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베트남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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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1-02-12 10:21 조회2,131회 댓글1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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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 참전했던 한사람으로 어디서 이글을 읽고 월남에 참전했던사람들은 한번씩 읽어보는것도 좋을것 같아 여기에 소개합니다.
월남.베트남의 정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우연히 VIETVET을 알게 되어 자주 놀러 오는 새까만 후배입니다.
월남이 패망하기 보름 전에 태어났고
자라면서 월남전에 큰 관심을 가졌고
월남어를 전공하여 월남에서 7년 정도 근무하였고
지금도 월남, 월남전하면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 놈(?)이기에
저도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월남이나 vietnam이나 같은 말입니다.
월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에 속하지만,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교문화권 국가입니다.
우리처럼 중국의 한자를 빌려 썼고,
같은 글자라도 우리나라, 중국, 일본이 서로 다르게 발음하듯이
월남도 월남식 한자 발음이 있습니다.
즉, 越을 월남식으로 발음하면 Viet이 되고 南은 Nam이 되는 것입니다.
비엩남이 옳은 표기이지만,
아마 미국사람들이 비엩남을 빨리 발음하여 벹남으로 하던 것을
우리는 베트남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다른 예로,
잘 아시는 '다이한로'를 한자로 쓰면 大韓路가 됩니다.
즉, 대한민국에서 깔아 준 길이란 뜻입니다.
말씀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라이따이한'을 한자로 쓰면 來大韓이 됩니다.
(다이한이 맞는 발음인데, 성조 때문에 따이한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같은 한자어를 각국의 방식으로 발음하다보니
마치 다른 단어처럼 생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월남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 올리겠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 다음이 일본 식민지 시대입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2차대전이 끝나자
월남도 우리나라처럼 승전국들에 의해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남에는 영국이, 북에는 장개석의 중국이 신탁통치를 하였습니다.
국내 사정으로 중국은 자기네 나라로 돌아 갔고
그 자리에 호지명이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가 바로 월맹(Viet Minh)이며, 베트밍이라고도 합니다.
영국이 통치하던 남쪽에는 프랑스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일본 점령 전 자기들 영토라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하였으며 영국이 이를 받아 들였고,
다시 프랑스가 점령하였는데, 이 나라도 월남(Viet Nam)이었습니다.
이 때 프랑스와 월맹이 전쟁을 한 것이 1차 인도차이나반도 전쟁입니다.
유명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가 물러 가고
이번에는 미국이 왔습니다.
여전히 나라 이름은 월남이었고, 이 때는 남베트남이라 불렸습니다.
또 다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였는데,
이것이 2차 인도차이나반도 전쟁, 즉 월남전입니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패망하여 남북이 통일 되었고,
통일된 나라의 정식 국호가 '월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며 월남이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월남이란 이름은 중국의 천년 지배에서 벗어난 시기부터 쭉 써온 것이며,
왕조가 바뀌어도 국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 쯤에 월남에는 Ly(李)왕조가 있었는데,
왕조가 망하기 직전 마지막 세자가 탈출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고려로 오게 되었는데,
고려 왕실은 그들에게 '화산 이씨'라는 성을 내리고 우리나라에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은 많치 않으나, 모르는 월남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한국은 자기들 조상이 한반도로 가서 세운 나라다'로 와전되기도 했습니다.
자기들 초대 주석인 호지명이 나라를 세웠듯이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세운 것으로 알더군요.
초대 대통령 리(이)승만 대통령이...
'월남전은 미국이 패한 유일한 전쟁이다.'라는 것은 미국 스스로가 내린 정의입니다.
월남이 미국을 이겼다는 것은 윗 말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각색을 한 것이죠.
실제 미군과 연합군이 철수할 시기에는 월맹군도 전투를 수행할 능력마저 거의 떨어진 상태였고
월맹의 수도인 하노이는 수도는 커녕 도시 기능 자체도 마비가 될 정도였습니다.
