것 같은 태도를 보고 경찰들이 모두 두 손을 번쩍 처들었다.

 

 한번 전투를 치른 대원들인지라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평상시 같으면 내가 대원들을 야단 처야 하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그럴 수 없었다. 사태를 수습하고, 만일을 대비하여 경찰의 실탄은 모두 압수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고개 위에 있는 해병 부대에 속히 보고하라고 지시(?)하고는, 그곳을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사소한 사건을 여기 쓰느냐 하면, 그때 우리 해병들의 심리 상태가 얼마나 날카로워저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밤을 꼬빡 새우고, 아침도 못 먹어서 입안이 깔깔하다.  그러나 배가 좀 고픈것같아 대원들과 함께 마른 건빵을 입에 넣으니 그래도 맛이 있었다.

 

                                시청 앞지역 경계

 

아침 10시쯤 작전 참모가 오더니 시내로 철수하여 시청 앞 일대를 방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시 추력을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데, 연도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환영해 주었다. 시청 앞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육군 공수부대가 도로 양 옆에 늘어서서 총을 들고 당당하게 경계에 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수부대는 박치옥 단장과 참모총장이 보낸 특전감의 완강한 방해로 처음에는 출동이 저지 되었었으나 차지철 등 젊은 장교들의 활약으로 서울 진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이다. 서울 시청 앞 도로에 쭉 서 있는 우군인 공수부대를 보고 우리 해병들은 반가워 해야 할텐데, 해병들 특히 하사관들 입에서 개새끼들!’이라는 욕이 튀어 나왔다. 본래 계획에는 공수부대가 1진으로 먼저 서울로 들어가야 했었는데, 그들은 그때 나오지 않았었다. 대신 우리 해병들이 한강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사투를 벌려야 했었다.

 

 그리고 미아리고개로 나가 외로이 외곽 방어까지 하다가 와 보니, 서울의 요충지대, 시청 앞 지역에 공수부대가 떡 버티고 서서 그야말로 을 내고 있으니(?) 우리 해병들의 심사가 편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생각은 다 잠깐이었다.

 

즉시 우리 해병들은 산개하여 각각 지시 받은 위치에 배치되어 경계 임무에 들어 갔다. 나의 2 소대의 경계 지역은 시청 앞에서 미도파 백화점이 있는 도로 즉 소공동 쪽 방향이었다. 나는 바로 조선 호텔 앞을 소대장의 위치 즉 소대 본부(?)’로 정하였다.

 

혁명 지휘부가, 우리 해병대를 시청 앞쪽으로 불러 들인것은, 서울의 중심부이며,‘정치 1번지지역인(그당시는 국회의사당이 서울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있었다), 광화문, 시청, 남대문 일대에, 용맹을 자랑하는 공수부대와 해병대를 같이 세움으로, 혁명군의 위용(?)을 과시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총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우리 대원들도 연쇄적으로 땅에 엎드리며, 총을 마구 쏘아댔다. 그 지역의 모든 부대가 다 사격을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총소리가 서울의 중심부에서 천지를 진동하였다.  무슨이라도 나타났는가 해서 사방을 둘러 보아도 아무 일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어디서 총소리만 났다 하면, ‘엄호사격차원에서 덮어 놓고 공중을 향해 쏘아대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처음에는 아마 정치 1번지지역에 심리적 위협을 주기 위해서, 어느 쪽에서 시작한 것 같았으나 너무 자주 그런일이 일어 나자, 지시 없이 사격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런데, 그때 나는, 후일, 경호처장으로권력의 화신이 되었던 차지철 대위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때 그는 공수부대 중대장의 하나로 시청 앞에 있었는데, 가까이, 조선 호텔 앞에 서 있던 해병 소대장인 나를 보았던 모양이다.  나에게 달려 오더니 예의 그 험상궂은 표정으로, “왜 해병대쪽에서 자꾸 총을 쏘아대는가? 지시 없이 사격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우리 해병대는 육군의 지시를 받지 않소. 불만이 있으면 우리 대대장에게 하시요.”소리치면서, 손을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에 대며 대들었다.

