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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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19 05:39 조회2,04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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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우애
매일 저녁 군인들의 암호가 바뀌고(나는 군인들의 암호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한밤중에 군인들이 앞에 있는 상대에게 암호를 물었는데 대답하지 못하면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시 발사하여 사살한다고 하였다. 너무나 무서운 공포 분위기였다.
옛날 시골 농촌은 끼니때가 되면 집집마다 밥을 짓느라고 부엌 아궁이에서 나무를 태워 초가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일제히 하늘로 올라가는데 동시에 약속한 것처럼 이 집 저 집에서 하늘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모습은 요즈음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다. 때마다 굴뚝에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어느 집은 비어 있고 어느 집은 손님들이 많이 왔다는 것을 가늠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주둔하고 나서는 산 너머 넘은들 벼락바위 쪽의 적군에게 노출된다고 연기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게 해서 한동안 집집마다 또 다른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옆집과 우리 집에도 일개 분대가 숙식을 같이 했는데 고지 참호 속에서 지키다가 교대하러 내려온 아저씨들과 또 맞교대하며 분주히 올라가던 무장한 아저씨들 복장이 생각난다. 양쪽 앞가슴 위엔 수류탄이 각각 하나씩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허리엔 M1 누런 실탄이 번쩍번쩍하게 둘러져 있었다. 머리엔 화이버만 쓰는 것이 아니고 위장망까지 씌운 무거운 철모도 항상 같이 쓰고 다녔다.
산 고지에서 내려오는 아저씨들 철모엔 나뭇가지가 가득 꽂혀 있었다. 나는 아저씨들이 철모를 벗어 던지고 쉬는 시간에 이야기하는 전투 무용담을 아주 재미있게 듣곤 하였다. 어떤 아저씨들은 내려오자마자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세상이 떠나가도 모르게 잠에 취하곤 하였다. 머리에 쓴 철모에 구멍이 뽕 하고 뚫어졌는데 앞서 전투에 총알이 정통으로 날아오지 않고 약간 빗나가 요행으로 살아났다고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랑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철모에 실탄을 맞고 머리가 터지는 것처럼 핑 돌다가 조금 후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느 전투에서는 산 아래로부터 공격해 올라오는 적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하는데 참호 속에서 아래쪽으로 사격을 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머리를 숙이고 엎어졌다고 한다. 이것을 본 다른 분대장 아저씨가 보기에 총에 맞아 죽은 것 같아 순간 몸을 날려 바람같이 빠르게 넘어진 아저씨의 등위로 뛰어 내리니 엎드렸던 아저씨가 “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쳐다보니 멀쩡한 상태여서 씨익 한번 서로 웃고 다시 고지 아래로 사격을 하면서 그 전투를 이겼다고 했다.
그 때 엎드려서 비명을 지른 아저씨가 분대장 아저씨에게,
“제가 총알을 재 장전하느라고 엎드린 사이에 분대장님이 제 등 뒤에 떨어지는 바람에 등 뒤에서 바위가 무너지는 줄 알고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분대장 아저씨가,
“네가 죽은 줄 알고 네가 쏘는 자리가 비면 큰일이기에 그 자리를 지키려고 몸을 날려 급히 뛰어 총을 쏘려 했지. 그런데 아! 이 새끼가 살아 있잖아!”
하며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분대원들 앞에서 껄껄거리며 손뼉을 치는데 철없는 나는 그 무용담이 그저 재미있게만 들렸었다.
총알이 비 오듯 하는 싸움터에서 여기저기 옆의 전우들이 쓰러지는 가운데에서 이런 한가한 농담이 나오다니……. 그 전투에서 이겼으니 지금 그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니 인생이란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된다.
전투가 벌어진다든지 적의 기습을 받는다든지 할 때면 전광석화같이 동작을 취하게 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그러한 상태가 계속 이어지면 제일 무서운 적이 잠이라 했다. 포탄이 옆에 떨어지고 굉음이 고막을 울리면 그 순간 엎드려 있지만 그 상태에서 바로 잠이 온다는 것이다. 행진이 계속될 때도 고지를 치달으면서 고함을 지를 때에도 조금만 멈추어 서면 잠이 쏟아지는데 정말 못 견디겠다고 하였다. 심지어 포탄이 옆에 떨어지는데도 지금 죽어도 좋으니 잠 좀 한번 실컷 자 보았으면 하는 심정이라 했다.
내가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이웃을 사랑하고, 친구 간에 의리를 지키고, 직장에서는 상하간의 예의를 지키고 하는 것이 아주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며 생활했다. 의리를 지킨다는 점에서, 또 이웃간에 서로를 위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나의 성격을 다잡아 주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어렸을 때 전쟁 통에서, 촌각을 다투는 급박함 속에서 보고 느낀 국방군 아저씨들의 ‘전우애’ 바로 그것이었다. 나라를 사랑하며 의로운 일에 서슴없이 먼저 나서며, 옳지 않는 일에 단호히 떨쳐 버리려 했던 일들, 이런 사례 모두를 통하여 다시 생각해 보니 비 오듯 퍼붓는 포격 속에서 누가 다치면 서로 보듬어 주고 하는 당시의 일들이 나에게는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단순한 일들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를 위할 때라든지, 소대장 분대장이 부대원들을 호되게 질책을 한 뒤 곧이어 질책당한 부하를 격려해 주는 것이 바로 형제애요 부모 공경이요 나라사랑의 순수한 사나이들의 엉킴이었던 것이라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평소 미워했던 전우가 적군으로부터 위협을 받아 생명을 잃을 지경이 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기를 희생해 가며 적진으로 돌격하는 전우를 엄호하며 먼저 구하려 나선다는 사실들이었다. 생명을 내 놓고 내 조국을 같이 지키자고 하는데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는 것이다.
전투가 승리로 끝나면 살아 돌아온 아저씨들이 우리 집 좁은 방구석에 빼곡히 들어앉아 만면에 웃을 띠고 더러는 서로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면서 적군을 물리쳤을 때의 짜릿했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또 손뼉을 치면서 마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고서는 언제 싸웠드냐는 식으로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순식간에 잠에 빠진다.
그때의 이런 모습들은 말하자면, 상관은 곧 자애로운 부모요, 선임병은 나를 엄호해 주는 믿음직한 형님이요, 전우들은 생사를 같이하는 서로 다정스런 친구들이었다. 생사를 같이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이런 형제애의 울타리가 세상 또 어디에 있겠는가.
1962년도 초가을, 내가 육군에 입대하여 중부전선 산악지대 최전방 양구에서 총을 들고 참호 속에 엎드려 11년 전 그 때의 생각을 해보니 생명이 경각에 달리고 사람 죽이는 것을 파리 잡는 것보다 더 쉽게 생각하는 끔찍하고 슬픈 때에도 짐작도 못하는 그런 웃음이 있었구나 하고 회상해 본 적이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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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암호(暗號)'를 모르면 무조건 사살해야만 한다, 단 1번에! ,,. 군대가 무서운 존재임을 알아야! ,,. ///