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3월7일의 박대통령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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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벽달 작성일10-11-14 15:19 조회1,876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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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완전히 풀려서 봄날씨다. 역시 경칩이 지나니 추위는 물러가는 모양. 밤 10시 10분 KBS에서 육영수 여사 전기 낭독을 침대에서 듣다.
1974년 5월 14일, 한국자연보호협회 회원들이 청와대에 찾아와서 아내에게 동 협회 총재를 맡아 달라고 청하던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후 4시경 식당에 회원들을 초대, 다과를 대접. 나의 집무실에 아내가 와서 잠깐 나와 회원들을 격려해 달라고 하여 따라나가 인사를 하고 잠시 동안 환담을 나누는 당시의 이야기다. 엊그제 같은 이야기다.
아내가 타계하기 꼭 3개월 전의 이야기다. 아내는 남달리 자연을 좋아하고 아꼈다.
"이 다음에 이 자리 그만두거든 시골에 가서 조그만 집 하나 짓고 살아요, 그리곤 그 뒷산에는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그런 곳에서 살아요."
아 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 아내는 그것이 소원이었다. 그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이는 갔다. 지금도 지방에 다니다가 나무 있고 바위 있는 아담한 산이 있으면 나는 유심히 그 산을 보게 된다. 그이가 저런 곳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하고.
그 러나 이제는 누구와 같이 그런 곳에 가서 조용히 살까. 아내는 또 우리 나라 재래식 한옥을 좋아하였다. 지방에 차로 같이 다니다가 재래식 기와집 반듯한 집을 보면 "저 집 참 좋지요! 저런 집 하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어요."하고 처녀시절 옥천 친정집에 살던 때 이야기도 자주 하였다.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달빛을 바라보면 시골의 풍경을 늘 그리워하였다. 그런 생활을 노후의 유일한 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이는 먼저 갔다.
댓글목록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이런분은 만약 지금까지 살아계시더라도 낯간지럽게 자기 동상을 동네마다 세우고, 자신의 기념관 세우고 ... 그런 꼴사나운 짓은 안하겠지요?
어쩐지 시골동네에 조그만 집하나 지어놓고 베잠방이 입고 손수 호미들고....
그냥 상상해 보았습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
그 순수했던 지도자와 그의 아내! 지금의 발전된 이 시대에서까지 살아계셨 더라도 그 님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을 겁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명박을 반추해 봅니다. 이명박 역시 어린시절 박정희 가문과 같은 반듯한 가문 출신은 아니었으나 뼈저린 가난만큼은 격은 자 입니다. 그러나 머리에 든것이 박정희가 생각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틀리지요!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이나 노무현,김영삼, 처럼 "한 풀이"로 반 국가 망국의 짖은 단호히 안했을 겁니다.
새벽달님의 이 글,왜 이시대에 이렇게도 저의 맘에 절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먹한방님의 댓글
주먹한방 작성일아~ 각하!! 각하!!!!
최성령님의 댓글
최성령 작성일
나는 또 눈물이 납니다.
내 눈에 이상이 생긴겁니까?
기린아님의 댓글
기린아 작성일
감동적입니다.
또한 박대통령의 칼라사진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이러브님의 댓글
아이러브 작성일
저런분을 독재자로 각인시키는 작업이 알게 모르게 있었다는걸 이제야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아무생각없이 보던 TV방송에 박대통령의 모습은 오로지 "저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이것 뿐이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직접 낭독하며 매 새해마다 국민 담화를 발표하곤 했지만 그렇한 모습의 박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전 박대통령의 사진이 국정원에서 공개되었다고 해서 보았는데, 대통령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검소한 생활의 모습이었다.
지금껏 방송사는 이렇한 모습을 감추고 마치 권력의 야욕이 있고, 독제에 걸맞는 이미지만 골라서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익는 김대중 전에도 방송사에 숨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요.
박대통령은 권력에 야욕이 있었던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권을 놓으면, 누가 간첩인지 모르는 누군가가 정권을 휘어잡고 나라를 송두리째 북으로 넘겨버릴꺼라는걸 알았습니다.
마치 김대중이같은 민주화 사기꾼들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