 나는 해병대 장교지만, 평소에는 별로 과격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때는 한강에서의 전투를 치렀을뿐 아니라 밤새 잠 한잠 못자고 아침밥도 못먹어, 악이 치받쳐 있는 상태였다.  무임승차한것 같은 공수부대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과격한 태도가 나왔던 것이다. 그 공수단 대위는 악에 받친 것 같은 해병 소대장의 당돌한 태도를 보고, ‘그래, 그럼 그러지하고는 자기부대 쪽으로 가버렸다.  물론 그 대위가 바로 차지철이였다는 것은 그때는 몰랐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인상이 나의 뇌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후 사진 등에서 그가 바로 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엄호 사격중에 오발로 분대장 하나가 총상을 입는 불상사가 일어 났다.  피를 철철 흘리는 그를, 압박붕대로 상처부위를 싸매고는 급히 수도 육군 병원으로 데려갔다. 군의관들이 무척 친절히 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낮 12시 가까이 되었을 때인가?  주먹밥이 식사로 배부되었다. 다 식은 뻑뻑한 주먹밥이지만, 오늘 처음 대하는 밥인지라 맛있게 씹어 먹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아주머니들이 빵과 과자 등 먹을 것들을 가지고 왔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호의에 나는 감사하면서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오후 5시경, 남산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남산 위의 과거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있던 공간 지역에 우리 모든 해병부대는 다 집결하였다. 거기서 우리는 그날 밤, 야영을 하며 대단히 불안한 밤을 보냈다.  밤중에비상소집이 몇번이나 있었다. ‘반 혁명 부대가 처들어 온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모두단독 무장을 한채 추럭에 올라타고, 출동을 하다 보면, ‘반 혁명 군이 아니라고 하여, 다시 되돌아 오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렇게 16일의 역사적인 밤은 대단히 불안한 가운데 지나가고 있었다.

 

 

 

 

 

   

댓글목록

김피터님의 댓글

김피터 작성일

해병대의 '목'이 날라 간(해병대 사령부가 해체 당한)  이야기는 다음 번 (제 5회)에 올리겠습니다.
김 피터

성실님의 댓글

성실 작성일

비겁한 공수부대.. 차지철..
한강인도교 돌파 선봉에 서지않으려고 혁명계획 탄로 운운..
그리고선 공은 저놈들이 차지하고..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4697756972 斷腸의 彌阿里 고개 {'李 海燕' 님 노래, 1954년 경}

'해병대'가 좀 행동하는 게 매우 거부감이 들었었던 적 있었읍니다. 제가 1969년 10월(?)인가에 '주월한국군총사령부 창설' 기념 작전 - - - 즉 '주월사 창군 기념 작전'이라하여 '제首都사단{맹호}, 제9사단{백마}, 제2海兵사단{청룡}!'
이렇게 3개 사단이 함께하는 '군단 작전'이 약 3박 4일 정도(?) 있었죠. 대규모 공중기동작전과 포위망을 형성한 뒤, 압축시켜 조여들어 가다가다가, 최후에는 맞은 편에서 오는 부대들과 만나게 마련인데!

나는 그 당시 소총소대장으로써, 중대장님으로부터, 맞은편에서 압축해 오던 해병사단의 單隊號(단대호)별 분대장.소대장 및 중대장님의 관등 성명을 적어 서명 받아 오라고 해서,,.

그리하여 평지에서 그 海兵제2사단의 분대장을 만나러 가는데, 내려오라고 해도 내려오지 않아,,. 할 수 없이 선임부사관에게 소대를 맡기고, 내가 무전병 1명만 데리고, 분대장이 있는 산 위로 올라가서 C - ration 곽대기에 분대장 관등 성명을 적고, 소대장 어딨느냐 묻자, 턱주가리로 위를 가르키면서{^^*} 올라가라기에, ,,.^^*

해병대 귀경도 할 겸, 올라갔더니 소대장이 있길래, 내가 먼저 인사를 해주고 관등성명을 적고, 이어 중대장님이 계신 곳까지 또 올라가서, 해병대 단대호 및 중대장님 관등성명을 적어 받은 뒤, 무전으로 보고하니, 그걸 가지고 내려와서 가져오라고 하기에,,. ^*^

한 마듸로 말해 육군 알기를 우섭게 알던데,,. ^*^ 아, 총알이 해병대.육군을 알아 줍니까? 지도.지형.나침반이 해병대.육군을 구분해서 현 위치 및 나아갈 진로를 가르켜 주나요? ,,.

