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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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2-22 06:25 조회1,979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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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영도 고갈산
그 해 여름방학 어느 일요일에 나는 영도 고갈산에 올랐다. 오르는 도중에 아주 커다란 참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한찬식 선생님의 시「와(蛙)」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이 개구리를 통하여 지친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내가 뒤따르니 개구리는 기운 좋게 펄쩍 뛰더니만 저쪽으로 1미터도 넘게 떨어져 내려앉았다.
마음먹은 나는 개구리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뒤쫓기 시작하였다. 이리 뛰면 이리 쫒아가고 저리 뛰면 저리 쫒아가고 하면서 위협을 주니 나중엔 개구리가 멀리도 뛰지 못하고 아주 지쳐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도망을 가려고 뛸 동작은 취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엉덩이만 ‘들썩’ 하고 천천히 움직이고 개구리 아래턱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듯 제 자리 앞에서 닿았을 뿐, 처음에 위세 좋게 펄쩍 뛰어 1미터 이상 공중제비로 날던 기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숨만 겨우 쉬고는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아!’ 선생은 이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읊은 것이구나 하면서 이해하였다.
당시 고갈산은 나무가 없는 산이었다. 내가 고갈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곳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다보는 풍경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무 없는 잔풀들만 나직이 깔린 정상에서 제2송도 쪽에서 태종대 방향으로 가는 바닷가를 아득하게 내려다보면 멀리서 하얗고 긴 줄을 한 파도가 해안 쪽으로 겹겹이 가느다랗게 밀려 나오고 아주 가늘게 ‘솨아―’ 하는 파도 소리가 산비탈을 타고 은은히 올라왔다.
오륙도가 보이는 우리 동네 쪽과 조도(아치섬), 태종대 뒷산, 그리고 동삼동의 아늑한 갯마을이 너무도 평화롭게 보였다. 말 잔등 같은 펑퍼짐한 산 정상의 허리에 깔린 풀들이 자잘한 야생화 자태를 뽐내려는 양인지 간혹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한쪽 구석부터 잔 파도치는 물결처럼 밀리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어떤 때는 점심때도 잊고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멀리 서남쪽으로 한려수도의 시작이라는 가덕도 쪽을 응시하면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면 보이는 대신동에서부터 부산시내 전경과 영도다리 부산항의 아름다운 모습은 노래가사 말처럼 ‘과연 아세아의 관문 부산 항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남쪽으로 선명히도 보이는 대마도를 의식하고 그 때부터 저게 왜 일본 땅일까 하는 의문도 가졌었다. 영도 고갈산 꼭대기에서 수평선 너머로 아득한 곳에서 보이는 대마도는 저기도 예전엔 우리의 땅이었겠거니 하는 소년기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이었다.
한찬식 선생께 나는 신문배달을 하러 새벽 3시 반 넘어 선생 댁 옆을 지나치면서 어두컴컴한 조선소 앞길에서 영도다리까지의 부두길이 무서워 무서움을 떨치려고 혼자 큰 소리로 이육사 선생의 시를 암송하고 다니면 무서움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곤 선생이 감격하며 어느 날 집에 육사 선생의 시집이 있다는데도 굳이 또 한 권의 육사시집(陸史詩集)을 사 주었다. 그 책 표지 다음 면에 작은 카드를 한 장 넣었는데 선생님이 직접 글을 써 주었다.
‘육사 선생은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한 분이고 모든 이가 존경하는 분인데 찬수가 그분의 시를 즐겨 암송한다 하니 참으로 장하다’ 하였다. 그 이후 이육사 선생의 시는 나의 애송시가 되었고 육사선생의 시마다 어려 있는 선생의 조국사랑의 흔적을 말할 때는 그 때마다 시 암송에 도취해 이육사 선생이 살던 곳에 나 또한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했다. 특히「황혼」,「광야」,「청포도」,「자야곡」,「노정기」,「꽃」등은 내가 즐겨 암송하는 시이다.