잽 몇 방이면 KO 당할 상황에 상대가 힘들다고 그만하자는 상황인 것이었죠
미군이 전쟁을 미숙하게 수행하였으며
내부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심화되고
정치적으로 대통령이 자주 바뀌는 상황 때문에 발을 뺀 것이지,
절대 패해서 물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미군에게 이런 식으로 전쟁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 것은 맞습니다.
이런 의미로 미국이 패한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 뚜껑을 열어 보면 전혀 아니죠.
아직 안 나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베트콩이죠.
베트콩은 Viet Cong San Chu Nghia (비엩꽁산쭈응히어 - 越南共産主意)의 줄인말로
월맹의 지원을 받은 남월남 내의 공산주의자집단입니다.
삿갓에 AK들고 정글을 뛰어 다니던 베트콩도 있었고,
대학교수에 언론사에 군 고위 간부에 정부 고위 간부까지
남월남 전체에 퍼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총을 든 베트콩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베트콩이었습니다.
마치 공산통일이 되면 신세계가 펼쳐질 것인 양 떠들었던 것이 베트콩들이었습니다.
외세만 물러나면 자신들만의 행복한 독립국가가 세워질 것이라 떠들었던 것도 베트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일이 되었지만 통일 전 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국민들이 폭발하려는 것을 막기위해
결국 개방 정책을 편 것이 바로 도이머이 정책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베트콩들의 눈가림에 속았던 것이었죠.
그런데...
요즘 보면 베트콩들의 수법이 우리나라에도 버젓히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몇 몇 언론에서 미친 듯이 떠들고 있는 석선장님 몸에서 나온 탄알 기사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천안함 사건은 북한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우기지를 않나,
연평도 사건 후 우리 해병대를 어떻게든 깎아 내리려고 하지를 않나,
심지어, 월남전 양민학살 조작 사건도 있었죠.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참 할 말이 없어집니다.
월남과 국교 정상화를 이뤘던 해가 1990년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월남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것이 아닌
월남사회주의공화국과 첫 외교 교류를 시작한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국교를 맺었던 월남은 남월남이었고 그 남월남은 지구상에 이미 사라진 국가입니다.
지금의 월남은 월맹의 정통을 이은 국가이고 우리는 과거에 월맹과 국교를 맺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첫 국교가 맞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구분 못 하네요.
월남에 대해 몇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월남이 지금처럼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길게 걸친 국토를 가진 기간이 200년 정도 입니다.
처음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에서 시작하여
계속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다가 프랑스 식민지대에 와서 영토확장을 멈추었습니다.
지금의 호치민(사이공)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방에는 참파라는 참족의 나라가 있었고,
그 참파라는 나라를 월남이 정복한 것이죠.
이런 이유로 남과 북은 말도 조금씩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사람들의 성향도 다릅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북부 지방은 우리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유교색이 아주 강합니다.
장자우선, 남존여비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반면에 남부 지방은 유교색이 있는 듯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모계 중심 사회였던 참파의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어 여자들의 목소리가 더 강합니다.
심지어, 남편은 애 키우며 놀고 부인이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돈 버는 가정이 많습니다.
남편이 시원찮으면 부인이 남편을 내 쫓기도 하고,
남자가 이혼 당하는 경우도 많고,
장남이 아닌 막내 딸이 부모를 공양하는 그런 문화입니다.
심지어 서로를 생각하는 것까지 달라
우리의 영호남 지역감정을 훨씬 넘어서는 남북 지역감정이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울 때 그 나라 표준어를 배웁니다.
월남의 수도가 하노이라 하노이식 월남어를 배웠습니다.
졸업 후 처음 월남에서 근무했던 곳이 호치민이었습니다.
외국인이 쓰는 어설픈 하노이식 월남어를 이해하는 월남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이지나며 제 월남어도 늘었지만,
처음 배운 하노이식 월남어를 버리지 못 해 계속 하노이식 월남어를 썼습니다.
