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한 갈피 > (구)자유게시판(2012이전)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구)자유게시판(2012이전) 목록

청춘의 한 갈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anama 작성일11-01-31 11:43 조회1,892회 댓글1건

본문

엽편(葉片) 논픽션

구정(舊正)이 다가왔다. 옛날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그때 설날은 아름다웠다. 고향은 변하여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다. 한 갈피의 추억 편린이 있다.


제법 오래된 과거다. 내가 고도 K시에 근무 할 때다. 나는 그때 통근을 했다. 통근 열차는 증기기관차로 숨 가쁘게 흰 증기를 내뿜으며 동해남부선을 오르내렸다. 기관차는 기적을 울렸다. 기관차는 '미카' '터우'등의 메이커로 기억된다. 용수는 고향 중학을 졸업하고 어디로 갔는지, 소위 젊은 낭인이 되어 소식이 없다가도 번개같이 나타나 구라를 치고는 연기같이 사라지곤 했었다. 어느 해 초여름인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이 끝날 점심시간이 임박해서 급한 전화가 왔다는 방송멘트가 와서 급히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짜고짜로 나를 얼려 부쳤다.


"어이! 내다. 용수다. 지금 바뿌나? 안 바뿌거들랑 빨랑 K역 대합실로 퍼뜩 나오너라!"

"어이 용수가? 오래만이네-와? 무신일이고?"

"히야, 참 니, 나오라 카마 나와야지. 니 지금 점심시간 아이가. 퍼뜩 나온나!"


용수라는 이 자슥은 서울로 부터 이곳 고도K시에 도착하여 점심 시간대에 맞춰 용의주도하게 나를 불러내려 전술을 치밀하게 꾸민 놈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 만에 이 자슥이 시키는 대로 택시를 타고 K역 대합실로 들어섰다. 이 자슥은 검은 머리에 포마트를 쳐바르고 기성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겉에는 바버리코트까지 걸치고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며 웃었다.


“야! 니는 너무 사정도 모르고 숨 넘어 가듯이 오느라 가느라 카모 우짜노? 비는 오는데 응? 무신 똥개 훈련시키나?"

"야! 니 그래 놀래? 괄세하모 지긴다! 새빅차 타고 오능기 까지다. 밥도 안 묵었다!"

예의 그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흠! 그래, 그럼, 카지마고 밥묵으로 가자!"

"야! 이거 봐라! 구두 사야한다. 점심값 두가! 구두 사야한다. 배는 고프지만 집에 가서 묵기로 하고, 점심값 내놔라!


이 자슥은 비오는 날 어찌된 셈인지 느닷없이 헐무리 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이래가지고 어떻게 고향 바닥에 가느냐고 설레발을 치는 것이었다. 이 넘은 어디를 가나 보리 문디 언어를 여과 없이 해되는 자슥이라 주목을 받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 자슥은 밉지 않은 놈이었다. 과장된 꾸밈이 있었지만 진솔한 면도 있었다. 나는 역전 식당에서 국밥을 같이 사먹고 주머니를 털어 이 자슥에게 건네고 헤어졌다.


이 자슥은 나의 앞 동네에 살았고 이상하게도 놈과는 유대관계가 이어지는 대화가 되었다. 다른 놈의 말은 안 들어도 내가하면 대뜸, 그래그래 알았다하고 물러섰다. 그러나 당시의유-소년기는 지독히도 가난했다. 들과 산으로 소를 먹이러 다녔다. 산골짝에 각자의 소를 풀어 놓고는 산 능선에서 마을 대항 솔방울로 전쟁놀이를 했다. 탄환은 솔방울이었다. 크고 작은 솔방울을 날려 정통으로 날려 콧잔등에 피를 흘리게 하였다. 그 후 젊은 청년시절 전반부에는 그는 ㅇㅇ지역의 스타였다. 육질도 좋고 건강체에다 유머로 타인의 주목을 받았다. 언젠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서울에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지루한 밤 여객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각설이 품바유의 유머로 즐거운 시간여행을 자연스레 만드는 재주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본연의 출중한 기능은 단연 달리기였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축제가 있으면 영웅으로서 손색이 없는 주목을 받았다. 왜냐하면 운동회 후반 일반부 달리기가 있으면 나타난다. 붉은 줄 두 개 있는 흰색 팬츠에다 군복 런닝 셔츠 그리고 검은색 스파이크를 신고 출발선에서 워밍업을 하면 온 면민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렇다고 이놈이 그때는 촐랑거리는 것도 아니다. 어연 했다. 각 동네에서 딴에는 난다 긴다 하는 넘들이 개폼을 잡고 출발선에 서지만 족탈불급 이었다.


땅! 하고 납으로 만들어진 권총에 화약연기가 터지면 슬슬 뛰다가도 단박에 수명을 추월하여 테이프를 끊어버린다. 단거리. 릴레이. 장거리를 휩쓸고 나면 운동회의 대단원의 절정이 되어 수많은 남녀노소가 열광의 도가니에 휩쓸리는 것이었다. 수년간 그를 젖히는 군상은 없었다.


