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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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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27 05:50 조회2,0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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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전선야곡(戰線夜曲)

1951년 가을이 되면서부터 할머니는 되찾은 우리 집의 텃밭을 정리하고 농사지을 준비를 하였다. 할머니는 손바닥만 하다지만 “빼앗겼던 텃밭을 되찾으니 일하는 데 힘이 드는 줄도 모르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작은 키였는데 우리 집 지게는 아주 커다랬었다. 할머니는 그 지게에 거름 짐을 지고 밭에 날랐다.

그 해부터 나도 거의 땅에 끌릴 듯한 할머니가 쓰는 지게를 난생 처음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한번은 동네 친구들과 나무를 하러 가서 지게에 너무 많이 싣고 내려오다가 지게 뿌다구리(지게 다리)가 땅에 닿는 바람에 기우뚱하며 옆으로 쓰러져 언덕 아래로 내리 굴러 하마터면 목이 부러져 크게 다치거나 죽을 뻔도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키에 알맞은 지게를 지고 다녀 좋았는데 나는 어른 지게를 지고 다녀서 아주 불편하고 위험하였다.

우리 고장은 예로부터 가을이면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다. 한번은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오다 지게를 벗어놓고 쉬고 있는데 앉은자리 옆 손이 닿는 곳에 무엇이 잡혀 집어 냄새를 맡아보니 송이였다. 커다란 송이를 몇 개 따 온 경험도 있다. 밤이 되면 할머니는 어유 등잔불을 켜 놓고 구해온 삼을 삼았다. 많은 분량의 삼이었다. 난리가 끝나면 우리 집 온 가족이 만나서 입을 옷감으로 삼베옷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텃밭과 자그마한 뒷산을 넘으면 집 넘어 밭이 두 자리 있었는데 그곳에도 거름을 만들어 날랐다. 할머니는 그 해 회갑의 나이인데도 그렇게 엄청나게 농사일을 하였다.

1ㆍ4 후퇴 직후 윗마을 고모할머님 댁에 다녀오다가 갑자기 비행기가 낙산사를 폭격하는 바람에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윗 개울에 있는 우리 집 밭 돌담 쪽으로 급히 피신했었던 그 먼 곳 밭까지도 거름을 지게에 져 날랐다. 내년을 위한 농사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로는 베틀에 올라앉아 밤늦도록 북을 좌우 손으로 받으면서 바디집을 잡아내려 베를 짜시는데 삐이꺽 철거덕, 삐이꺽 철거덕 소리를 내었다. 내가 지금도 생각하지만 나의 할머니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노력으로 공을 들여 그 노력의 결과로 우리 집을 지켜 나갔으니…….

나도 저녁이 되면 낫과 부엌칼을 숫돌에다 갈아 날을 세워 내일 학교 다녀온 뒤에 일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때 훈련한 때문인지 그 이후 도시에 사는 지금도 우리 집 식칼 등 아무 칼이나 칼을 가는 것은 나의 몫이고 지금도 낫이나 칼날 세우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쟁은 간성을 지나 해금강 남쪽에서 양군이 대치하고 서로 겨누고 있으면서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은 군사령부가 주둔하는 곳이고 전방의 신병훈련소였기에 어떨 때는 야간훈련까지 하였는데 신기한 것은 조명탄이란 것을 공중에 발사하면 온 천지가 대낮처럼 밝아 땅에 기어가는 개미새끼들까지도 다 보일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군인들은 밤에도 훈련을 하였다. 관덕정과 정승골 간곡리, 회룡리, 둔전골에는 군인들의 잠자리인 벙커가 만들어져 순식간에 그 속으로 피하면 겉으로는 그 많은 군인들이 주둔한 것 같지를 않고 그저 산과 벌판만 보이는 그런 모양이었다.

무슨 신호만 있으면 갑자기 그 참호나 벙커에서 뛰쳐나오는 군인들을 볼 때엔 참으로 어마어마한 수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관덕정 우리 5대조 할아버지 산소와 정승골의 4대조 3대조 할아버지 산소에는 벌초고 뭐고 마을사람들까지 모두 그 근처엔 얼씬도 못하였다.

우리 동네는 매일같이 총성과 포화 속에 군인들이 “돌격 앞으로! 와―!” 하는 함성이 밤낮으로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생활하는 처지였다.

송암산 밑에는 지금도 사격장이 있는데 그 사격장 지나 산 중턱까지 개울말로 나가는 좀 넓은 달구지 몰고 가는 길에서 박격포를 쏠 땐 우리도 지나가면서 군인들의 박격포 훈련을 직접 구경도 하였다. 처음 쏠 땐 군인들이 박격포탄을 짧은 포신에 집어넣고는 서너 명의 군인들이 포신 옆에 납죽 엎드리면 ‘탱!’ 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나고 하늘을 보면 박격 포탄이 날아간 얼마 뒤에 포탄의 꼭뒤를 볼 수가 있었다.

높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하늘에 올랐다가 멀리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는 그 포탄이 보이지를 않다가 갑자기 먼지가 풀썩 일고는 조금 있다가 먼지를 일으키면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꾸왕!” 하고 온 송암산 아래 동네를 울렸다. 쏠 때의 “탱” 하는 그 소리도 너무 커서 발사하는 순간은 발사대를 등지고 돌아서서 양쪽 귀를 다 막아야만 고막에 충격이 가지 않았다.

개울말 조선해방기념비가 있는 사령관 사택 앞터

우리들은 그런 훈련 장소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호기심만 가득하였지 훈련 상황에 만성이 되어 점점 무서운 것도 모르고 지나치면서 놀았다. 박격 포탄이 날아가서 떨어지는 송암산 밑엔 우리 동네 먼 친척 된다는 범수 형네 등 몇 집이 살았다. 1ㆍ4 후퇴 이후엔 신병훈련장 맨 꼭대기 대포알 떨어지는 곳에 동네가 있어서 아주 위험해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 송암(우리 동네에서 수암이라고 한다) 마을은 아예 없어져 버렸다.

1951년 겨울과 이듬해 3월 초까지 그 해 겨울에도 눈이 아주 많이 왔다. 설날인데도 이웃에 세배 갈 길이 나지 않아 동네에서 눈 가래로 눈을 치우느라고 법석이었다. 나의 키보다 훨씬 많이 왔었다. 모처럼 지나는 설 명절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틈만 나면 들판에 나가 농사를 짓고 총소리나 포탄 소리만 나면 벌판에 엎드려 숨죽이고 때로는 쟁기까지 내던지고 산 속으로 들고 뛰어 도망가고, 심지어 온 동네가 피난 보따리 들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객지까지 나가서 천대받고 다니면서 피난하던 우리 동네는 잠시나마 평화롭게 설을 쇠는 마을이 된 것이다. .

포사격 훈련과 아이들

우리 친구들은 몰려다니면서 이웃 친척집에 모처럼 세배 드리러 다녔다. 부대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도 조용하고 나팔소리도 조용하였다. 모처럼 피비린내 나는 전방에 전쟁 중에 평화가 온 것이다. 밤 10시가 되면 취침나팔 트럼펫 소리가 한밤중을 고요히 그리고 애잔하게 울리는데 군인아저씨들이 잠들기 전에 고향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도 생각해 보았다. 집에 각자의 할머니도 계실 텐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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