가끔 휴일에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말을 하면 상인들의 거부감이 얼굴에 그대로 들어 났습니다.
제 얼굴이 좀 동남아 스타일이라 외국인으로 안 보고 북쪽 사람으로 보더군요.
'또이 라 응어이 한꾸억.'이라 해야 상인들이 웃으며 대했습니다.
이 처럼 남북의 지역감정이 좀 센 편입니다.
도이머이 정책이 시행되고 우리 기업들의 월남 진출이 시작될 때
거의 100%가 호치민이나 호치면 옆 동나이성 또는 빈증성에 몰렸습니다.
최근 하노이 부근이나 하이퐁쪽에 들어간 우리 기업들이 있는데
이는 땅 값이 비싸거나 직원을 구하지 못 하는 이유로
호치민 부근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가게 된 경우입니다.
거기에 월남전에는 우리가 남월남 편이었기에
남쪽 사람들은 대한민국과 한국사람들에 상당히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하노이는 남부 지방만큼의 우리에 대해 호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월남에 근무할 때 하노이 사무실 사람들과 전화 통화하며 듣는 얘기도
남부 지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더군요.
같은 나라라도 호치민과 하노이는 전혀 딴 판인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대사관과 대부분의 공사 사무실들은 하노이에 있습니다.
관에 관련된 것은 대부분 하노이에 있고
호치민에는 총영사관(건물도 아주 조그마한)과 공사 호치민 지점 정도이니,
민간에서 생각하는 월남과 관에서 생각하는 월남이 차이가 생겼나 봅니다.
정리하자면, 정치는 하노이에서 하지만 경제는 호치민에서 하는 것이 월남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월남 정치보다 경제에 관심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당연히 북부 지방보다 남부 지방을 더 좋아합니다.
거기에 예전 교류가 있던 곳도 남부 지방입니다.
남부와 북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북부는 우리를 별로라 여기지만 남부는 우리를 좋아합니다.
이것을 나랏 일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남부에 있는 상사 주재원들은 온갖 큰 소리를 다 치는데
북부에서는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왜 이상한 짓을 하는지???
심지어, 전직 대통령이 월남전 참전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대박까지...
우리가 월남전에 참전한 이유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일본이 이미 크게 재미를 보았고
월남전이 터지자 지리적으로 미국과 월남 중간인 일본이 또 재미를 보려는 움직임을
우리가 간파하여 선수를 치기위해 미국에 제시한 카드가 참전이었다는 식의 설명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말씀에 기분이 나쁘시더라도 많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최소한 헌 책 살 돈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요즘 옛날에 필리핀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다는 말을 합니다.
실제 그 당시 아시아에서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를 꼽으라면 한 손으로도 남았습니다.
개천의 용이 되기 위해 헌 책이라도 사서 공부를 해야겠지만
헌 책 살 돈조차 없었던 것이 바로 우리나라였고,
월남전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 것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즉, 우리 경제 발전의 제일 아래에 있는 밑돌을 선배님들의 피와 땀으로 쌓았다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말...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그죠??
저희 때는 권리 이전에 책임과 의무이고,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며,
의무를 다 하지 않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책임이나 의무는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권리와 인권만 가르치나 봅니다.
개나 소나 다 인권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거기에 '생명 존중'이란 거창한 말까지 나오네요.
이러면서 별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속속 나옵니다.
이런 이유로 월남전 참전 용사분들의 권위까지 점점 낮아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인 부분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정치얘기는 빼겠습니다.
댓글목록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어쩌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까지 흘렀나 봅니다!!!
저도 다른 집사람들에게는 모르겠으나....
우리집 식구들에게만은 권리 이전에 의무와 책임을 하고난 후에 라며
우선은 의무와 책임을 강조 합니다.
생명존중 이야기는 아직도 꺼내놓지도 못하지요!!!