한찬식 선생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미덥지 않게 본다. 정치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가 제일인데 그런 사람들이 국민과 나라 위하는 데는 뒷전이고 욕심이 앞서서 항상 자신의 이익을 먼저 도모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초라하게 인식되어지고 그 때부터 모리배로 전락하여 한갓 선동꾼에 지나지 않게 되는 예가 많다고 하였다.
선생은 안중근 의사를 참으로 의인이고 만고의 영웅의 풍채를 가진 분이라 존경하는 말을 하였고 안의사가 이등박문을 지적하여 서적(鼠敵)이라 깔아뭉개는 표현을 쓴 글을 읊을 때는 작은 체구의 온 몸에 힘을 주어 움직이면서 입술을 일자로 꽉 다물고 단호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하였다.(계속)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9383232744 ← 클릭 하실 事! ^*^
제목: 부산 행진곡 / 가수: 방 태원{방 운아} / 앨범: (1968) 眞本 가요반백년 LP4 - 港口編
가사: kbg1948님제공 / 야인초 작사 / 박 시춘 작곡
대사 : 이 창환 / 고 은정
동서양 넘나드는 무역선의 고향은 아세아 현관이다 부산항구다
술취한 마도로스, 남포동의 밤거리에는 꽃파는 젊은 아가씨들의 노래가 좋다
우뚝선 영도다리 갈매기들 놀이터 물에 뜬 네온불도 부산항구다
메리캔 부둣가에 내일 다시 만나주세요. 파자마 입은 아가씨들의 인사가 좋다
봄바람 동래 온천 여름한철 송도요, 달마중 해운대도 부산항구다
가느니 못가느니 終 列車의 베루(bell)가 운다. 경상도 사투리 아가씨들의 이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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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AN' 埠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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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운아'님은 자유당 초기 경 경북 대구에서 고교생 때 가요계 입문, '여수 야화', '일등병 일기', '마음의 자유 천지' 등 많은 히트를 하셨는데, 지난 해(?) 경, 작고하시었음. 삼가 고인의 명복이나마 빕니다. ,,.
저는 1961년 고1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육사'의 '광야!' ㅡ - - - ㅡ '白馬타고 오는 超人'을 군사 혁명 '박'통으로 생각해 보았읍니다. 그만큼 혁명 공약은 당시는 어필했었죠. 모두를 다 실현! ,,.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gayo114.com/p.asp?c=12279894768 ← '臺辭' 없는 것.
제목: 부산 행진곡 / 가수: 방 운아{방 태원} / 앨범: 방태원 노래모음
가사: qqd42님제공 / 야인초 작사, 박 시춘 작곡
1)東西洋 넘나드는 貿易船의 故鄕은 亞細亞 玄關이다 釜山港口다.
情다운 madoros 南浦洞의 밤거리에는 꽃 파는 젊은 아가씨들의 노래가 좋다.
2)우뚝 선 影島 다리, 갈매기들 놀이터. 물에 뜬 네온 불도 釜山 港口다.
MARY queen 埠頭街에 來日 다시 만나주세요. 바자마 입은 아가씨들의 人事가 좋다.
2)봄바람 東來 溫泉, 여름 한철 松島요, 달 마중 海雲臺도 釜山港口다.
가느니, 못 가느니, 終 列車의 bell가(이) 운다. 慶尙道 사투리 아가씨들의 離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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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자 → '야인초'님 〓 가수 '진 방님'님{불효자는 웁니다} 현재 생존하시는 최고 원로분.
正道님의 댓글
正道 작성일한찬식 선생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미덥지 않게 본다. 정치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가 제일인데 그런 사람들이 국민과 나라 위하는 데는 뒷전이고 욕심이 앞서서 항상 자신의 이익을 먼저 도모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초라하게 인식되어지고 그 때부터 모리배로 전락하여 한갓 선동꾼에 지나지 않게 되는 예가 많다고 하였다....좋은 말이네요...국익은 간데없고 자기의 이익만을을 추구하며 당리당략에 놀아나자뻐져 있는 구케의원.... 네 이놈 내 혈세를 먹고 사느니 주인으로 고하노니~~개과천선 하렸-다,,,,,꽝....어쿠 내 팔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