하여튼, 그 때 저는 난생 처음 海兵隊 구경을 했었읍니다. Viet-Nam 파병할 적에, 美軍 海軍 수송선에는 '맹호 + 십자성 일부 + 비둘기{공병 여단} + 의무사령부'가 함께 타고, '백마 + 청룡 + 십자성 일부 + 주월사' 가 함께 승선한다고 들었는데, 전 猛虎라서 海兵 第2師團과는 일절 접촉이 없었다가,,. ^*^ 좋은 경험했었지요.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김피터】소대장님! 아주 재미있읍니다. 비장하기도 하고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대중 가요를 1954년도에 '이 해연'님이 노래를 부르셨죠. 비참한 가사가 담긴,,. 그 노래가 연상되는,,.

파출소는 헌병들이 점령해서 깡패들을 모조리 체포, 역전 광장 앞, 곁에 있는 헌병 순찰대대 본부로 '헌병 백차 쓰리 쿼터' 로 호송하는 걸 1961.5.16 아침에 강원도 원주에서 고1때 직접 목도! ,,. 헌병 중사가 역전 파출소에서 경찰들을 지휘하는데, 설설 기더군요. ,,,  ,,, ,,. 난 그때 헌병이 그토록 미서운 존재인 줄은 미처 몰랐! ...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흠!!!!
그런일 이후로 공다툼....
차지철이라는 공수부대 출신이 해병대의 전과을 가로채 갔다!!!
그림이 대충 그려지네요....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심심 도사'님! 나는 '차 지철' 애위가 그 해병대의 공로를 가로챘다고는 결코 생각되어지 않읍니다. 그는 공수단의 말단 1개 중대장인 대위에 불과했었으며, 다만 공수단의 무기.탄약고가 헌병들에게 장악.포위되었을 때, 헌병들을 무릅쓰고, 도끼로 탄약고.무기고 문을 파괴, 무기.탄약을 지출하여 출동에 기폭제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으며; 그 '차 지철' 대위는 '박'통의 측근으로 간 것도 우에 적힌 【김 피터】교수님 과의 접촉 후의 일 이였을 걸로 압니다. ,,.

'차 지철' 대위는, 경기도 이천군 출신으로, 사상 최초이자 최후였던, 미국 육군 보병학교 'ranger course ㅡ ㅡ ㅡ ㅡ 유격 과정' 동기생으로, '전 두환, 노 태우, 차 지철' 이 3명이었었는데, '차 지철'대위만 '간부 후보생' 출신이자, 홀로 '야전 포병 병과' 출신으로, '전.노'와는 매우 상이한 인물! ,,.

후일담이기에, 별 의미가 없기도 하겠지만, '차 지철' 대위는 어쨋던 사후, 부정 축재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걸로 압니다. 유족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가고,,. 그 '차 지철' 대위님은 지금 어느 곳에 무덤이 있는 지,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일종의 죄라면 죄! ,,.

'전 두환'은 '차 지철'을 나쁘게 표현해야 할 타산이 깔려 있었을 터! ,,.
계엄군 총사령관이던 '정 승화'도 물론이었고! 모두 비렬한 ,,. 퉤~!

정작 그 현장에 있었던 비서실장 '김 계원' 과 가수 '심 수봉'및 또 다른 사람들이 솔직하게 당시 상황을 얘기하여 以實 直告(이실 직고)치 않는다면, 난 믿지 않는다!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9121558640

↗ 斷腸의 彌阿里 고개{ 동영상, '이 해연' 님 노래, 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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