안케님의 댓글
안케
심심도사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모셔온 글인데도 빨리도 댓글을 달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추운 날씨에 저의 마음을 담아서 심심도사님에게 따뜻한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7684093188 ↔ 安南 아가씨 (신가요)
가수: 이해연 / 앨범: (1943) 이해연 - 안남 아가씨 / 남 여성 作詞 / 한 상기 作曲 / 콜럼비아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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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南(안남)은 前漢(전한)의 무제 시대 때 '마 원의' 장군이 특명을 받아 평정한 뒤부터,
"이로써 이제는 우리 남쪽은 편안케 되었구나!" 라고 무제가 말했다하여, '安南'으로 되었다는데,
그 '마 원의' 장군이 바로 180 ~ 220 ~ 280 어간의 " '십상시'의 란 ~ 위.촉.오 성립 ~ '사마염'의
서진{西晉, 전진(前晋)}'에게 멸망 3국 통일" 로 이어지는 약 100여년!
그때 '유비'의 蜀(촉)나라 5호 대장의 하나였던 '馬 招(마 초)'의 먼 조상이 '마 원의' 장군이죠. ^*^
3국지에서 '제갈 량'은 그 '馬 超'의 4촌 동생인 '馬 垈(마 대)'를 대동, 월남 평정에 동행, 공로를 세우게 하기도,,.
영어 알파베트에선 W 를 【떠블 유】라고 발음하지만 프랑스.독일어에선 W 를 【떠블 'ㅸㅔ'】로 발음함으로써 無聲音(무성음)인 'ㅂ'으로 발음치 않고 반 유성음(半 有聲音)인 'ㅸ'으로 발음. ,,.
'웨'와 '붸'와의 於間에 입술을 사용하여 내는 소리!
그래서 Viet-Nam 의 V 가 문제되는데; 이 무성 음운 'ㅂ'음의 유사 문자인 'ㅸ'은 훈민정음에서는 【입술 가배얍은 소리 ㅡ ㅡ ㅡ 순 경음(脣 輕音)】 이라고 하였으며, 오늘 날의 현대 문법 音韻論(음운론)에서는 '반 유성 음운'으로 분류하고 있죠! ,,.
그래서 越南(월남)을 頭音(두음)의 初聲(초성)에서 V 를 반 유성 음운적(半 有聲 音韻的) 발음 'ㅸ'【ㅸㅔㅅ 남】 또는, 완전 유성 음운적(完全 有聲 音韻的) 발음 'ㆁ'【웻남】으로 발음하기도 했는데,
특히 북괴에서는 아마도, 지금도 '월남'으로 발음치 않고 '윁남'으로 하는 걸로 압니다만. ,,. 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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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 꼭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은 건? → 바로 '安南米(안남미)'!
이 安南米라는 게 뭐냐? 아시겠지만 제가 어릴 적에 먹었고, 신었던, 베트남에서 원조해 준 '안남 米(안남 미)'와 '안남 靴(안남 화)' 인데,,. 참혹한 전쟁 ㅡ ㅡ ㅡ 1950.6.25 ~ 1953.7.27 어간의!
이때! '이 승만' 대통령께선 '베트남'에게도 원조를 요청, 베트남 産의 白米(백미), 베트남 産의 물소 가죽으로 만든, 발목 복숭아뼈 바로 위에만 올라오는, 바닥에 쇠징을 빽빽히 박은 물소 가죽 구두! ,,.
겉에는 까칠 까칠한데 안에는 어찌나도 매끄러운지, 그리고 어찌나도그 물소 가죽이 딱딱하던지, 약 30분 정도만 신고 다니다 보면! 여지없이 발목의 복숭사뼈 부근에 피부가 상해서 벗겨져 쓰라리거나, 물집{水泡(수포)}가 생겨서,,. 그리하여 SLIPPER 로 만들어 신었었죠. 어찌나도 무겁던지,,.
