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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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2-06 08:15 조회2,003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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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휴전 반대와 영도다리 난간
1955년 여름 이후부터 우리 학교 전교생은 선생들과 같이 여러 차례 시국 궐기대회에 나갔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모두 반대하는 휴전 조인이 1953년 7월 27일에 이루어졌는데 이로부터 훨씬 뒤까지도 북진통일을 왜 하지 않느냐고 어른들은 말끝마다 성화를 낼 때인데 무슨 휴전 감시단인가 뭔가 하는 적성국가 체코 폴란드의 꼴값 떠는 대표들이 우리나라에 파견되었다 하여 이들을 물러가라고 전국적으로 궐기대회를 할 때였다. 우리들도 선생님들과 함께 부산 구덕 공설운동장에 나가 “물러가라! 체코 폴란드!” 하고 소리쳐 외치면서 부민동 경남 도청 앞 전찻길을 따라 시청 앞까지 행진했다.
우리학교에 지리 선생님이신 박덕순 선생이 있었다. 함경도 사투리를 아주 억세게 쓰는 선생이다. 이분이 오른팔을 치켜들며 주먹을 불끈 쥐고 “물러가라! 체코! 폴란드!” 하면 우리가 그 선생님을 따라 더욱 목소리를 높여 외치던 생각이 나는데 박선생은 평소 수업 중 체코 폴란드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서인지 그때 일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나는 박선생님 때문에 지리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지금도 눈을 감고도 세계지도 구석구석의 모습까지 머리 속에 훤히 그려져 남아 있다. 박덕순 선생님은 “성공해야지!” 하는 말을 억센 함경도 사투리로 “성공해라지!”라고 해서 우리들이 웃곤 하였다.
학교를 파하고 하교길엔 교회에서 보수동 헌책방 길로 이어지는 긴 계단 층층대를 친구들과 경주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뛰어 내려가던 기억도 생생하다. 국제시장을 건너 남포동 골목길로 하여 영도다리 쪽으로 걸어갈 땐 길 양쪽 전축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전쟁 유행가를 듣고 금세 배워 따라 부르던 일도 지울 수 없는 추억이다.
이때「단장의 미아리고개」란 노래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많이도 불렀던 애절한 노래였다. 나는 그때에 유행가 가사를 2, 3절까지 잘도 외워 구성지게 불렀는데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남포동을 지나면서 노래의 1절이 끝나고 2절 시작 전 사이에 말로 하는 대사를 구성지게 엮어대었다. 전축가게 주인아저씨가 가게 문 앞에 서 있다가 나의 연기하듯 하는 대사 넋두리를 듣고 손뼉을 치며 마구 웃어대어 내가 쑥스러워하던 생각이 나기도 한다.
여하튼 그때 유행가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굳세어라 금순아」,「서울 가는 십이 열차」,「흥남부두」등 피난민의 애환이 철철 넘치는 노래들이 많이도 불렸다. 특히 흥남부두는 지금도 내가 가끔 부르곤 하는데 부를 때마다 가사에 얽힌 내용과 6ㆍ25 전투, 거제도 부산의 피난생활의 고생이 뒤얽혀 눈물이 안 나올 수 없는 그런 노래이다.
흥남 부두 울며 새든 눈보라치던 그날 밤
내 아내 내 자식 잃고 나만이 외로이
한이 맺혀 설움이 맺혀 남한 땅에 왔건만
부산항구 갈매기도 노래조차 슬프구나
영도다리 난간 위에서 누구를 기다리나
1ㆍ4 후퇴 때 김일성 집단으로부터 억압받던 이북 주민들이 국군이 후퇴했다
가, 20일이나 늦어도 한 달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피난 보따리를 간
단히 싸가지고 고향에 친척들을 남겨두고 잠시 피한다는 것이 56년의 이 지경
이 되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남아 있는 월남가족의 그 가혹한 고생
은 또 어디에 가서 호소하겠는가. 풍문에 들은 말이지만 월남 피난 민의 이북
잔류 가족은 공산 집단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거나 희생되었다고 하
니 이 얼마나 슬픈 비극인가!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고 밤잠을 자다가도 헤어진
가족 생각만 하면 모두들 소스라쳐 놀라 잠이 깨어 몇 번씩이나 벌떡 하고 일
어난다고 하였다.(계속)
댓글목록
正道님의 댓글
正道 작성일시리즈로 올려주시는 "내가 겪은 6.25" .가 전쟁을 체험하지못한 전후 세대에게 좋는 교훈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선생님 글 잘 읽고있습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제목: 함경도 사나이 / 가수: 손인호 / 앨범: (1969) 남인수 외 - 한많은 내청춘 / 가사: kbg1948님제공
http://www.gayo114.com/p.asp?c=5396899320
흥남 부두 울며 찾던 눈보라 치던 그 날 밤 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 외로이
한이 맺혀 서름에 맺혀 남한땅에 왔건만 부산 항구 갈매기의 노래조차 슬프고나
영도 다리 난간에서 누구를 찾어 보나
동아 극장 그림같은 피눈물 젖은 고향 꿈 내 동리 물방아도는 마을 언덕에
양떼 몰며 송아지 몰며 버들피 리 불었소 농토까지 빼앗기고 이천리길 배를 곯고
남포동을 헤매도는 이 밤도 비가 온다
여수통영 님을실고 떠나만가는 똑딱선 내가족 내자식실고 내아내실고
내품에다 내가슴에다 안겨주게 하렴아 하루종일 부두노동 땀방울을 흘리면서
사십계단 판자집에 오늘도 우는구려
- - - 손 로원 작사, 나 화랑 작곡 - -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제목: 단장의 미아리 고개 / 가수: 이해연 / 앨범: (1984) 그시절 그노래 1집
가사: jgs42님제공 /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http://www.gayo114.com/p.asp?c=4688731280
1.미아리 눈물고개 님이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뜨고 헤매일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꼭꼭 묶인채로 뒤돌아보고 또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고개 한많은 미아리고개
(대사)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세요. 어린 영구는 오늘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 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여보!
2.아빠를 그리다가 어린것은 잠이들고 동지섣달 기나긴밤 북풍한설 몰아칠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얼마나 고생하오 십년이가도 백년이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넘던 이고개여 한많은 미아리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