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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염불 작성일10-12-15 09:58 조회1,86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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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18일은 크메르루주 프놈펜 점령 31주년
;4월 18일은 폴 포트(Pol Pot)가 공산 게릴라군을 이끌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점령한 날이다.
1975년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주(Khmer Rouges, ‘붉은 크메르’라는 뜻)군은
1978년까지 통치하는 동안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00만 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킬링필드(Killing Field)’라고 불리는 대량학살이 자행된것이다.
1975년 4월 18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같은 달 30일에는
월맹 공산군이 사이공 시(현 호치민 시)를 점령하여 월남을 패망시켰다.
같은 해 12월 초 라오스에서도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인도차이나 지역이 공산주의 통치 지역으로 바뀐 해이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극빈층의 청소년들을 회유하고
공산주의로 교육시킨 다음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무기를 넘겨받아 무장을 시켰다.
프놈펜에 입성한 폴 포트는 그 자신이 지주의 아들로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었지만
캄보디아를 농경사회로 만든다는 계획 하에 100만 명에 달하던
프놈펜의 인구를 농촌으로 소개하고 유령도시로 만들었다.
이들은 사유재산과 종교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집단농장으로 보내졌다.
폴 포트의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지식인과 전문직들은 무차별 살해당했다.
모든 대학과 학교를 폐쇄하고
교수의 80~90% 이상을 처형하고
대학생 50%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을 당한 사람 중에는 안경을 썼거나,
영어를 배웠거나, 손이 부드럽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한 경우도 있었다.
승려들과 국제경기에 참가한 선수들도 포함됐다.
특히, 종교를 금지하여 거의 모든 사원이 파괴되고
8만여 명의 승려들이 처형되었으며
살아남은 승려는 500여 명에 불과했다.
투올슬렝(Tuol Sleng)은
1976년 고등학교를 폐쇄하고 만든 크메르 루주의 수용소였다.
공식적으로는 ‘S-21’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어린이 2,000명을 포함하여 약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며
지식인들을 상대로 잔악한 고문과 처형을 자행했다
시아누크·폴 포트·김일성 유대 긴밀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정권과
폴 포트정권 및
당시 왕위에 있었던 시아누크 정권은 서로 유대가 깊었다.
1941년부터 왕위에 있었던
전 국왕 노르돔 시아누크는 좌익 성향의 인물로서
폴 포트 정권을 두둔했다.
시아누크 왕은 김일성을 자주 찾아 방문하였고
그와 의형제까지 맺은 사이였다. 김일성은 그에게 섬 하나를 선물했다.
전 국왕은 최근까지도 휴가를 지내러 북한에 방문하고 있다.
현재, 프놈펜 근교의 투올슬렝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한 곳에는
킬링필드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80년 8,900여 구의 시신이 집단매장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후
현 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m에 달하는 탑을 만들어 전시한 곳이다
아직까지도 캄보디아에서는
묻는 것이 금기시 될 만큼
폴 포트의 3년의 통치는 처형과 실종,
질병과 기아, 빈곤 등 수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전문 지식인층과 기술자 층이 근절되어 ‘앙코르와트’ 와 같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가진 캄보디아의 성장을 더디게 하고 있다.
크메르 루주군이 과거의 영토를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베트남 국경을 침범한 것을 계기로
공산 베트남은 1978년 11월 캄보디아에 공격을 개시하여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렸다.
크메르 루주는 북쪽 산악지대로 물러가서 게릴라 활동을 펼쳤으며
폴 포트는 1998년 사망했다.
;4월 18일은 폴 포트(Pol Pot)가 공산 게릴라군을 이끌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점령한 날이다.
1975년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주(Khmer Rouges, ‘붉은 크메르’라는 뜻)군은
1978년까지 통치하는 동안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00만 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킬링필드(Killing Field)’라고 불리는 대량학살이 자행된것이다.