SLIPPER 로 만들지 않고 아까워서 그대로 신고 다니면 징을 빠곡히 박은 까닭에 쟈갺 쟈갺 소리가 나죠! ,,., ^^*
http://www.gayo114.com/p.asp?c=5018298441 ↔ 제목: 안남 아가씨 / 가수: 이해연 / 앨범: (1996)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 18 - 강홍식,전옥,이해연 / 가사: lijuwon님제공
1.南十字 별빛 아래 故鄕은 멀고. 주인선(朱印船) 돛대 아래 勢月이 갔다
바닷가에 노래하는 安南 아가씨. 새파란 달이 뜨면, 달이 뜨면, 춤을 춘다네
2.사나이 가슴에는 希望의 별빛. 南쪽을 떠나가면 南十字 별빛
아유타, 다락 우에, 휘파람 날리는, 그 옛날 가신 님의, 가신 님의, 追憶은 길다
3.메나무 푸른 물에 꽃배를 띄워, 龍首레 뱃머리에 燈 불을 걸고
사무로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는, 벚꽃이 피는 나라, 피는 나라, 마음의 故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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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선(朱印船 ): 도쿠 가와 막부 시기, 南蠻(남만) 무역 면허를 가진 선박
*남십자성 : 남십자 자리에 있는 십자꼴을 이루는 네 별
*안남(安南 ): '베트남'의 옛 명칭.
*아유타 : 태국{TALLAND, '샴' 王國이라고도 했었음}에 있던 중세 왕국의 이름.
*샤무로 아가씨: 태국의 옛이름, '샴'의 아가씨라는 뜻으로 보임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작성일
저희 아버지께서도 월남전에 십자성 부대로 두번 참전하셨는데,(다낭인지 퀴낭인지 까지는 생존해계실적에 여쭤보질 않아 모른답니다) 월남에 대해 이 정도나마 알 수 있게 해주신 안케님께 감사드립니다. 월남전의 역사를 보면 정말 지금의 대한민국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월남처럼 역사에서 그 모습이 없어질 것이라는 끔찍한 생각에서죠. 아버지의 월남전 앨범 사진을 보면 겨울이 없어서 좋겠다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당시의 베트콩과 관련한 상황에 대해서도 아시는 분들과 똑같은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월남전 당시엔 사람들이 "낮에는 아군, 밤에는 베트콩" 이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베트콩놈들은 게릴라전을 하더라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아버지께서 눈을 한번 마음먹고 뜨시면 정말 다른 세상의 무엇처럼 무시무시했습니다. 사람들도 무섭다고 했죠. 그게 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무섭고 치열한 전쟁터에서 못볼것 많이보고, 할짓 못할짓 해가며 마음이 험해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목소리 톤도 한 옥타브 높으셔서 항상 무슨 말씀을 하시면 어머니께서 "당신하고 무슨 말을 하면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싸운다고 그러게 생겼어요. 말소리 좀 차분히 가라앉히세요."하셨습니다. 두 번이나 참전하신 전쟁이였는데도 살아계신 동안 많은 말씀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어렸을 적 이따금씩 펴고 재미있게 보던 아버지 영문 이름이 파란 플라스틱 스티커에 새겨져 붙은 크고 두툼하고 검은 앨범 속 사진을 보며 그 젊은 당시의 아버지를 뵙곤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앨범 속 그 젊은 날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5013752697 ↔ 제목: 무명초 항구 / 가수: 백 난아
앨범: (1996)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 20 - 백난아,미스코리아,옥잠화
가사: 권 두영 님제공
김 영일 작사 / 이 재호 작.편곡 /백난아 노래 / 1943년 3월 태평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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珊瑚 燈이 졸고 있는 사이공 埠頭. 갈매기 날개 속에 카누야 가자.
물길에 헝크러진 熱帶의 꽃잎. 아득한 密林 길에 모닥불 곱다.
埠頭마다 물길마다 無名草 꽃잎. 多紅 빛 안개 속에 카누야 가자.