그는 이따금 바람결에 스치는 소식이 있었지만 안부를 묻거나 어떻게 지낸다는 전갈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여름날 내가 부모님과 과수원 일을 마치고 그녀석이 살고 있는 하천 둑 버드나무 아래에서 피곤한 몸을 쉬고 있는데 저쪽 철로를 건너 도로 쪽에서 부터 빨간 양산이 움직여 오고 있었다. 젊은 남녀 한상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햐! 이런 촌구석에 웬 놈의 저 화려한 남녀가 해성처럼 나타났단 말인가? 마치 아라비안로렌스가 사막의 지평선으로부터 점점 크게 접근 되어오듯이 드물게 보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젊은 여성은 핫팬츠에다 빨간 가방을 들고 탈삭 거리며 걸어왔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었다. 그 옆에는 문제의 용수 녀석이 군복차림으로 그녀를 칸보이 하고! 내가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도 이 자슥은 나를 알아보질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형편없는 작업복으로 늑막염이 걸릴 정도로 과수원 일을 하다가 지쳐있었다. 얼굴은 새카맣게 거슬려있었다.

나는 그가 가까이오자 일어서서 이자슥의 이름을 불렀다.


"어이! 용수- 용수 맞제? "

그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모자에는 다이어몬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이자슥은 나에게 뛰어 올라 오드니 나를 콱 껴안으면서 나의 양 어께를 잡고 반가움에 어쩔줄을 몰라 했다.

" 야! 지금 어째 댕기고, 잘 지내니? 군에 있었나? 애인과 함께 화려한 휴가네?"

나는 부럽게 그를 치켜 올렸다.

"그래 잘 지낸다. 니는 어째 지내노? 와 이래 깜둥이가 됐노? 나중에 다시 만나 이야기 하자!"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간략히 나누고 먼저 집에 가보라고 보냈다. 그의 집 앞에는 아주 맑은 샘물이 있었고, 그 도랑에는 '말'이라는 수초가 비단결같이 자랐었다. 우리는 이것을 뜯어 말아 초장에 찍어 밥맛을 돋우기도 하는 순간을 향유했었다. 그의 집은 낡은 초가집이었다. 빈곤한 농사일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저쪽 가까운 산기슭에 작은 암자를 갖고 있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불사를 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점치는 일과 부적을 그려 주기도 했다.


그 시간이후 나는 그를 다시 두서너 차례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 고민 많고 어려운 젊은 날의 우리들의 한 초상이었다. 그는 미군부대의 메인게이트에서 쌍권총을 차고 출입자 통제업무를 한다고 했고 실제 사진도 보여주었었다. 그놈의 권총을 차고  거들먹 거렸지만 나중에는 그 무게 때문에 죽을 뻔 했다고 엄살을 떨었다. 미군 중대장이 수해현장을 위로 방문 할 때는 운전병으로 수해지역을 헤집고 다니며 군 통역병 행사를 했고 그 인연으로 여교사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동거 여인에게 모대학 영문과를 나왔다고 폼을 잡았으나 그의 위장 된 행위가 들통 나서 해어졌다. 그리고는 T시의 모 방직공장 여사원을 배우자로 사귀고 생활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나에게 고백성사(?)한 내용이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사실상 3번의 화려한 휴가 아닌 외출이 나에게 목격되었다. 그의 군복에다 소위 계급장은 군에서 탈영한 변장술이었고 쫒기는 몸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군은 그의 체포를 경찰에 의뢰해 놓고 경찰은 그를 요시찰 A급 수배인물로 찍어놓았다.


어느 날 그가 그의 집에 숨어들었다. 경찰의 쫒는 눈도 느슨할 때였다. 그가 집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하고 있었다. 집 마당에 말린 콩을 늘어놓고 도리질을 할 때 삽짝 밖에서 경찰이 체포기회를 노렸다.

형사들이 뛰어 들면서 큰소리로 그의 허리춤을 잡았다

"황 용수?"

"용수 형은 집 뒤에 콩가마니 옮기고 있어요!"

그는 용수 본인이 아니라는 몸짓의 전광석화 같은 기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순발력에 형사들은 기만당했다. 그는 기막히게 따돌리고 저 먼 산으로 도피해 버렸다.


그의 형은 그와 비슷했고 그 당시 트럼펫을 불었다. 하천 제방에서 그 형이 불어 젖히든 트럼펫 소리는 남녀노소의 심금을 울리는 로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사들은 닭 쫒든 개꼴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는 저 먼 산기슭에서 허드레 일을 거들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흘러 그가 일하고 쉬는 산속의 큰 바위 근처에 까지 변장을 하고 접근한 형사들과 대치하다가 바위로 부터 20여M 가 넘는 절벽을 비호같이 날아 유유히 사라진 사건이 있어 K경찰관내에서는 그를 ‘비호(飛虎)’라고 이름 불려졌다. 비호(飛虎)! 그렇다, 방황의 갈림길에서 젊음의 시행착오가 가져온 형사들이 불러준 훈장 같은 별명!
 