1975년 4월 18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같은 달 30일에는
월맹 공산군이 사이공 시(현 호치민 시)를 점령하여 월남을 패망시켰다.
같은 해 12월 초 라오스에서도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인도차이나 지역이 공산주의 통치 지역으로 바뀐 해이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극빈층의 청소년들을 회유하고
공산주의로 교육시킨 다음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무기를 넘겨받아 무장을 시켰다.
프놈펜에 입성한 폴 포트는 그 자신이 지주의 아들로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었지만
캄보디아를 농경사회로 만든다는 계획 하에 100만 명에 달하던
프놈펜의 인구를 농촌으로 소개하고 유령도시로 만들었다.
이들은 사유재산과 종교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집단농장으로 보내졌다.
폴 포트의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지식인과 전문직들은 무차별 살해당했다.
모든 대학과 학교를 폐쇄하고
교수의 80~90% 이상을 처형하고
대학생 50%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을 당한 사람 중에는 안경을 썼거나,
영어를 배웠거나, 손이 부드럽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한 경우도 있었다.
승려들과 국제경기에 참가한 선수들도 포함됐다.
특히, 종교를 금지하여 거의 모든 사원이 파괴되고
8만여 명의 승려들이 처형되었으며
살아남은 승려는 500여 명에 불과했다.
투올슬렝(Tuol Sleng)은
1976년 고등학교를 폐쇄하고 만든 크메르 루주의 수용소였다.
공식적으로는 ‘S-21’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어린이 2,000명을 포함하여 약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며
지식인들을 상대로 잔악한 고문과 처형을 자행했다
시아누크·폴 포트·김일성 유대 긴밀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정권과
폴 포트정권 및
당시 왕위에 있었던 시아누크 정권은 서로 유대가 깊었다.
1941년부터 왕위에 있었던
전 국왕 노르돔 시아누크는 좌익 성향의 인물로서
폴 포트 정권을 두둔했다.
시아누크 왕은 김일성을 자주 찾아 방문하였고
그와 의형제까지 맺은 사이였다. 김일성은 그에게 섬 하나를 선물했다.
전 국왕은 최근까지도 휴가를 지내러 북한에 방문하고 있다.
현재, 프놈펜 근교의 투올슬렝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한 곳에는
킬링필드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80년 8,900여 구의 시신이 집단매장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후
현 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m에 달하는 탑을 만들어 전시한 곳이다
아직까지도 캄보디아에서는
묻는 것이 금기시 될 만큼
폴 포트의 3년의 통치는 처형과 실종,
질병과 기아, 빈곤 등 수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전문 지식인층과 기술자 층이 근절되어 ‘앙코르와트’ 와 같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가진 캄보디아의 성장을 더디게 하고 있다.
크메르 루주군이 과거의 영토를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베트남 국경을 침범한 것을 계기로
공산 베트남은 1978년 11월 캄보디아에 공격을 개시하여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렸다.
크메르 루주는 북쪽 산악지대로 물러가서 게릴라 활동을 펼쳤으며
폴 포트는 1998년 사망했다.
댓글목록
타락천사님의 댓글
타락천사 작성일공염불님 자료 감사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空 念佛'님! 비교적 상세한 상황 설명! /// Thanks! ///
그런데 사실 민주 자본주의 국가에는 밥벌러지같은 지식인들이 전혀 없지만은 않읍니다. ,,.
또, 말단 하층에서도 그렇구요. ,,.
냉철히 살피건데, 우리 주변은 어떤지? ,,, ,,, ,,, ,,.
따라서 국민들을 선도.계몽시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1968년도에 제정되었었던 국민 교육 헌장이었었는데,,. '캄보디아'와 '베트남'과가 서로 싸워야 하는데,,. 난 '폴포트' 정권이 조치한 것은 역시 지탄받아야하지만, 나름대로, 당시 그들은 자체내에서인간 쓰레기 청소했었다고 보면 되겠죠! ,,. 그러나 그 결과가 좋아야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