은근히 들려오는 검둥이 노래. 멀고 먼 密林 길에 북소리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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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미'는 길쭉한데, 길게 연한 풀빛 줄이나 연한 분홍빛 줄이 있으며, 끈기가 없어서 보리쌀보다도 풀기가 없음. ,,. 왜냐면, 아마도 2모작을 하기 때문에 그런 듯? ,,. 그래서 입으로 바람을 불면 하얀 밥알이 들썩 들석할 정도로 끈기.풀기가 부족! ,,. 먹고나도 바로 배가 고픕니다. ,,. 슬픈 시절이었죠. ,,.
우리가 그토록 '베트남' 보다도 못 살던 나라! 이렇게 경천동지토록 한 게 '박'통임에도 불구하고,,. 모조리들 다 때려 패 쥑여야! ,,. 빨갱이 건달 새끼들! ///
하여간 그나마 못 먹었더라면 모두 굶어 죽었을지도,,. 이런 걸 알고 좀 베트남사람들에게 잘 해줘야겠거늘,,. 베트콩들을 생각하면 쥑이고 싶지만,,.
웅비4해님의 댓글
웅비4해 작성일
박정희 장군의 혁명공약 제4 -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에 따라
월남에서 원조받은(?) 안남미(알랑미-Longrice))를 동사무소에서 배급 주든 1963~4년 시절,
그 쌀은 밥에 힘이 없다고 밥솥에 콩기름을 조금 넣고 밥해 먹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73.1.27 파리평화협정 체결, 미군철수 시작
75.3.10 북베트남군 남침총공세
75.4.30 남베트남 사이공의 대통령궁 함락, 51일만에 항복
75.11.15 베트콩(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숙청
배부른 월남은 거지 월맹에게 군사 경제로 진 것이 아니라, 부정부패, 간첩, 반정부 데모와 땅굴에 젔다
내부/고정 간첩, 정치/법조/교육/언론/노동계, 시민/종교단체들 등등의 빨갱이들의 구호 -
민주 민족 민중 평화 인권 자주 행복 아름다운 등의 용어는 정권탈취를 목적으로한 그들만의 구호이지,
어리석은 일반국민의 상식, 생각과는 완전히 관계없는 다른 내용이다.
예상 씨나리오 ;
서해, 휴전선, 공중과 땅굴 등을 통한 동시침공과 후방의 교란으로 서울과 인천은 3일이면 함락된다
북괴가 서울과 인천만 인질로 확보하면, 북괴는 당분간 먹고 사는 것은 염려 없으니
그 상태에서 한숨돌리기로 "이제 고만하자"하면서 휴전 제의하면,
또 국내 각종 빨갱이와 살찐돼지들은 "전쟁 계속하잔 말이냐?!" 하면서 휴전을 부추긴다.
결국 적화통일로, 국민의 1/4은 이민/도망가고, 시스템클럽을 포함한 1/4은 숙청되고, 남은 2/4는 노예백성이 되고
붉은완장차고 설치든 정치/법조/공무원/군대/교육/언론/노동계, 시민/종교단체 등등의 빨갱이들도 대대적 숙청대상이 된다..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월남.. 정말 쥐세끼들이 사는 것 처럼 사람이 사는 땅덩어리가 아닌가 합니다. 더럽고 야비한 중국넘들 조차도 학발을 떼는 땅덩어리라고 보여 집니다. 미국을 이겼다고 선전을 하지만, 끝없는 선전선동으로 여론을 조성한 사기승전이었고, 중국을 이겼다고 하지만, 하노이 문턱까지 진격을 한 중국군을 사기로 공략해서 승전을 한 것이지요.