그것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간단히 넘겨버리기에는 가슴 아린 시대상황이 있었다. 그 후 그는 자수를 하여 얼마간의 세월을 상실했지만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안타깝게 생각했고 그를 욕하는 사람은 크게 없었다. 그 후 그는 나와의 교류는 단절되었지만 우리들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신화 같은 영상의 실루엩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그는 중년에 당도하지도 못하고 폐결핵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우울한 소문 이 긴 안개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다가 소멸되는 것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상 그의 몇 차례 화려한 귀향들은 불길한 외출의 정서에 잠겨있었다. 그가 사라진 이후 그의 형이 불어주던 트럼펫 소리-지상에서 영원으로-는 밤공기를 가르고 A산의 골짜기로 메아리 쳐갔다. 어느 젊은 날의 초상(肖像)에 대한 연민(憐憫)이었다.

                                                  End

댓글목록

피안님의 댓글

피안 작성일

엽전 논 픽션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구)자유게시판(2012이전) 목록

Total 18,634건 319 페이지
(구)자유게시판(2012이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9094 원전수주 국제방식을 아시나요? (정리 펌) 댓글(2) 자유의깃발 2011-02-01 1717 19
9093 빛난 조역 서석구변호사님! 댓글(2) 현산 2011-02-01 2033 41
9092 대전시 김신호 교육감을 위하여 (1부) 정재학 2011-02-01 1720 17
9091 정치인 이광재의 화려한 범법정신을 생각하며... 댓글(2) 소강절 2011-02-01 1745 21
9090 긴급제안 (효과 100%) 댓글(1) 오뚜기 2011-02-01 1743 30
9089 중국 너무 낙관 말아야 육군예비역병장 2011-02-01 1991 13
9088 기린아입니다.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댓글(13) 기린아 2011-02-01 2817 37
9087 무상복지를 논하기전에 나랏빚걱정부터해라 댓글(2) 케리 2011-02-01 1748 10
9086 518 광주사태 right-wrong 댓글(3) 팔광 2011-01-31 2538 37
9085 1980년 6월 5일 광주사태 계엄군 추가발표 전문 댓글(1) 팔광 2011-01-31 1900 18
9084 지박사님의 “추억에 각인된 ~ ”을 읽고 싸울아비 2011-01-31 1844 18
9083 해적 시신 인계자는 국정조사 차원에서 박지원 이가 소말… 댓글(3) 오뚜기 2011-01-31 1850 20
9082 지박사님의 “추억에 각인된 ~ ”을 읽고 댓글(4) 현산 2011-01-31 1883 25
9081 국정조사 하겠다는 요놈의 인간!!! 댓글(2) 레몬향 2011-01-31 1757 8
9080 김동길 교수의 글 유권해석을 부탁드립니다. 댓글(10) 달마 2011-01-31 1853 11
9079 제2의광주사태를꿈꾸며 민란을도모하는자 댓글(1) 박쥐원 2011-01-31 1766 16
9078 개정일 똥줄타겠네... 개써글 2011-01-31 1819 13
9077 518 민주화 똥물 튄 인사들 댓글(2) 팔광 2011-01-31 1960 15
9076 이광재 판결에 대한 김동길 선생의 노망의 말씀을 보고. 댓글(6) 용바우 2011-01-31 1726 18
9075 이명박씨 UAE 원전수주 관련 이면계약 댓글(5) 해모수 2011-01-31 1805 17
9074 삭제하였습니다... 댓글(17) 소강절 2011-01-31 1911 26
9073 박근혜 19대총선에서는 달성군에 출마하지 못할 것이다. 댓글(3) 헬랠래 2011-01-31 1751 15
9072 강원도春川, 空軍 3星 출신 '황 원동' 공군 中將님을… 댓글(2) inf247661 2011-01-31 2019 12
9071 51사단 혹한기 훈련~! 댓글(1) 더블디 2011-01-31 1977 11
9070 은행나무는 해충이 없다고 합니다. 댓글(4) 최성령 2011-01-31 1939 21
9069 박지원.. 누구냐 넌? 댓글(6) 자유의깃발 2011-01-31 1689 17
열람중 청춘의 한 갈피 댓글(1) panama 2011-01-31 1893 12
9067 만일 북에서 장성택을 제거하였다면(질문추가 버전) 댓글(1) systemgood 2011-01-31 2074 3
9066 전문가분들께 질문드립니다 !!!!!!!!!!!!!!!!… 댓글(1) systemgood 2011-01-31 2074 3
9065 [re]추억에 각인된 영원한 그리움 댓글(2) 달마 2011-01-31 1956 15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