아주 오래전, 북괴 비단 공장보다 더 북쪽에서 공장을 운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매일 공장에 짱돌이 수백개씩 날라오고, 빨래를 하면 자기들 빨래를 먼저 하고 뎃구정물에다 한국사람들 옷을 넣어서 말려서 주어서 피부병을 걸리게 하고, 컨테이너가 나가면 잠금장치인 씰을 2개씩 만들어 와서 경찰과 공모해서 빼돌리고, 물건을 고의적으로 불량으로 생산을 해서 운전자금을 말려서 회사운영을 압박을 해서 회사운영권을 빼앗으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하고,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에 한달간에 걸쳐서 소금의 양을 야금야금 줄여서 저염도증으로 쓰러지게 만드는 등, 그 악행은 이루 말로 다 할수가 없는 인간들이지요.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엔바이, 썬라등 지역의 교도소를 가 봤는데, 인간을 개 돼지처럼 수용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철수를 결정을 했었지요.
호치민쪽은 수단과 방법은 약간 다르지만, 내용은 조금도 다른게 없더군요. 월남공산당의 부정부패는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할 정도고, 모든 것은 군부의 힘을 배경으로 밀어 부치는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더러운 월남에서 월남 빨갱이들에게 아부를 해서 눈먼 꽁돈을 바치면서 거기서 빌 붙어 먹으려는 더 더러운 한국인들 떼거지를 보고는 지금은 월남땅을 쳐다 보지도 않네요.
내가 월남에 있을때 고등학교에서도 ROKMC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다 죽여 버렸던 한국 해병대를 제일 무서워 한다고 하던데, 빨갱이들에 대한 대접은 바로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다 보는 족족 죽여 버리는게 상책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나라의 투자재산을 야비하게 빼앗던 중국 넘들도 월남에 와서 무지하게 많이 빼앗기고 쫒겨 가더군요.
이게 월남의 실상인데, 한국도 이런 넘들하고 큰 차이는 없다고 보네요. 이번 청와대 에리컨 방공포 비리를 보면서 과거 부패한 자유월남 정부의 고위 관리나 한국의 고유관리나 40보 100보 정도의 차이지 다른것은 없지 않나 합니다.
인간을 개돼지 취급을 하는 빨갱이들을 직접 눈으로 보시면 치를 떨게 될 겁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8559311256 ↔ 제목: 맹호들은 간다,우리는 청룡이다,달려라 백마,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월남의 달밤,영등포의 밤,아빠는 마도로스,동백아가씨 /
가수: 여러가수 / 앨범: (196?) 대서정 한국레코드가요사 제15집 / 가사: hahahoho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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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들은 간다>
1.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2.자유통일 위해서 길러온 힘이기에.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 가리까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남북으로 갈린 땅 월남의 하늘아래 화랑도의 높은 기상 우리들이 보여주자
화랑도의 높은 기상 우리들이 보여주자
★<우리는 청룡이다>
1.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쟝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아래 메아리치는
귀신 잡던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려 삼군에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달려라 백마>
1.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정의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에 정의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
1.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를. 영숙이는 받아들고 감격에 웁니다
자유의 하늘땅을 지키는 오빠. 화랑도 그 정신을 길이 빛내어. 용감히 싸우소서 승리의 그날까지
★<월남의 달밤>
1.남 남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
그 누가 불어주는 하모니카냐. 아리랑 멜로디가 향수에 젖네. 가슴에 젖네
★<영등포의 밤>
1.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오던 사랑의 불길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아 ~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2.가슴을 파고드는 추억 어린 영등포의 밤. 영원 속에 스쳐오던 사랑의 불꽃
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 아 ~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아빠는 마도로스>
1.태풍이 분다. 경보가 내려 엄마는 걱정하셔도. 씩씩하신 우리 아빠.
그까짓 것 문제 없어요. 화물선 뱃머리 파도속에 파묻혀도. 아 ~ ~ 고향길 가르키는,
나침판에 희망 안고 바다와 싸워 이긴, 아빠는 마도로스다
★<동백 아가씨>
1.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2.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8548028070 ↔ 제목: 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
가수: 최정자
앨범: (196?) 월남특집 시리즈 No.1
가사: hahahoho님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